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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5일 (목)
(녹)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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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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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10:57 ㅣ No.192874

김건태 신부님_찾아 나서는 하느님

 

군중 가운데는 세리들과 죄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행적을 보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인들로 자처하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리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 유사한 유형의 비유 말씀을 통해서 이들의 투덜거림에 응답하십니다. ‘목자와 양 떼’의 표상은 구약성경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말하는 데에 인용되는 고전적 주제이며, 흩어졌거나 잃어버린 양들을 되찾음은 구원을 뜻하는 전통적 은유입니다. 양을 잃어버렸을 경우, 목자는 양을 찾아 이리저리 뛰는 등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쏟았던 수고는 모두 잊어버리고, 번쩍 들어 어깨에 메고 돌아와, 그 기쁨을 이웃들과 나눕니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은전 한 닢을 잃었던 어떤 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이 비유 말씀에서 예수님은 잃었던 양 또는 은전, 곧 죄인을 돌아오게 함에서 모든 것을 주도하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심을 밝혀주십니다. 잃었던 것을 되찾으시는 과정에서, 하느님은 당신의 염려와 애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십니다. 죄인들을 이스라엘의 거룩한 공동체에서 축출했던 바리사이들과 달리, 찾아 나서 구원하시는 하느님은 되찾으신 것만으로 만족하십니다. 용서는 그다음 일입니다. 되찾으셨다는 기쁨이 모든 것을 뒤덮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죄인들을 단죄하거나 축출하기에 앞서, 바리사이들이 마음에 꼭 담고 있어야 하는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하느님은 이 기쁨을 모든 이와 나누어, 당신의 무한한 자비를 확인하고 체험하도록 초대하십니다. 당신을 보내신 성부께서 죄인을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용서를 통해 큰 기쁨을 누리시니, 예수님도 그들을 돌보셔야 했으며,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음식을 나누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거짓 의인들’은 투덜거릴 것이 아니라, 회개로 마음을 바꾸어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의 자비가 선사하는 참 기쁨을 누릴 기회가, 곧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하는 초대의 말씀에 응할 기회가 허락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비유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죄에서 돌아서 회개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것 역시 하느님 은총의 선물임을 일깨워 주십니다. 돌아서기만 하면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 아니 돌아서도록 당신이 먼저 찾아 나서시는 자비하신 하느님을 바라보며, 감사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던, 그 생각과 행동 때문에 노심초사하시는 하느님을 바라보며, 바르게 생각하고 제대로 행동하는 신앙인의 삶을 다지는, 은혜로운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15,1-10: 죄인을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마음 

 
오늘 복음은 잘 알려진 두 가지 비유, 잃어버린 양의 비유와 잃어버린 은전의 비유를 들려준다. 이 두 비유는 공통으로 길 잃은 죄인을 끝까지 찾으시고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보여 준다.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길 잃은 한 마리를 찾으러 나선다. 만약 인간적인 계산으로만 본다면, 한 마리를 포기하고 아흔아홉 마리를 지키는 것이 이성적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계산적인 것이 아니다. 사랑은 하나라도 잃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마음이다.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오는 목자의 모습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떠올리게 한다. 주님의 두 팔은 마치 우리를 어깨에 메고 계신 팔이며, 그 위에 우리의 죄가 얹혀 있다. 우리가 회개하여 돌아오면, 주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쁨으로 맞아 주신다. 성 암브로시오는 말한다.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나섰다. 그 양은 아담 안에서 길 잃은 인류였고, 어깨에 메어 오신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였다.”(Expositio Evangelii secundum Lucam, lib. VII, 210–211) 
 
은전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습”(imago Dei)이 새겨진 인간을 의미한다. 우리가 죄로 하느님을 떠날지라도, 그분은 우리 안에 새겨진 당신의 형상을 지워버리지 않으신다. 등불을 켜고 집안을 쓸며 은전을 찾는 여인의 모습은 교회와도 같다. 교회는 세상의 어둠 속에서 등불을 밝히고, 길 잃은 이들을 끝까지 찾는다. 우리가 회개하여 하느님께 돌아올 때, 우리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모습이 다시 빛을 내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10절) 이 기쁨은 단순한 감정적 환희가 아니라, 하늘과 땅이 함께 울려 퍼지는 구원의 기쁨이다. 우리가 하느님께 돌아올 때, 하늘이 기뻐하고, 교회가 기뻐하며, 무엇보다 주님께서 기뻐하신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 늦게서야 제가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나이다. 그러나 이제 저는 당신을 찾았고, 당신 안에서 저의 안식을 얻었나이다.”(Confessiones X, 27) 
 

우리의 삶이 하느님께 돌아가는 길이 될 때, 우리는 하늘 천사들의 기쁨이 된다. 우리 각자가 회개와 사랑으로 하느님의 기쁨이 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소명이다. 오늘 복음은 죄인을 끝까지 기다리시는 목자의 마음, 하느님의 인내와 돌아온 한 사람 때문에 하늘이 환호하는 기쁨을 드러낸다. 우리가 모두 날마다 회개의 길을 걸으며, 천사들의 기쁨, 하느님의 기쁨이 되어야 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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