2026년 7월 19일 (일)
(녹)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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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6주일 가해, 농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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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nelia2] 쪽지 캡슐

08:07 ㅣ No.190690

[연중 제16주일 가해, 농민주일] 마태 13,24-43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어라.“

 

 

 

 

예수님 시대에 바리사이를 비롯하여 스스로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경건한 사람이라고 여긴 유다인들은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다른 이들을 무시하고 단죄했습니다. 그들 눈에는 병든 사람, 마귀 들렸던 사람, 세리나 창녀 같은 ‘죄인’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못마땅하게 보였지요. 그들의 관점에서 자기들은 신앙생활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밀’이고, 나머지는 제대로 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그래서 마땅히 제거해야 할 ‘가라지’였던 겁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완벽하게 선한 사람도 없고, 완벽하게 악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늘은 하느님 뜻에 따라 선하게 살다가도, 내일이면 그분께 등을 돌린 채 악한 길에 빠질 수 있는 게 인간이지요. 그건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윤리 도덕적, 영적으로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아니라, 부족함과 약함 때문에 하루 하루 죄를 짓고 살아가는, 그럼에도불구하고 하느님 뜻을 지키고자 열심히 노력하는 이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니 우리끼리 누가 ‘선’이고 ‘악’인지를 따져가며 상대방을 심판하려 들어서는 안됩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또한 내 마음 안에도 선과 악이 공존하는 상태에서 무엇을 지향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그런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즉, 이 비유의 주제는 ‘심판’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인 겁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종말의 날에 그분께서 다시 오시면 비로소 완성될 중간 상태의 ‘하느님 나라’를 살고 있지요. 그렇기에 이 세상에는 밀과 가라지, 즉 선과 악이 함께 자라고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함께 자라는 것이 당연합니다.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는 지금은 우리의 죄과에 따라 당장 벌이 내리는 ‘심판의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가 회개하도록 그래서 당신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변화되도록 인내로이 기다려주시며 기회를 주시는 ‘자비의 시간’인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교만한 우리는 스스로 의롭다고 착각하여 그런 자비의 시간이 주어졌음에 감사하지 못하고, 왜 밀밭 안에 가라지들이 있느냐고, 왜 선하신 당신께서 보시기 좋게 창조하신 이 세상에 악인들이 넘쳐날 뿐 아니라 심지어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느냐고 하느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느라 정작 우리가 해야 할 일, 즉 자기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마음과 삶을 하느님께로 되돌리는 ‘회개’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자꾸만 나중으로 미루고 있지요. 자기 눈에 커다란 ‘들보’가 박힌 채로 다른 이들의 눈에 박힌 작은 ‘티끌’을 지적하고 심판하면서 말입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이 종들이 집주인에게 하는 이 질문에서 드러납니다.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종들은 가라지를 거두어내는 일에 왜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종들, 즉 우리가 생각하는 밀과 가라지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밀과 가라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쓸모’입니다. 밀은 자라면 알알이 열매를 맺어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양식’이 되지만, 가라지는 먹을 열매도, 특별한 용도도 없는 ‘잡초’에 불과하지요. 즉 종들은 가라지가 윤리 도덕적으로 큰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그것이 자기들에게 이득이 되지 않기에 거기에 ‘악’이라는 굴레를 씌워 제거하려고 드는 겁니다. 하지만 이 ‘쓸모’라는 것은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 상황 조건에 따라 바뀌는 법입니다. 또한 선과 악을 구분할 권한을 지니신 분은 오직 하느님 뿐이십니다. 결국 밀과 가라지의 구분은 ‘옳고 그름’의 문제로만 한정되는게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없는가하는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가라지’라며 손가락질하는 것이 진짜 ‘악’이라면 그것은 추수 때, 즉 세상 종말 때에 주님의 손에 멸망할 것입니다. 그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주님 손에 맡겨드리지 못하고 내가 직접 처단하겠다고 나서는 건 주님을 온전히 믿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나와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내 마음의 품이 넓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성질 급하고 이기적인 우리는 벼룩 한 마리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지만, 자비로우신 주님께서는 지금 당장 가라지처럼 보인다고 해서 바로 거둬내지 않고 수확 때까지 기다려 주십니다. 그분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당신 손에 맡기신 이들을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종말의 때가 오지 않았다면 아직 우리에게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이, 구원받기 위해 회개할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주님께서 죄인들을 즉시 심판하시는 분이었다면 마리아 막달레나와 사도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뵙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와 바오로는 교회 공동체에 큰 공헌을 한 위대한 성인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사랑과 자비로 기다려주셨듯이 나를 기다려주십니다. 내가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기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탐욕과 집착으로 가득했던 자캐오에게서 나눌 수 있는 여유와 자기 잘못을 바로잡을 의지를 끄집어내신 주님이십니다. 불륜과 죄악으로 가득했던 마리아 막달레나에게서 당신을 향한 순수한 사랑과 당신 뜻을 따를 담대한 용기를 끄집어내신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고 그분 뜻을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그분께서 우리 안에 풍성한 신앙의 열매를 맺어주실 것입니다.

 

가라지가 추수 때까지 가라지인 채로 남아있으면 뽑혀서 불에 태워질 것입니다. 가라지가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것은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데에만 신경쓰느라 주변의 다른 생명을 위해 기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선(善)과 악(惡)을 구분하시는 기준입니다. 선(善)은 사랑으로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생명을 살게 합니다. 악(惡)은 제 살 궁리만 하며 자신을 위해 다른 생명을 희생시킵니다. 오늘도 우리 가운데에는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가라지가 득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라지처럼 살아야 이 세상에서 성공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짙은 어둠도 밝은 빛이 비치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물러날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뿌려주신 좋은 씨앗, 즉 하느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씨앗은 싹을 틔우고 자라는 한, 반드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은 우리가 가슴에 품고 실천하는 한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가라지들이 기승을 부린다고 하느님을 탓할 게 아니라, 신앙의 등불을 높이 들고 하느님 뜻을 따르는 선한 행실로 세상이라는 밭을 밝게 비춰야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입니다.”(마태 13,43)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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