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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9월 21일 성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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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21일 성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습니다. 유리창이 깨지지 않은 방치된 자동차는 한동안 멀쩡하게 유지되지만, 유리창이 깨진 차는 방치된 지 10분 만에 배터리가 사라지고, 타이어도 사라졌습니다. 일주일 뒤에는 낙서와 오물 투기가 일어났고, 나머지 차량 부품도 사라졌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평범해 보이는 사람도 훔치거나 파괴하거나 더럽히는 행동에 가담한다는 것입니다. 이 행동에 어떤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면서 말이지요.
이렇게 작고 사소한 범죄에 노출된 환경에서 사람들은 도덕적 기준이 낮아진다는 이론입니다. 그런데 이 이론을 극복할 방법이 있었습니다. 바로 집합 효율성입니다. 하버드 대학교 로버트 샘슨 교수는 ‘공동체의 개입 의지’로 설명합니다. 즉, 낙서를 지우는 사람, 깨진 유리창을 고칠 사람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입니다.
도덕적 기준이 해가 거듭될수록 낮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쯤이야’,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그러나 사람 하나 하나가 도덕적 기준을 높여나갈수록, 또 사회의 무질서를 묵인하고 용인하는 공동체의 무관심이 사라질수록 이 세상은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도덕적 기준은 어떤가요? 과연 사랑에 적극적인가요?
예수님께서 세관에 앉아 있는 세리 마태오를 보시고 “나를 따라라.”(마태 9,9)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유다 사회에서 세리는 로마 제국의 부역자이자 동족의 고혈을 빠는 자로 취급되었습니다. 따라서 율법적으로 부정한 직업이었고, 도덕적으로는 민족의 배신자였기에 회당 출입조차 금지된 배척의 대상이었습니다. 마태오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돈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그냥 살았을 것입니다. 점점 도덕적 기준이 낮아지면서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졌을 것입니다.
이런 그를 예수님께서 보십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관찰이 아니라 전 존재를 꿰뚫어 보시는 구원적 시선이었습니다. 세상은 그를 ‘매국노 세리’로 보았지만, 예수님은 치유받아야 할 영혼이자, 하느님 나라의 일꾼으로 보신 것입니다. 자기를 구원하려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마태오는 질문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물질적 안정을 보장하던 세관의 자리를 즉시 버리고 일어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사도 목록에서 자신을 부를 때 결코 과거의 오점이었던 직업을 숨기지 않고 ‘세리 마태오’(마태 10,3)라고 당당하게 기록합니다. 자신의 수치스러운 과거조차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드러내는 거룩한 무대가 되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변화되기를 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께서는 사랑에 적극적인 우리가 되기를 바라면서 계속해서 죄인인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에 집중해야 합니다. 단순히 남들처럼 사는 삶이 아닌,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은 훨씬 아름다워지고, 하느님 나라가 가까워질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제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을 주시고, 바꿔야 하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라인 홀드 디부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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