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9일 (일)
(녹) 연중 제19주일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축일

스크랩 인쇄

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04:53 ㅣ No.191086

뉴멕시코의 산타페를 가보고 싶었습니다. 본래는 신부님들과 함께 가기로 했지만, 사정이 생겨 혼자 가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신부님이 저와 동행해 주었습니다. 제가 혼자 먼 길을 떠나는 것이 마음에 놓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신부님은 다른 일정을 포기하고 저와 함께 산타페로 떠났습니다. 혼자 떠났다면 10시간이 넘는 운전도 부담이 되었을 것이고, 조금은 외로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고, 함께 운전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길은 은총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산타페에 도착해서 주교좌 성당, 성 미카엘 성당, 성 로레타 경당을 보았습니다. 산타페는 거룩한 믿음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400년 전, 신앙인들은 그 척박한 땅에 정착하여 믿음 안에서 삶을 일구었습니다. 산타페의 건축양식은 아주 독특했습니다. ‘어도비양식이라고 합니다. 어도비는 흙, 모래, , 물을 섞어 벽돌처럼 만들고 햇볕에 말린 건축 재료입니다. 두꺼운 흙벽은 낮에는 뜨거운 햇볕을 막아 주고, 밤에는 따뜻함을 간직하게 해 줍니다. 둥글게 다듬어진 모서리, 낮고 넓은 건물, 흙빛의 벽, 밖으로 드러난 나무 기둥은 사막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어도비 건축은 단순한 집의 모양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척박한 땅에서도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지혜였습니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삶처럼, 어도비 건축은 겸손과 조화, 그리고 오래 견디는 신앙의 아름다움을 묵상하게 했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편안했고, 강하지 않은 것 같지만 오래 견디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사람을 품어 주는 집이었습니다. 이번 여정에 함께해 준 신부님은 제게 마치 어도비와 같은 분이었습니다. 제가 혼자 가는 것이 안쓰러워서 함께해 주었습니다. 10시간이 넘는 운전을 기꺼이 해 주었습니다. 저는 겨우 2시간 정도만 운전했습니다. 산타페에서도 운전은 물론, 가야 할 곳을 미리 검색해서 알려 주었습니다. 음식도 준비해 주었습니다. 돌아보면 제 삶에는 이렇게 어도비와 같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드러나지 않게 저를 받쳐 주고, 조용히 저를 품어 주고, 제가 지치지 않도록 곁에 있어 준 분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특별히 잘나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제가 주님의 성체를 축성하는 사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제가 부족해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20년 전 토론토에 살 때도 많은 분이 도와주었습니다. 8년 전 뉴욕에 도착했을 때도 많은 분이 도와주었습니다. 지금 달라스에서도 많은 분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한문으로 사람을 뜻하는 은 서로 기대고 있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혼자 서는 존재가 아닙니다. 서로 기대고, 서로 받쳐 주고, 서로 품어 주면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오늘 교회는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를 기억합니다. 로마의 발레리아누스 황제 박해 때, 박해자들은 라우렌시오 부제에게 교회의 보물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라우렌시오 부제는 교회의 재산을 남몰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 굶주린 이들, 외로운 이들을 박해자들 앞에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들이 교회의 재산입니다.” 박해자들은 분노했고, 라우렌시오 부제는 불에 태워져 순교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의 죽음을 패배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의 죽음을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 순교로 기억합니다.

 

라우렌시오 부제에게 교회의 보물은 화려한 건물도, 진귀한 그림도, 황금도 아니었습니다. 교회의 참된 보물은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굶주린 사람이었습니다.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병든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은 힘 있는 사람, 부유한 사람, 성공한 사람을 보물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복음은 다르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눈에는 작고 약한 사람이 보물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보물입니다. 우리가 돌보아야 할 사람이 교회의 보물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나누는 사랑을 헛되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뿌린 작은 선행의 씨앗을 여러 곱절로 자라게 하십니다. 누군가에게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 힘든 사람을 위해 내어 준 시간, 외로운 이와 함께해 준 동행, 가난한 이에게 나눈 작은 정성은 하느님 안에서 의로움의 열매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밀알은 자신을 지키려고 하면 한 알 그대로 남습니다. 그러나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성 라우렌시오 부제는 한 알의 밀알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보다 교회의 참된 보물인 가난한 이들을 지켰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그의 믿음은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어도비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누군가의 뜨거운 낮을 막아 주고, 누군가의 차가운 밤을 따뜻하게 품어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신앙의 삶입니다. 누군가가 혼자 가는 길이 외롭지 않도록 함께 걸어 주고, 누군가가 지쳐 있을 때 조용히 기대어 쉴 자리가 되어 준다면, 그것이 복음의 삶입니다.

 

성 라우렌시오 부제는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너에게 교회의 보물은 무엇이냐?”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재물인지, 명예인지, 건물인지, 아니면 사람인지 돌아보게 합니다. 참된 신앙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병든 이들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외로운 이들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이방인과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7 1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번호 제목 등록일 작성자
191088 지성미..... 05:25 이경숙
191087 ■ 가톨릭라디오 : 두려움 속에서도 손을 내미시는 주님 05:00 이재현
191086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축일 |1| 04:53 조재형
191085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 00:27 김중애
191084 사소한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00:25 김중애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