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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5일 (화)
(백)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아들 수난 보는 성모 맘 저미는 아픔 속에 하염없이 우시네(‘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부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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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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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8:57 ㅣ No.191907

김건태 신부님_고통의 성모마리아 

 

어제 우리는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냈습니다. 본디 처참한 처형 도구였으나, 세상과 인류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시는 순간부터, 십자가는 악과 죽음이라는 모순을 제거하는 찬란한 빛의 원천으로 자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라나선 우리는 십자가를 악과 죽음을 이긴 사랑의 승리, 사랑의 표지임을 믿어 고백하는 신앙인들, 세상의 온갖 모순과 싸워나가는 신앙인들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한편 십자가를 삶의 고통을 대표하는 표징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먼저 고통이 없는 삶은 없다.’라는 진리 앞에 서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하고 말씀하셨을 때, 특정한 고통, 특별한 십자가를 가리키셨다기보다는, 고통이 늘 동반되는 삶 전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당신의 뒤를 따르라는 가르침이었음을 다시금 새깁니다. 그렇습니다, 고통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언뜻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들어가 보면 나름의 고통을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가 행복해 보이는 것은 고통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고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극복해나가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다음날 고통의 성모 마리아를 기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천주 성자를 낳으셨기에 하느님의 어머니로 공경받고 계신 성모님도 고통 앞에는 우리와 다름이 없으셨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삶의 연속이었지만, 아드님의 구원 사업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그 고통을 기꺼이 짊어지고 살아가신 분입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복음서의 내용에 따라, 성모님이 겪으신 고통 가운데 일곱 가지를 선정하여 성모칠고(聖母七苦)라 부르며 기념합니다: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릴 것을 예고한 시메온의 예언(루카 2,35), 이집트로 피신하심(마태 2,14),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잃으심(루카 2,48),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심(요한 19,17 참조), 십자가 아래서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보심(요한 19,25), 십자가에서 내리신 예수님을 품에 안으심(요한 19,40 참조), 예수님을 무덤에 묻으심(요한 19,42) 등입니다.

 

성모님이 겪으신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성모님이 언제나 고통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를 지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품습니다. 성모님은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는 모습까지 지켜보신 분입니다. 성모님은 아들의 손과 발에 못이 박히는 처참한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보셨고,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까지 십자가 아래에서 함께 고통스러워하신 분입니다. 이 같은 고통을 겪으셨기에, 우리가 겪는 어떤 고통에도 함께해주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 아드님의 고통에 늘 함께하시며 아드님의 구원 사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셨던 성모님을 기리며, 우리보다 더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허덕이는 이웃들을 살피고 기도하며 다가서,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고 도움을 주는, 보람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이분이 네 어머니이시다. 

 

1. 십자가 아래 선 마리아

오늘은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이다. 교회가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다음 날에 이 기념일을 지내는 이유는, 마리아께서 아들의 십자가 고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음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마리아는 단순히 멀리서 바라보는 목격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자신을 내어 맡긴 참여자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에서 이렇게 가르친다. “마리아의 ‘고통 참여’는 단순한 감정적 연민을 넘어,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믿음으로 협력한 참여였다.”(RM 18항 참조) 

 

2. 시메온의 예언과 이루어짐

시메온은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던 자리에서 마리아의 운명을 예언했다. “당신의 영혼은 칼에 꿰찔릴 것입니다.”(루카 2,35). 이 말씀은 십자가 아래에서 온전히 성취되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복된 마리아는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육신을 낳으셨고,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수난을 함께 겪으셨다.”(Sermo 120 의역) 마리아의 고통은 단순히 모성적 슬픔이 아니라, 인류의 구원에 동참한 신비로운 고통이었다. 

 

3. “이분이 네 어머니이시다.”: 새로운 모성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제자 요한에게 마리아를 맡기신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27절). 이는 마리아의 모성이 혈연을 넘어 새로운 인류 공동체, 곧, 교회의 어머니로 확장됨을 뜻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한다.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교회가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게 하셨다.”(Homilia in Ioannem 85,2 의역) 이 순간 마리아는 단순히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가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태어나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어머니가 되셨다. 

 

4. 교회의 가르침

교회 헌장은 이렇게 가르친다. “마리아는 십자가 밑에서 순종과 믿음과 희망과 열렬한 사랑을 가지고 새 인류의 어머니가 되셨다.”(61항 의역) 또한, 교리서는 말한다. “마리아는 십자가 밑에서 그 아들의 죽음에 동참함으로써, 새로운 영적 자녀들의 탄생에 협력하였다.”(964항 의역) 따라서 교회는 마리아를 고통의 동반자이자 교회의 어머니로 공경하는 것이다. 

 

5. 우리 삶에 주는 의미

마리아의 고통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에도 깊은 의미를 준다. 우리는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며, 마리아처럼 믿음으로 고통에 동참해야 한다. 마리아의 모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단순히 성모님을 공경하는 차원을 넘어, 그분의 믿음과 순종의 길을 본받는 것이다.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27)라는 말씀처럼, 우리도 성모님을 삶의 동반자로 모셔야 한다. 

 

6. 결론

고통의 성모 마리아는 십자가 아래에서 우리와 함께 서 계시는 믿음의 어머니이시다. 오늘 우리는 성모님과 함께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할 것이다. 마리아의 고통과 신앙을 본받아, 우리도 하느님께 삶을 제물로 바치는 참된 제자가 되어야 하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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