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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4주간 금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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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한글은 세종대왕이 1443년에 창제하였고, 1446년에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선포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글은 만들어지자마자 환영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지배층과 지식인들은 한문을 사용하였습니다. 행정 문서와 과거 시험도 대부분 한문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한글은 오랫동안 공식적인 글로 인정받지 못했고, 주로 글을 배우기 어려웠던 백성과 여성들이 사용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우리 말과 글을 자유롭게 사용하기가 어려웠고, 이름마저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요받았습니다. 한글은 역사 속에서 무시당했고, 억압받았으며, 자칫 사라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글에는 강한 생명력이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삶 속에서 사용되었고, 나라를 잃은 시기에는 민족의 정신을 지키는 힘이 되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모든 국민이 글을 배울 수 있도록 한글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읽고 쓸 수 있게 되면서 지식을 배우고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한글은 대한민국의 교육과 산업 발전을 이루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한글의 창제 원리도 오랫동안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종대왕이 창문의 모양을 보고 한글을 만들었다고 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외국의 문자를 본떠 만들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한글이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하는 기록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1940년, ‘훈민정음해례본’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은 그 가치를 알아보고 당시 기와집 여러 채를 살 수 있는 큰돈을 주고 그것을 사들였습니다. 훈민정음해례본에는 한글을 만든 목적과 글자의 창제 원리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자음은, 사람이 소리를 낼 때 혀와 입술과 목구멍이 움직이는 모양을 본떠 만들었고, 모음은 하늘과 땅과 사람의 원리를 담아 만들었습니다. 한글은 우연히 만들어진 글자가 아니라, 인간의 발음 기관과 자연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여 만든 과학적인 문자였습니다. 훈민정음 서문에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이유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를 배운다 해도 뜻을 제대로 표현하기가 어려웠고,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해도 자신의 사정을 글로 나타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쉽게 글을 배워 자기의 뜻을 펴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기를 바랐습니다. 한글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태어난 글이었습니다. 한글은 오랫동안 무시되고 없어질 위기에 처했지만, 그 안에 담긴 생명력 때문에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훈민정음해례본을 통해 한글의 창제 원리와 정신이 분명하게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 신앙의 핵심인 ‘부활’을 이야기합니다. 당시 코린토 공동체 안에는 죽은 이들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먹고 마시며 즐기면 된다고 여겼습니다. 이에 바오로 사도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 부활은 신앙에 덧붙여도 되고 빼도 되는 하나의 교리가 아닙니다.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이며 기초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한 의로운 사람의 억울한 죽음으로 끝나고 맙니다. 부활이 없다면 제자들의 복음 선포도 의미가 없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사랑을 위해 희생하고, 정의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며,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는 우리의 믿음도 헛된 일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확신에 차서 선포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한글이 여러 차례 사라질 위기를 이겨내고 살아남았듯이, 부활의 복음도 박해와 의심과 세상의 반대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처음에는 두려워했고, 의심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토마는 예수님의 상처를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변하였습니다. 숨어 있던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두려워하던 사람들이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지키려던 사람들이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부활은 제자들의 생각 속에서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킨 사건이었습니다. 한글의 창제 원리와 정신이 훈민정음해례본을 통해 후대에 전해졌듯이, 예수님의 부활은 사도들의 증언과 바오로 사도의 확신에 찬 선포를 통해 교회 안에 전해졌습니다. 부활 신앙은 우리에게 다른 길을 보여 줍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선한 행동이 헛되지 않으며, 사랑을 위한 희생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세상의 평가와 보상이 없어도 하느님께서 우리의 눈물과 수고를 기억하신다고 믿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자기의 재산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작은 봉사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과 헌신은 복음 선포의 길을 열었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거창한 일을 꿈꾸기 전에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사랑을 실천합니다. 가난한 이에게 손을 내밀고,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나눕니다. 한글은 백성들의 삶 속에서 사용되었기에 살아남았습니다. 부활 신앙도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될 때 세상에 전해집니다. 우리가 용서할 때 부활의 생명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절망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전할 때 부활의 빛이 비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고, 아픈 이를 돌보며, 억울한 이의 편에 설 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살아 계십니다. 우리의 희망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시며, 우리의 죽음을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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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38 |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
06:31 | 조재형 |
| 191937 |
하수는 똑똑해야 이기는 줄 안다. |
06:05 | 김중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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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 |
06:04 | 김중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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