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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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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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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05:40 ㅣ No.192823

꾸르실료 다녀온 형제님들의 ‘체험담’ 발표가 있었습니다. 한 형제님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예전에는 스마트폰으로 하루를 시작하였고, 스마트폰으로 하루를 마쳤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침기도로 하루를 열고, 저녁기도로 하루를 닫고 있습니다.” 3박 4일 체험 중에 ‘시계,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도록 동의(?)를 구하고 거두었다가 끝날 때 나누어 드렸습니다. 체험자들은 스마트폰이 없는 시간을 힘들어했지만, 나중에는 스마트폰에서 벗어났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요즘 법정 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을 읽고 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서 보는 영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스님의 글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글의 빼어남도 있지만, 스님의 삶이 그 글에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며칠 출타 중에 청설모가 문풍지에 구멍을 낸 것을 보았고, 스님은 창호지를 새롭게 문에 바르는 작업을 소개하였습니다. 스님은 일을 통해서 수행하는 기쁨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분심(分心)과 잡념(雜念)에 빠져서 예불하는 것보다 일하면서 느끼는 깨달음이 더 크다고 했습니다.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암산의 천재를 본 적이 있습니다. 큰 칠판에 엄청난 숫자를 가득 채워 놓으면 눈으로 보고 정답을 맞히는 것입니다. 저도 주산 학원에서 암산을 배운 적이 있지만 기껏해야 두 자릿수 정도였습니다. 천재는 억 단위 이상의 수를 암산으로 맞추었습니다. 하지만 계산기가 나오고, 컴퓨터가 나오고, 이제 인공지능이 나오면서 그런 암산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릴 때 우마차를 보고 자랐습니다. 80년대를 지나면서 ‘자동차’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제는 자동차가 없는 집은 거의 없습니다. 앞으로 자율주행 자동차가 거리를 가득 메울 것입니다. 사람이 운전하는 것이 신기한 날이 올 것도 같습니다. 시대가 변하면 삶의 방식과 도구는 바뀌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고, 바꿀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이 지닌 ‘품격’입니다. 교회는 그것이 하느님을 닮은 마음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에게 주어진 불성이라고 합니다. 유교에서는 인간에게 내재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의 마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에게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중요한 것보다 소중한 것을 먼저 선택하고, 세상의 계산보다 하느님의 뜻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편안함과 성공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희생과 아픔을 받아들이고, 비판과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진실과 정의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도 교회의 개혁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바쳤습니다. 그는 높은 지위에 머물지 않고 사제들의 교육과 가난한 이들의 구호에 힘썼으며, 전염병이 퍼졌을 때도 사람들을 떠나지 않고 곁을 지켰습니다. 주교라는 직함보다 목자로서 져야 할 십자가를 먼저 생각했던 것입니다.

 

신앙은 은총을 받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받은 은총을 이웃에게 나눌 때 비로소 사랑의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위로만 해 주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권한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꾸르실료를 체험한 형제님들도 이제 받은 사랑을 가정과 본당과 세상에서 나누어야 합니다. 저 역시 사제로서 큰일만 찾기보다 한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작은 정성을 다하며, 누군가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하늘의 태양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빛과 생명을 나누면서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소유하려는 삶에서 벗어나 나누고 비우는 ‘존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투덜거리거나 따지지 말고, 비뚤어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별처럼 빛나는 사람이 되라고 권고합니다. 별은 큰 소리를 내지 않지만, 어두운 밤길을 밝혀 줍니다. 우리의 작은 기도와 정성, 따뜻한 말 한마디와 조용한 희생도 누군가에게는 길을 밝혀 주는 별이 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하루를 열고 닫았던 형제님이 이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는 것처럼, 우리도 오늘 작은 것 하나를 내려놓고 주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십자가를 사랑으로 받아들이며, 이웃의 마음을 열어 주는 빛나는 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니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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