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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7주간 목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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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헤어지는 결심도 어렵지만, 때로는 물건과 헤어지는 결심도 쉽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사용하던 스마트폰이 5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액정이 세 번이나 꺼졌습니다. 한 번은 한 달 넘게 기다려서 고쳤고, 한 번은 삼성에 다니는 형제님이 고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액정이 꺼졌습니다. 오래된 모델이라 부품을 구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하필이면 액정이 꺼진 날이 주말이었고, 콜롬비아로 사제 모임을 가야 하는 날이었습니다. 순간 걱정이 되었습니다. 비행기 표도, 연락처도, 일정도 모두 스마트폰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전에 수녀님께서 쓰시던 스마트폰이 있어서 급한 대로 심카드를 바꾸어 콜롬비아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5년 동안 함께했던 스마트폰과 이제는 헤어질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스마트폰을 바꾸려고 정리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것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필요한 것도 있었지만, 사실은 필요 없는 것도 많았습니다. 오래된 사진, 쓰지 않는 앱, 무심코 저장해 둔 파일, 괜히 마음을 빼앗던 알림들이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을 정리하면서 제 삶도 함께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집 청소를 하면 오래된 것을 버리게 됩니다. 옷장을 정리하면 입지 않는 옷을 내놓게 됩니다. 스마트폰을 정리하면서도 제 마음 안에 있는 오래된 습관, 불필요한 걱정, 쓸데없는 집착을 보게 되었습니다. 며칠 동안 스마트폰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오히려 마음은 조금 편했습니다. 산책할 때 기도 시간이 늘었고, 묵주기도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쓸데없이 화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줄었습니다. 예전 핸드폰 광고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꺼 놓으셔도 좋습니다.” 어쩌면 하느님과 함께 있을 때도, 우리의 마음 안에 켜져 있는 불필요한 화면들을 잠시 꺼 놓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옛것은 단순히 오래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붙잡고 있는 낡은 마음입니다. 세례를 받았지만, 여전히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마음이 옛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여전히 두려움과 걱정에 매여 사는 모습이 옛것입니다. 주님께서 희망을 보여 주시는데도 시련과 고통만 바라보며 절망하는 마음이 옛것입니다. 집을 새로 지었지만, 낡은 담장을 그대로 두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겉모습은 바뀌었지만, 마음의 담장은 여전히 오래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새것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다시 시작하는 마음입니다. 집을 새로 지었으면 낡은 담장을 허물고 새로운 담장을 세우는 것이 새것입니다. 세례를 받았으면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이 새것입니다. 시련이 있어도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희망을 바라보는 것이 새것입니다.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서는 것이 새것입니다. 상처가 있지만 용서하려는 마음이 새것입니다. 실패했지만 하느님의 손길 안에서 다시 빚어지려는 마음이 새것입니다. 신앙인은 과거를 모두 부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옛것 가운데서도 은총을 발견하고, 새것 가운데서도 하느님의 뜻을 찾는 사람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옹기장이의 집으로 갑니다. 옹기장이는 진흙을 손으로 빚어 그릇을 만듭니다. 그런데 그릇에 흠이 생기면 옹기장이는 그것을 버리지 않습니다. 자기 눈에 드는 다른 그릇이 나올 때까지 다시 빚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흠이 생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실패했다고, 상처가 있다고, 부족하다고 우리를 내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다시 빚으십니다. 우리의 교만을 낮추시고, 우리의 분노를 다듬으시고, 우리의 두려움을 녹이시고, 우리의 욕심을 비워 내십니다. 그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 마음에 드는 그릇으로 새롭게 만들어 가십니다. 스마트폰은 오래 쓰면 부품이 낡고, 액정이 꺼지고, 결국 정리해야 할 때가 옵니다. 우리의 삶에도 그런 때가 있습니다. 오래 붙잡고 있던 생각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익숙했던 습관과 헤어져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나를 지켜 주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나를 묶고 있던 것들과 결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의 ‘헤어질 결심’입니다. 미움과 헤어질 결심, 걱정과 헤어질 결심, 교만과 헤어질 결심, 세상의 기준과 헤어질 결심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감사와 기도, 겸손과 사랑, 하느님의 뜻을 새롭게 모셔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옛것도 꺼내고 새것도 꺼내는 지혜를 말씀하십니다. 옛것 가운데서 감사할 것은 간직해야 합니다. 지난 시간의 은총, 함께한 사람들의 사랑, 실패를 통해 배운 지혜는 소중한 옛것입니다. 그러나 낡은 집착, 오래된 미움, 반복되는 두려움, 하느님보다 세상을 더 의지하려는 마음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새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느님께 다시 빚어지는 마음, 주님께 내 삶을 맡기는 마음, 오늘 다시 사랑하기로 결심하는 마음이 바로 새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다 쓰고 나서 정리되는 스마트폰처럼 언젠가는 하느님 앞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그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최신 기종처럼 살았느냐가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저장하고 있었느냐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얼마나 비워지고, 얼마나 새롭게 빚어졌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도 옹기장이이신 하느님의 손에 우리 자신을 맡기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의 옛것을 정리해 주시고, 새 마음으로 빚어 주시기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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