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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영성 단편소설] 《너와 나, 서로의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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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선 [hsyoonrda] 쪽지 캡슐

07:22 ㅣ No.192786

[가톨릭 영성 단편소설 | 시간의 유령들] 《1.너와 나, 서로의 천사》


"세상의 속도와 비교하면 보잘것없이 느리고 비틀거리는 걸음이었지만, 서로의 천사가 되어 함께 오르는 오르막길 끝자락에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은은하고 붉은 새날의 온기가 푸스스 피어나고 있었다."



첫번째 이야기 :



《너와 나, 서로의 천사》



  鴻仙  윤홍선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1. 3번 출구의 그늘


도시철도 2호선과 4호선이 번화한 중심가 아래서 어지럽게 얽히는 환승역, 3번 출구의 높다란 대리석 기둥의 그늘은 사계절 내내 서늘한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칠순을 훌쩍 넘긴 '박순애'의 일터이자 유일한 거처는 언제나 그 3번 출구 기둥 옆이었다. 그녀가 매일 아침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끌고 나오는 낡은 철제 손수레는 오랜 세월의 찌든 때와 녹이 쓸어 붉은 핏자국 같은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 수레 위에는 동네 상가 골목을 샅샅이 뒤져 모은 구겨진 택배 박스 쪼가리와 찌그러진 음료수 캔, 그리고 버려진 서류 더미가 아슬아슬하게 밧줄에 묶인 채 쌓여 있었다.



손수레의 쇠 손잡이를 쥔 순애의 손가락 마디는 연탄가마에서 막 굳어 나온 흙처럼 검고 퉁퉁 부어 있었다. 마디마디마다 깊게 팬 굳은살은 굳어버린 세월의 흉터였다.



더 잔인한 것은 몸 내부의 통증이었다. 칠십 평생을 밭농사와 식당 일, 그리고 빌딩 청소부로 구르며 마모될 대로 마모된 무릎 연골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뼈와 뼈가 직접 부딪칠 때마다 척추를 타고 뇌리까지 뻗치는 날카로운 바늘 통증에 순애는 매 걸음마다 입술을 깨물며 억눌린 신음을 삼켜야 했다. 의사는 인공관절 수술을 받지 않으면 평생 걸을 수 없다고 경고했지만, 수술비 수백만 원은 순애에게는 먼 우주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순애의 경제적 삶은 대한민국 노인 빈곤이라는 거창한 통계 수치가 가진 가장 서늘한 실체였다.



십여 년 전, 평생 정직한 목수로 일했던 남편이 간암 판정을 받으면서 가계는 단숨에 벼랑 끝으로 떨어졌다. 병원비와 약값을 대기 위해 십수 년간 피땀 흘려 마련했던 변두리의 작은 18평 아파트를 경매로 날렸고, 하나뿐인 외아들은 부모의 집까지 담보 잡혀 시작했던 치킨집 사업이 폭망하자 빚더미를 짊어진 채 야반도주하듯 소식이 끊겼다. 자식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슬픔 속에서 남편은 억울함과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홀로 남겨진 순애의 한 달 생계는 매달 지급되는 기초연금 33만 원과, 무릎 통증에 밤마다 눈물을 흘리며 폐지를 모아 손에 쥐는 12만~15만 원이 전부였다.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25만 원짜리 단칸방의 방세를 내고, 겨우 연명하는 관절염 약값과 겨울철 난방비를 빼고 나면 순애의 손에 남는 식비는 하루 4천 원 남짓이었다. 유통기한이 임박해 떨이로 파는 라면 한 봉지와 덤으로 얻은 짠지 몇 조각으로 하루 두 끼를 버티는 삶이었다.


---



2. 투명인간

오전 7시 30분이 넘어서면 3번 출구는 이 도시에서 가장 비정한 전쟁터로 변모했다.

비싼 브랜드 코트 깃을 바짝 세우고 귀에는 유선형 무선 이어폰을 꽂은 청년들과 직장인들이 검은 반사체 같은 지하철 출구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발걸음은 1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매섭고 오만했다.



순애는 밀려드는 사람들의 거친 어깨 파도에 밀려 손수레를 벽 쪽 대리석 기둥으로 바짝 붙였다. 굽은 허리를 더 낮게 웅크리며 스스로를 최대한 작게 만들었다.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순애의 굽은 등과 찌그러진 손수레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아니, 그들은 보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리거나 눈길을 허공으로 던졌다. 늙고 가난하며 비루한 노파의 존재는 그들의 화려하고 바쁜 아침 풍경에서 철저하게 지워져야 할 '재수 없는 미래의 그림자'일 뿐이었다. 순애는 그 화려한 도시 한복판에서 철저히 투명인간이었다.


"아, 진짜! 할머니, 길 한복판에 수레를 대놓으면 어떡해요! 바쁜데 길 막잖아요!"


계단을 급하게 뛰어 올라오던 한 청년이 순애의 손수레 끝자락을 신경질적으로 차며 지나갔다.

중심을 잃은 손수레가 휘청거렸고, 묶여 있던 밧줄이 풀리면서 순애가 며칠 동안 무릎을 깎아가며 모아둔 폐지 더미와 빈 깡통들이 찬 아스팔트 바닥으로 사방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흩어졌다.


"아이고, 이를 어째…… 어머나……."



순애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얼른 바닥에 주저앉았다. 지나가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흩어진 박스 조각을 피해 아슬아슬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떤 이는 박스를 밟고 지나가며 혀를 찼고, 어떤 이는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비켜 갔다.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순애는 삐걱거리는 무릎을 찬 바닥에 대고 엎드려 떨리는 손으로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 늙은 눈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 위에 툭, 툭 떨어져 검은 자국을 남겼다. 이 무자비한 세상 속에서 자신은 그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버려진 폐지만도 못한 존재라는 비애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3. 두개의 고독



바로 그때, 쏟아져 나오던 출근길 인파 속에서 한 발걸음이 뚝 멈춰 섰다.

낡고 색 바랜 백팩을 어깨에 메고, 귀밑까지 내려오는 품이 넉넉한 털모자를 쓴 스물일곱의 청년, '한민우'였다.



민우 역시 이 비정한 도시의 가장 깊은 바닥에서 매일 영혼이 파먹히고 있는 또 다른 유령이었다. 지방의 무명 대학을 졸업하고 과감히 상경한지 2년. 민우가 손에 쥔 것은 서류 전형 마흔다섯 번 탈락이라는 참담한 낙방의 기록표뿐이었다.



부모에게 더 이상 손을 벌릴 수 없어 시작한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주말 물류창고 일용직으로 버는 돈은 매달 100만 원 남짓. 보증금이 깎여 나가 이제는 짐을 빼야 할지도 모르는 서너 평짜리 고시원 방에서, 민우는 극심한 불면증과 신경성 역류성 식도염에 시달리고 있었다.



매일 아침 스터디룸으로 향하는 민우의 가슴속에는 '나는 이 사회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낙오자'라는 지독한 무력감과 자괴감이 칼날처럼 박혀 있었다.



민우는 자기도 모르게 인파에 떠밀려 몇 걸음 계단을 더 올라갔으나, 바닥에 엎드려 바들바들 떠는 노파의 굽은 등과 흩어진 폐지를 본 순간 발걸음을 차마 떼지 못했다. 민우는 주저 없이 뒤를 돌아보더니,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어깨를 헤치고 아래로 내려왔다.



민우는 순애의 옆에 턱하고 무릎을 꿇었다. 차가운 바닥에 자신의 바지릎이 더러워지는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다치신 데는 없어요?"


민우의 목소리는 새벽 공기처럼 맑았지만, 동시에 깊은 떨림을 품고 있었다. 민우는 얼른 바닥에 사방으로 흩어진 택배 박스 조각들을 두 손으로 덥석 짚어 모으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저 친구는 아침부터 왜 저래?"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민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민우는 흩어진 캔과 폐지를 끌어모아 수레 위에 차곡차곡 쌓은 뒤, 손수레 구석에 묶여 있던 굵은 노끈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능숙하게 노끈을 당겨 폐지 더미가 다시는 쏟아지지 않도록 팽팽하게 묶어 주었다.



그 순간, 순애는 폐지를 함께 묶어주는 민우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민우의 손톱 끝은 극심한 불안과 초조함으로 인해 피가 나도록 뜯겨 있었고, 민우 역시 순애의 파르르 떨리는 굳은살 투성이의 굽은 손마디를 보았다.



그것은 단순한 도움의 순간이 아니었다. 세상의 오만한 속도에서 버려진 늙은 노인과, 무한 경쟁의 미끄럼틀에서 떨어져 낙오자가 된 청년이, 서로가 짊어진 지독한 고독과 상처의 냄새를 정확히 알아보는 기적 같은 교감의 순간이었다.



민우는 팽팽하게 매단 로프를 확인한 뒤, 맑은 미소를 지으며 순애의 어깨를 가만히 다독였다.


"할머니, 이제 단단히 묶였어요. 다친 데 없으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순애는 멍하니 청년을 바라보다가, 낡은 작업복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아이고, 총각…… 고마워, 고마워…… 바쁜 출근길일 텐데 나 같은 늙은이 때문에……."


---


4. 서로의 천사


그날의 만남은 일회성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피어난 아주 특별하고 지속적인 연대의 시작이었다.


민우는 매일 아침 스터디룸으로 가기 전, 일부러 3번 출구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순애의 무거운 폐지 손수레를 끌어 고물상 입구까지 함께 올라가 주었다. 민우의 튼튼한 젊은 어깨가 손수레를 끌어주자, 순애는 무릎을 짓누르던 바늘 같은 통증을 비로소 덜 수 있었다. 또한, 늙은 노파라고 해서 매번 폐지 무게를 속이거나 박한 셈을 치르던 고물상 주인도 청년 민우가 옆에 버티고 서 있자 정직하게 무게를 달아 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그 대가로 순애가 민우에게 준 것은 돈이 아니었다. 순애는 매일 아침 집에서 정성껏 끓인 따뜻한 보리차를 담은 작은 보온병과, 찬밥을 뭉쳐 만든 주먹밥 두 덩이를 낡은 가방에서 꺼내 민우의 손에 쥐여주었다.


"민우 씨, 속 굶지 말고 이거 먹고 해. 청춘이 속이 든든해야 길을 찾지."


역류성 식도염으로 아침마다 위장이 꼬이던 민우에게 순애가 건넨 따뜻한 보리차와 주먹밥은 지친 몸을 다독이는 유영한 온기였다. 그리고 "민우 씨는 눈빛이 선해서 틀림없이 좋은 사람이 될 거야.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가" 하고 툭 던지는 순애의 덤덤한 한마디는, 취업 낙방으로 만신창이가 된 민우의 영혼에 그 어떤 말보다 깊은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세상은 연금과 세금, 일자리를 두고 청년과 노년이 서로의 몫을 빼앗는 적대적 관계라 부추겼지만, 3번 출구의 차가운 바닥에서 만난 두 사람은 달랐다.


노년의 깊은 세월이 품은 따뜻한 모성은 청년의 고립된 영혼에 다시 뿌리를 내릴 흙이 되어주었고, 청년의 신체적 힘과 감각은 노년의 무너져가는 생존을 받쳐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어느덧 아침 인파가 빠져나간 3번 출구 위로 노란 햇살이 얇은 비단처럼 나란히 깔리기 시작했다.


민우는 고물상으로 향하는 오르막길 앞에서 손수레 손잡이를 고쳐 쥐며 고개를 돌렸다.


"할머니, 오늘 언덕길은 조금 천천히 올라가요. 저도 오늘은 스터디룸 말고 도서관 창가 자리로 갈 거거든요."


순애가 굽은 허리를 숙여 수레 뒤를 가만히 손으로 받치며 허허롭게 웃어 보였다.


"그래, 민우 씨. 바람이 한결 순해졌다. 천천히 가자꾸나."


순애는 앞장서서 수레를 이끄는 청년의 든든한 등판을 바라보며 속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하느님이 이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나 같은 늙은이를 잊지 않으시고, 날개 없는 천사 하나를 내보내 주셨구나.’


같은 시간, 팽팽하게 로프를 쥐고 언덕을 오르던 민우 역시 품 안의 따뜻한 보온병을 느끼며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세상 모두가 자신을 낙오자라 부르며 외면할 때, "민우 씨는 틀림없이 좋은 사람이 될 거야" 하고 믿어준 노파의 덤덤한 목소리가 가슴속 깊은 곳에서 구원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 청년에게도 노인은 차가운 세상의 비바람을 막아주는 또 한 명의 천사였다.


수레바퀴가 돌멩이를 넘어가며 드르륵하고 작은 울림을 냈다.


세상의 속도와 비교하면 보잘것없이 느리고 비틀거리는 걸음이었지만, 서로의 천사가 되어 함께 오르는 오르막길 끝자락에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은은하고 붉은 새날의 온기가 푸스스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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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blog.naver.com/hsyoonrda/224455645900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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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영성#단편소설#윤홍선#서로의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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