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9일 (일)
(녹)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묵상 에세이 2부> 주님께 드리는 가장 아름다운 예물은 우리의 마음과 삶입니다

스크랩 인쇄

박소영 [b38927] 쪽지 캡슐

09:44 ㅣ No.2958

<묵상 에세이 2부>


✦ 주님께 드리는 가장 아름다운 예물은 우리의 마음과 삶입니다

 

미사 예물이나 봉헌금, 기부금 자체에 지나치게 마음을 두지는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예물의 크기나 물질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우리의 마음과 삶입니다.

 

만일 예물이 단순히 여유 재산 가운데 일부를 떼어 내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면, 먼저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기부보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야말로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봉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보다 먼저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나는 이 예물을 깨끗한 마음으로 준비했는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예물을 정성껏 준비했는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많은 예물을 바치는 사람이 아니라, 당신 앞에서 거룩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형식적인 제사보다 회개와 삶의 변화를 먼저 요구하십니다.

 

<너희 자신을 씻어라. 내 눈앞에서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1,10-17

10 소돔의 지도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느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11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황소와 어린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

12 너희가 나의 얼굴을 보러 올 때

내 뜰을 짓밟으라고 누가 너희에게 시키더냐?

13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14 나의 영은 너희의 초하룻날 행사들과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짐이 되어

짊어지기에 나는 지쳤다.

15 너희가 팔을 벌려 기도할지라도 나는 너희 앞에서 내 눈을 가려 버리리라.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 주지 않으리라.

너희의 손은 피로 가득하다.

16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17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주님께서는 악을 버리지 않은 채 형식적으로 바치는 제사를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입으로는 하느님을 공경하면서도 삶으로는 악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예물을 봉헌하여도 그것은 참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먼저 악을 끊고 선을 행하며, 공정을 실천하고, 억압받는 이를 돌보라고 명하십니다.

 

 

<가장 아름다운 예물>


가장 아름다운 미사 예물은 결국 나 자신을 봉헌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누룩 없는 빵이 되어 주님 앞에 바쳐지는 것입니다.

 

제대 위에 봉헌되는 예물은 빵과 포도주만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나 자신의 삶이어야 합니다.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시어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듯이, 우리 역시 그 길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능한 한 깨끗한 마음으로 미사에 참여해야 합니다. 죄를 지었다면 고해성사로 하느님과 화해하고, 묵주기도와 복음 말씀 묵상으로 마음을 비우며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처럼 주님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것이 참된 봉헌입니다.

 

반대로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고, 중대한 죄(혹은 대죄)의 상태에서 고해성사 없이 영성체를 모신다면, 우리는 주님의 몸과 피를 합당하지 않게 받아 모시는 것이 됩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이렇게 엄중히 경고하십니다.

 

(1코린 11,27)

"그러므로 부당하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그분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됩니다."

 

또한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1코린 11,29)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체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체를 모시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회개와 겸손으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성모님께서도 성체에 대한 경외와 합당한 영성체의 중요성을 거듭 호소하셨습니다.

 

(330. 성체의 어머니,27)

"그러나 오늘날, 티없는 내 성심에 가장 고통스러운 가시관이 되는 것은 성체께 대한 '모독'이다. 이 시대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이 모령성체를 하고 있다! 성찬식이 거행될 때마다 모령성체가 행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 엄청난 상처가 얼마나 교회 전체에 퍼지고 있는지, 그래서 교회를 얼마나 마비시키고 침체시키며 불순하게 만드는지, 또 얼마나 중병에 시달리게 하는지를 너희가 내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나와 함께 너희 역시 한정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에 잠기게 되리라!"

 

만일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지 못한 채 성체를 모신다면, 우리는 성체 안에 계신 주님의 사랑과 은총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성체성사는 단순히 예수님을 받아 모시는 행위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우리가 참여하는 신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양식으로 내어주시며, 우리를 당신의 사랑 안에서 변화시키고 하느님께 봉헌된 삶으로 이끄십니다.

 

<성체성사의 중요성> - 거룩한 미사 책 중, 카타리나의 증언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나의 창조물을 구하고자 했다. 내가 십자가 위에서 너희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 주었던 그 순간에 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심한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 어떤 어머니도 자신의 살을 떼어 자녀를 먹인 적은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아라. 그러나 나는 내 공로를 너희에게 주기 위해 그처럼 사랑의 극단까지 갔었다.

거룩한 미사는 바로 나 자신이다. 십자가 위에서 바친 나의 생명과 나의 희생을 너희 안에서 영원히 연장시키는 바로 그것이다. 내 생명과 내 피의 공로가 없다면, 너희가 무엇을 가지고 성부 앞에 올 수 있겠느냐? 아무것도 없으리라. 초라함과 죄밖에는..."


예수님께서는 또한 성체를 받아 모시는 은총이 우리 안에서 반드시 삶의 변화로 이어져야 함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성체성사의 중요성> - 거룩한 미사 책 중, 카타리나의 증언

 

"우리가 성체성사 안에서 받는 은총은 우리 안에서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하고, 우리의 형제자매를 대하는 태도에서 사랑과 자비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체를 모시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삶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는지 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정말 주님께 나 자신을 봉헌하고 있는가?'

'내 삶은 세상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있는가?'


주님께서 생명의 빵으로 우리에게 오셨음에도, 우리가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한 채 세상의 것만 바라보며 살아간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난 에세이 「은총의 길로 다시 걸어가야 할 때(회개와 봉헌 갱신)」에서 말씀드렸듯이, 이러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에서 멀어지고 그분과 이루어야 할 생명의 친교를 잃게 됩니다.

 

그분과 살아 있는 친교가 없다면...

어떻게 그분을 깊이 알고 사랑할 수 있을까요?

또 어떻게 그분을 세상에 증언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과의 친교가 약해진 채 살아간다면, 미사를 마친 뒤에도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하느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보다 세상살이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결국 주님께서 바라시는 가장 아름다운 예물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사랑 안에서 당신께 봉헌된 우리 자신입니다. 성체 안에서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 역시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할 때 비로소 미사의 예물은 우리 안에서 완성됩니다. 


 

<주님께 합당한 사람>


우리가 참된 신앙의 길을 걸으며 하느님과 깊은 친교 안에 머물고, 그분의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려 할 때에는 때로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거나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은 세상의 가치관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인간의 뜻과 욕망을 중심에 두지만, 복음은 하느님을 삶의 첫자리에 모시고 십자가를 따르도록 우리를 부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오 복음 10장을 통해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34─1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5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36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8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9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40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11,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다 지시하시고 나서,

유다인들의 여러 고을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려고

그곳에서 떠나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칼'은 사람 사이에 미움과 갈등을 일으키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리와 거짓, 하느님의 뜻과 세상의 뜻을 분별하도록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결단의 칼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의 타협을 통해 얻는 평화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 안에서 누리는 참된 평화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고 십자가의 길을 받아들일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화를 은총으로 받게 됩니다.

 

성모님께서도 참된 평화는 인간적인 안락함이나 세상과의 타협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회개와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돌아갈 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임을 일깨워 주십니다.

 

(368. 속아넘어가지 말아라,3)

"속아넘어가지 말아라. 평화는 결코 지상의 소위 거물급 인사(人士)들의 회동이나 상호 협정 같은 것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평화는 오로지, 나의 이 축일에 내가 다시금 호소하는 회개를 통해, 기도와 단식과 속죄를 통해, 인류가 하느님께로 돌아올 때만 너희에게 올 수 있을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에도 올바른 질서가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마태 10,37-38)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이 말씀은 가족을 사랑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가장 첫자리에 모실 때, 우리의 사랑은 하느님 안에서 올바르게 정화되고 완성됩니다. 그때 우리는 가족과 이웃을 더욱 참되게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합당한 사람은 자신의 뜻보다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고, 세상의 인정과 안락함보다 복음의 진리에 충실하며, 사랑으로 그분의 계명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요한 14,21)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참 평화와 진리의 칼에 대한 묵상은 『체나콜로에서, 아버지의 뜻이』 부록 「묵상 에세이 모음」의 〈참 평화와 진리의 칼〉에서 더욱 자세히 다루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함께하는 가톨릭 기도 (체나콜로)

  블로그: https://blog.naver.com/letspraytogether1004

  채널: https://www.youtube.com/@letspraytogether1004



28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