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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4일 (월)
(홍)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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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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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11:05 ㅣ No.191884

김건태 신부님_악과 죽음을 이긴 사랑의 표지

 

[말씀]

1독서(민수 21,4-9)

히브리인들은 이집트 탈출 이후 광야에서 체험했던 기이한 일화 하나를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한 죄로 뱀에 물린 백성은 (이방인 세계에서) 치유의 신을 상징했던 구리 뱀을 향해 돌아섬으로써 죽음을 모면한 사건을 말합니다. 훗날 복음저자 요한은 이 사건을 십자가상 예수님을 예고하는 사건으로 이해하고서, 예수님이야말로 세상의 참된 구원자이심을 고백합니다. 

2독서(필리 2,6-11)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노래했던 초대 공동체의 찬미가 하나를 인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초대교회가 일찍부터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하는 기본적인 신앙고백을 살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으로서 하느님과 본질이 같으신 분이셨지만,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신 분입니다. 그분의 모든 삶은 따라서 사랑의 선물로 인식되며, 그분의 부활은 이 사랑의 승리를 드러낸 사건으로 길이 머뭅니다.

복음(요한 3,13-17)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의 대화 상대로 등장하는 니코데모는 진리에 열려 있던 사람이었으나, 인간 실존의 근원적인 거듭남이 왜 필요한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거듭남은 예수님에 의해서 비로소 가능해지고 뚜렷해질 것입니다. 십자가상 죽음에 이르기까지 당신을 온전히 내어주심으로써, 그분은 세상과 세상의 가치에 관한 진정한 변화를 이루어내실 것입니다.

 

[새김]

악과 죽음은 정말 모순입니다. 증오와 전쟁과 약자 억압이 난무하는 혼란스러운 이 세상에서 우리는 이 모순을 너무나 자주 체험합니다. 성공이 아니면 실패라는 논리가 당연한 것처럼 보이며, 사람들의 사라짐이 모든 것을 허무로 돌려버리는 현실 앞에 저항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악과 죽음은 정말 모순이며, 그 어떤 설명으로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믿음 말고는.

 

믿음은 이러한 현실은 끝내 지배되고 극복될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믿음 안에서 인간은 다른 세상, 곧 사랑 넘치는 세상을 일으켜 세우도록 초대됩니다. 이 초대에 응답하여 움직여나가면서 인간은 파괴될 수 없는 새로운 현실에 참여할 것입니다. 이 현실은 하느님 바로 그분께 참여함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거저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의 중심에 자리한 십자가의 의미입니다. 본디 처형 도구였으나,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시는 순간부터, 십자가를 사랑의 표지로 받아들이신 순간부터, 악과 죽음이라는 모순을 제거하는 찬란한 빛의 원천으로 부상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하루, 십자가는 악과 죽음을 이긴 사랑의 승리, 사랑의 표지임을 가슴에 새기며, 세상의 온갖 모순과 싸워나가겠다는 다짐의 축일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 십자가의 발견과 교회의 전승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은 교회가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구원 신비를 묵상하고 경배하는 날이다. 전승에 따르면,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루살렘에서 발견하였고, 황제는 이를 기념하여 335년경 성 무덤 성당을 봉헌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교회는 십자가를 경배하며, 십자가 안에서 드러나는 구원의 사랑을 전례 안에 깊이 새겨 넣게 되었다. 

 

2. 구리 뱀과 십자가의 예표

오늘 제1독서(민수 21,4-9)에서 하느님께 반항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불 뱀으로 벌을 받고, 회개 후 구리 뱀을 쳐다봄으로써 치유 받는 장면은 십자가의 예표이다. 구리 뱀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로 백성들의 시선을 다시 하느님께로 돌리게 하는 표징이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우상이 되었기에 히즈키야 왕 때 파괴되었다.(2열왕 18,4) 이처럼 표징은 언제나 하느님께 이끄는 통로일 때 의미가 있으며, 십자가도 단순한 고통의 도구가 아니라, 하느님 사랑의 표징이 될 때 구원이 된다. 

 

요한 복음에서 “들려지다.”라는 표현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십자가에 달려 높이 들리심(수난)으로, 그리고 부활과 승천으로 하늘에 올려지심(영광)이다. 성 에프렘은 이렇게 노래한다. “십자가는 하늘에 이르는 사다리가 되었다.”(Hymni de Cruce 4 의역) 십자가는 수치와 고통의 도구가 아니라, 영광과 승리로 나아가는 길이다. 

 

3. 교부들의 가르침

교부들은 십자가를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승리의 도구로 해석했다. 성 이레네오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십자가로 죽음을 죽이고, 생명을 드러내셨다.”(Adversus Haereses V,17,4 의역)라고 말한다. 십자가는 패배의 표지가 아니라, 생명의 원천이다. 성 안드레아 크레타노도 이렇게 설교했다. “십자가는 온 세상의 화해이며, 죄인들의 회개이고, 그리스도인의 영광이다.”(십자가 축일 강론 의역) 성 요한 다마스코는 “우리는 십자가를 경배한다. 그것은 나무 자체 때문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흘린 그리스도의 피 때문”(De Fide Orthodoxa IV,11 의역)이라고 가르쳤다. 이처럼 교부들의 가르침 안에서 십자가는 단순한 과거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신자들의 삶 안에 계속해서 드러나는 구원의 능력이다. 

 

4. 교회의 가르침

교회 헌장은 교회를 “십자가의 신비 안에서 태어난 공동체”(8항 의역)라고 표현한다. 또한, 교리서는 십자가를 이렇게 해석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분의 부활과 더불어 우리의 의화와 성화를 이룩한 원천이다.”(1992항 의역)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유일한 희생이며, 그분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재자이시다.”(618항 의역) 따라서 십자가는 단지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 신자들이 날마다 자기 삶 속에서 지고 따라야 하는 실천적 신앙의 길이다. 

 

5. 신앙에 적용

우리의 일상에서 십자가는 단순히 장식품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지고 가야 할 삶의 무게이자, 하느님 사랑의 흔적이다. 예수님께서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라고 하신 말씀처럼,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마주한 고통과 한계를 피하지 않고 그 안에서 하느님과 결합할 때, 비로소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함으로써 구리 뱀을 바라보고 살았듯이, 우리도 회개와 믿음을 통해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십자가 안에는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이 새겨져 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셨다.”(요한 3,16). 우리가 이 사랑을 받아들이면 구원에 이르지만, 거부한다면 사랑 자체를 거부하는 길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6. 결론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은 우리 구원의 중심을 이루는 십자가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는 날이다. 십자가는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사랑의 절정이며, 패배가 아니라 승리이다. 우리가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를 때, 십자가는 우리를 부활의 새 생명으로 이끄는 사다리가 될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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