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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신부님_부끄러움의 은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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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목자, 수도자들을 포함한 종교인들이 물질만능주의에 푹 빠져 누릴 것 안 누릴 것 다 누리고 아쉬움 없이 살아가게 될 경우 즉시 나타나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고통받는 양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상처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들의 깊은 상처를 싸매주고, 힘겨운 마음을 달래줘야 하는데, 영적인 눈이 감기다 보니 아예 그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딱 그러했습니다. 형식적이고 가시적인 것에만 혈안이 되다보니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들에 대한 공감 능력도 사라졌습니다. 율법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죄인들과 주변인들을 단죄하고 험담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사이가 그랬습니다. 그는 자신이 마련한 잔치에 예수님을 초대했습니다. 그 자리에 죄인인 한 여자가 지극 정성으로 예수님을 환대하자, 그 꼴을 못보고 뒷담화를 합니다.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잔치를 주관한 바리사이는 육적인 눈은 뜨고 있었지만, 영적인 눈은 감겨있었습니다. 그 여인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어쩔 수 없는 환경이나 처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드러난 현실을 보고 험담하고 판단하고 단죄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등장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공감의 대가셨습니다. 공감이라는 표현은 동정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공감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아픔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상처투성이인 그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련하고 불완전한 우리 인간의 운명을 당신의 온 몸과 마음으로 수용하고, 우리와 똑같이 살아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우리 주님의 육화강생인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밥먹듯이 죄를 짓고 방황하며 괴로워하는 우리에게 다가오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고통이 곧 내 고통이다. 네 눈물이 곧 내 눈물이다. 네 슬픈 운명인 곧 내 운명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부끄러워할 줄 아는 한 여인의 삶의 방향을 죄와 죽음에서 생명과 구원으로 되돌려놓으셨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부끄러워할 줄 안다는 것, 참으로 소중한 삶의 태도인 듯 합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인데, 부끄러움을 조금도 느끼지 못한채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끄러움은 엉뚱한 사람의 몫으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사이가 그랬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부끄러워하는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고, 크게 용서하시고, 힘을 주시고, 원기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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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목 / 한상우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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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부님_부모에게 감사하지 못하며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을까? |
08:37 | 최원석 |
| 191942 |
양승국 신부님_부끄러움의 은총! |
08:37 | 최원석 |
| 191941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
08:37 | 최원석 |
| 191940 |
이영근 신부님_“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루카 7,47) |
08:37 | 최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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