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5일 (화)
(녹)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더 중요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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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1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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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06:46 ㅣ No.191423

영화에는 길을 떠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길을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장소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어디를 향해 가느냐입니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는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아 길을 떠난 두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사건이 이어지면서 그들의 길은 점점 막다른 곳으로 향합니다. 마침내 두 사람은 절벽 앞에 도착합니다. 자유를 찾아 떠난 길이었지만, 그 길의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영화 폭풍 속으로도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보디는 거대한 파도를 타며 세상의 규칙을 거부합니다. 그는 위험한 삶을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마침내 엄청난 폭풍으로 들어가 거대한 파도를 탑니다. 겉으로는 용감하고 자유롭게 보이지만, 그가 향한 곳은 생명을 주는 바다가 아니라 죽음의 파도였습니다. 두 영화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습니까?” 자동차가 아무리 빨라도 절벽을 향하고 있다면 멈추어야 합니다. 파도를 타는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죽음의 폭풍으로 들어가고 있다면 돌아서야 합니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성경에도 서로 대조되는 두 장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집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로 살았던 곳입니다. 먹을 것은 있었지만 자유가 없었습니다. 파라오의 명령에 따라 강제노동해야 했습니다. 이집트는 겉으로는 풍요로운 땅이었지만, 하느님의 백성에게는 고통과 억압의 땅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입니다. 자유와 생명이 있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곳입니다. 오늘 제1독서와 복음은 이 두 장소로 향하는 서로 다른 이정표를 보여 줍니다. 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참된 제자의 길을 보여 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전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했습니다. 말로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땀과 수고로 복음을 증언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보여 준 길에는 희생이라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정직이라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이라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이 이정표를 따라가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약속의 땅은 단순히 고통이 없는 곳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함께 있는 곳, 양심의 평화를 누리는 곳,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곳입니다.

 

저는 알래스카에서 사목하는 후배 신부님의 모습에서 참된 제자의 길을 보았습니다. 신부님은 8년 넘게 알래스카 현지인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교구장님의 부탁으로 다섯 성당을 맡아서 사목하고 있습니다. 성당과 성당 사이의 거리가 멀고, 날씨와 도로 사정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부님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신자들을 찾아갑니다. 영어뿐 아니라 스페인어를 배우고, 현지인들의 문화와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음식을 준비하고, 필요한 곳을 살피고, 신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줍니다. 사목은 화려한 무대에 서는 일이 아닙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먼 길을 운전하고, 성당의 문을 열고, 제대를 준비하고, 아픈 사람을 찾아가고,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입니다. 후배 신부님의 삶에는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었습니다. 언어를 배우는 수고가 있었고, 먼 길을 찾아가는 희생이 있었고, 음식을 나누는 따뜻함이 있었고, 맡겨진 공동체를 끝까지 돌보는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반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길을 꾸짖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회칠한 무덤에 비유하셨습니다. 겉으로는 깨끗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이들의 뼈와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겉으로는 경건해 보였습니다. 율법을 잘 알고, 기도를 많이 하고, 사람들에게 존경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는 위선과 교만이 있었습니다. 죽은 예언자들의 무덤은 꾸미면서도, 정작 자신들 앞에 오신 예수님의 말씀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길에는 위선이라는 이정표가 있었습니다. 거짓이라는 이정표가 있었습니다. 교만이라는 이정표가 있었습니다. 말과 행동의 불일치라는 이정표가 있었습니다. 이 이정표를 따라가면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게 됩니다. 겉으로는 경건하고 풍요로워 보일지라도, 그 안에는 자유가 없습니다. 자신의 허물을 감추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며, 끊임없이 남을 판단하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당에 오래 다녔다고 해서 저절로 약속의 땅에 도착하는 것은 아닙니다. 직책을 맡고, 기도를 많이 하고, 성경을 잘 안다고 해서 반드시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약속의 땅을 향하고 있는지는 우리의 삶에 나타나는 이정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기보다 기꺼이 수고하고 있습니까? 나는 말로만 사랑하지 않고 행동으로 사랑하고 있습니까? 나는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맡겨진 일을 충실하게 하고 있습니까? 희생과 정직, 사랑과 겸손의 이정표가 보인다면 우리는 약속의 땅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선과 거짓, 교만과 욕심의 이정표가 보인다면 아무리 빨리 달리고 있어도 잠시 멈추어야 합니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겉모습보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사람의 칭찬보다 하느님의 뜻이 중요합니다.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을 따르지 않는 형제는 누구든지 멀리하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우리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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