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일 (토)
(백)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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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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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6-07-31 ㅣ No.190909

북미주 서울대교구 사제 모임이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있었습니다. 콜롬비아에서 선교사로 지내는 신부님이 정성껏 준비해 주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일정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모임 장소는 셀람(CELAM)’이었습니다. 남미 주교회의 건물입니다. 숙소와 성당, 식당과 회의실까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주교회의 사무총장 주교님께서 서울대교구 사제들이 편안히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달라스 성당 교우들의 도움도 있었습니다. 다섯 명의 봉사자가 콜롬비아까지 와서 식사를 준비해 주었습니다. 주교회의 식당을 사용하며 신부님들의 입맛에 맞게 한식을 정성껏 차려 주었습니다. 육개장, 삼겹살, 김치찌개, 부대찌개가 식탁에 올랐습니다. 보고타의 교우분들도 함께해 주었습니다. 김치도 담가 주었고, 차량 봉사도 해 주었습니다. 낯선 땅이었지만 낯설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왔지만, 한 가족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가 같은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며, 성령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부님들은 영적인 에너지를 충전하고 각자의 소임지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인류의 역사에는 두 가지 큰 흐름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거울에 비친 그림자와 같다는 생각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가 아니며, 우리는 보이지 않는 진리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플라톤이 말한 동굴의 비유처럼, 동굴 속에서 보는 희미한 빛은 진리의 여명일 뿐입니다. 동굴 밖에는 더 넓고 놀라운 세상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진리를 향한 여정이 됩니다. 시련과 아픔, 좌절과 고통도 그 여정 안에서는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신화와 종교와 철학이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며 하느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분명한 법칙과 질서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는 생각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보다는 눈에 보이고 측정할 수 있는 세계에 더 큰 관심을 둡니다. 수학, 과학, 경제는 이런 사고의 틀에서 발전했습니다. 세상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원자들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법칙과 질서를 알면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인간이 세상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중심이 된 세상은 때로 위험합니다. 자본주의와 디지털 문명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는 인격과 도덕, 사랑과 우정이 설 자리가 좁아집니다. 이윤의 창출 앞에서 환경 파괴도, 전쟁도, 폭력도 쉽게 용인됩니다. 숫자는 커지지만, 마음은 작아지고, 기술은 발전하지만, 양심은 무뎌질 수 있습니다.

 

공자께서는 성숙한 인간의 나이테를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지학,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 종심입니다. 학문을 배우고, 뜻을 세우고, 의혹이 없으며, 하늘의 뜻을 알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마침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해도 그르침이 없는 삶입니다. 제 나이가 예순이 넘었지만, 아직도 세상의 이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유혹이라는 바람 앞에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하느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의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 주는 지팡이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흐려진 양심을 비추어 주는 등불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헤로데는 권력을 가졌습니다. 많은 것을 소유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세례자 요한이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두려워하면서도 그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체면과 욕망과 권력의 눈치를 보다가 결국 세례자 요한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헤로데는 왕이었지만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권력을 가졌지만, 진리를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것을 소유했지만 양심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반면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그는 권력도 없었고, 재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뜻을 알았습니다. 그는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세례를 통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자신이 빛이 아니라 빛을 증언하는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길을 준비한 여명의 눈동자였습니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그의 삶은 인류의 역사에 깊은 나이테를 남겼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예레미야도 죽음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는 백성의 귀에 듣기 좋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했기 때문에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판의 아들 아히캄의 도움으로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예언자를 죽이려 했고, 누군가는 예언자를 살렸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선택입니다. 우리는 헤로데처럼 체면과 욕망 때문에 진리를 외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히캄처럼 하느님의 사람을 살리는 편에 설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처럼 진리를 위해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그 길이 참된 자유의 길입니다.

 

신앙인은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숫자와 이익만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뜻을 찾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양심의 소리를 듣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진리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입니다. 보고타에서 만난 사제들과 교우들의 아름다운 봉사는 이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신앙은 우리를 낯선 사람으로 두지 않습니다. 신앙은 우리를 가족으로 묶어 줍니다. 신앙은 우리를 이익의 계산이 아니라 사랑의 계산으로 살게 합니다. 우리의 삶이 헤로데의 길이 아니라 세례자 요한의 길을 따르기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아히캄처럼 하느님의 뜻을 살리는 사람이 되기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이번 북미주 서울 대교구 사제 모임이 은총 가운데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함께해 주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콜롬비아까지 와서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 주신 달라스 성당 봉사자들, 김치를 담가 주고 차량 봉사와 여러 도움을 아끼지 않은 보고타 교우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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