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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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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9:17 ㅣ No.190946

이병우 신부님_"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마태14,20ㄱ)

 

'영적 양식과 나눔의 기적!'

 

오늘 복음(마태14,13-21)은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군중의 배고픔을 채워 주십니다. 제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 배불리 먹고도 남은 조각이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차는 '빵의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빵의 기적'은 '예수님의 손을 통해 일어난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마태14,19ㄴ-20ㄱ)

 

'영적 양식!'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양식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은 육을 위한 양식과 영혼을 위한 양식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양식은 '영적 양식'입니다.

하느님을 닮은 인간, 영혼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기에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양식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영적 양식의 힘으로, 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고 사도 바오로는 오늘 제2독서에서 선포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8,35.37.39)

 

'나눔의 기적!'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태14,16)

 

우리는 배불리 먹고도 또 무엇을 먹고 마실까를 고민합니다. 누군가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형제자매들입니다.

 

작년에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세상의 가장 큰 위험은 온갖 극심한 소비주의와 더불어 개인주의적 불행입니다."(복음의 기쁨, 2항)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 안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소비주의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병폐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나눔의 기적'이 필요한 때입니다.

너무 배불리 먹고 마시는 것을 좀 절제하고, 주변에 있는 가난한 형제자매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나눔의 기적을 만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끊임없이 영적 양식을 찾고, 굶주림에 허덕이는 형제자매들을 기억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집회27,29)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김건태 신부님_모든이에게 열린 식탁

[말씀]

1독서(이사 55,1-3)

바빌론에 유배된,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은 매일의 양식 마련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유배 중에 활동했던 익명의 제2이사야는 곧 다가올 복구의 시대, 본국 귀환의 시대를 상기시키는 가운데, 모든 이에게 양식이 무상으로 주어지리라는 희망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이 양식은 육적인 양식을 말함이 아니라 인간을 영원히 살게 할 영적인 양식, 곧 하느님과 체결될 새로운 계약을 가리킵니다. 하느님과 의로운 새 계약 체결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으로 영적으로 풍부한 백성이 될 것입니다.

2독서(로마 8,35.37-39)

오늘 독서 말씀에 앞서 사도 바오로는 로마 공동체 신자들에게,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사랑으로 사는 사람의 새로운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일깨워 준 바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는 이 삶이 주는 기쁨의 환호 소리를 드높입니다. 주님의 선하심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에게 신앙은 갖가지 곤경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는 원동력이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사랑은 삶의 진정한 양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마태 14,13-21)

예수님은 당신에게 오는 모든 사람, 비록 다른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저버림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몸소 당신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는 분이며, 우리 서로 나누도록 이끄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또한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 안에 사시는 분이기에, 그분과 함께 우리는 진정한 생명을 누릴 수 있으며, 그분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기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새김]

현대인들에게 나누기 정말 어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식탁일 것이다. 식탁은 일반적으로 가족, 친구들, 지인들에게 열려 있을 뿐, 낯설거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닫혀 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음식이 모자랄까 두려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음식을 함께한다는 것이 삶을 나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아무에게나 삶을 나눈다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요?

 

그러나 주님은 삶을 나누기를 꺼리는 태도를 질타하십니다. 그분은 제자들이 쌓아놓고자 했던 울타리를 거두어버리시며,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흔쾌히 나누기를 명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랜 기간 기다려왔던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 모든 이는 사랑으로, 사랑으로 나누는 음식으로 배부르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처럼 자기 자신만을 위한 각자가 지배하는 인간성이 파괴되고, ‘서로 서로를 위한 각자가 다스리는 인간성으로 충만한 세상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은 특별히, 제자들이 보여주었듯이, 미리 체념하거나 포기하려는 근시안적인 시각을 털어버리고, 군중 곁에서 봉사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겸허한 자세와 함께 굳건한 믿음을 갖추기를 바라십니다.

 

 

이번 한 주간, 다른 누구 또는 무언가의 도움을 찾기 이전에, 내가 가지고 있고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이웃에게 봉사하려는 의지를 새롭게 하는, 의욕 넘치는 한 주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1. 말씀의 잔치: 귀 기울임에서 시작되는 계약
오늘 제1독서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을 강조하며, 그 핵심은 “듣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사 55,3)이라 말한다. 하느님의 잔치는 단순한 음식의 잔치가 아니라, “말씀을 듣는 잔치”다. 이 말씀의 식탁이 없이는 성찬의 식탁도 있을 수 없다.(교리서 1346항 참조)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성찬의 식탁에 오르기 전에 먼저 말씀의 식탁에서 배불리 먹으라. 말씀은 영혼을 밝히고, 성찬은 그 영혼을 하느님과 결합시킨다.”(In Matthaeum Homiliae, 50,3 의역) 말씀은 단지 지식이 아니라, 순종과 충실성의 행위로 응답될 때 계약이 성립한다. 우리가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이미 하느님과의 친교가 시작된다. 
 
2. “외딴곳”에서 이루어진 기적: 새 모세의 표징
마태오는 기적이 “외딴곳에서” 일어났다고 기록한다. 이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만나를 받은 사건(탈출 16장)을 상기시킨다. 예수님은 새 모세로서, 단순히 먹을 것을 주신 분이 아니라,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을 모으신 분이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기적을 성체성사의 예표로 해석하며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께서 빵을 축성하시고 나누어 주신 것은, 그분 자신을 세상에 나누어 주시려는 표징이었다. 빵은 하나이지만, 많은 이들이 그 빵을 먹음으로써 한 몸이 된다.”(Sermo 234,1 의역) 
 
3.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하느님의 동참의 사랑
복음은 예수님 행동의 동기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이 단어는 단순한 연민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의 내장이 찢어지는 듯한 자비의 깊이를 의미한다. 즉, 하느님께서 인간의 고통 안으로 들어오신 것이다.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해석한다. “주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는 것은, 그분이 인간의 비참함을 당신 안에 받아들이셨다는 뜻이다. 그분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셨다.”(Commentarium in Matthaeum, XI,1 의역) 하느님 사랑의 행위는 능력의 과시가 아니라, 동참(공감)의 행위이다. 기적은 하느님이 인간의 결핍 안으로 들어오실 때 일어난다. 
 
4.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협력의 신비
기적의 출발점은 제자들의 작은 응답이었다.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17절)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협력을 통하여 당신의 구원을 드러내신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하느님은 인간의 협력을 통하여 당신의 섭리를 완성하신다. 그분은 인간의 손을 통해 당신의 자비를 나누신다.”(Summa Theologiae, I-II, q.113, a.7 ad 1 의역) 나눔의 행위가 곧 기적의 통로가 된다. ‘작은 것’이 ‘충만함’으로 변화되는 순간, 인간의 계산은 사라지고 하느님 은총의 질서가 드러난다. 
 
5. “열두 광주리”: 하느님 나라의 충만함
남은 조각이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는 것은 단순한 수량이 아니라, 열두 제자, 곧 새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기적의 잉여는 교회의 풍요로움, 곧 성사와 말씀으로 세상 끝까지 퍼질 복음을 의미한다. 성 치프리아노는 성체성사의 의미를 이렇게 요약한다. “하나의 빵이 잘게 나뉘어도 그리스도는 나뉘지 않는다. 오히려 그분 안에서 우리는 하나로 결합된다.”(De Oratione Dominica, 23 의역) 
 
6. 성체성사: 나눔의 사랑으로 완성되는 일치
예수님께서는 이제 승천하셨지만,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의 봉사 안에서 여전히 당신 백성과 함께 하신다. 사도적 봉사는 그분의 말씀과 성체를 나누어주는 사명이다. 교회는 “빵을 떼며”(사도 2,42) 형제적 나눔을 통해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낸다. 교회 헌장은 이렇게 가르친다. “성체성사는 교회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이다.”(11항 요약) 그리고 일치 교령은 이렇게 덧붙인다. “성찬례에서 신자들은 하느님과 서로 결합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형성하는 일치를 이룬다.”(2항 요약) 
 
7. 결론: “아무것도 우리를 하느님 사랑에서 떼어놓지 못한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제2독서(로마 8,35–39)에서 선언한다. “아무것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놓지 못할 것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의 노력 이전에 우리를 품으신 하느님의 은총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께 내어놓을 때, 그분의 사랑은 세상을 배불리 먹이는 성체의 기적으로 변할 수  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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