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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9일 (월)
(백)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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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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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05:22 ㅣ No.192951

운전에도 단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준법 운전’입니다. 신호를 지키고, 제한속도를 지키고, 교통법규를 지키는 것입니다. 준법 운전을 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거나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안전운전’입니다. 법을 지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비가 오거나 길이 미끄러우면 제한속도보다 천천히 가야 합니다. 앞차와 충분한 거리를 두고, 주변 상황을 살펴야 합니다. 셋째는 ‘양보 운전’입니다. 내게 우선권이 있어도 다른 차가 들어올 수 있도록 기다려 주고, 보행자가 있으면 먼저 건너도록 멈추어 줍니다. 준법 운전의 기준이 ‘법’이라면, 안전운전의 기준은 ‘생명’이고, 양보 운전의 기준은 ‘배려’입니다. 운전도 이렇게 성장하고 성숙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이것을 ‘표층 신앙, 자판기 신앙, 심층 신앙’이라고 표현해 보고 싶습니다. 표층 신앙은 우선 해야 할 것을 하는 신앙입니다. 주일미사에 참석하고, 기도하고, 교무금을 봉헌하고, 교회의 계명을 지킵니다. 준법 운전과 비슷합니다. 이것도 중요합니다. 신앙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머물면 신앙이 의무와 규칙의 차원을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미사에 빠지면 죄가 되니까 미사에 나오고, 고해성사를 보아야 하니까 성사를 보는 정도에 머물 수 있습니다. 신앙의 뿌리가 아직 마음 깊은 곳까지 내려가지 못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판기 신앙’입니다. 자판기에 돈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원하는 음료가 나오듯이, 내가 기도하고 봉헌하고 선행했으니, 하느님께서도 내가 원하는 것을 주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신앙입니다. “제가 이렇게 열심히 기도했는데 왜 병이 낫지 않습니까? 제가 이렇게 봉사했는데 왜 우리 가족에게 어려움이 생깁니까? 제가 성당에 열심히 다녔는데 왜 사업이 잘되지 않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기도와 봉헌이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일종의 거래가 되는 것입니다. 원하는 것이 나오지 않으면 고장 난 자판기를 두드리듯이 하느님께 섭섭해하고, 때로는 신앙을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의 소원을 입력하면 결과를 내어 주시는 자판기가 아닙니다.

 

세 번째는 ‘심층 신앙’입니다. 심층 신앙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느님께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니에서 보여 주신 신앙입니다. “아버지,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심층 신앙을 가진 사람은 일이 잘될 때만 감사하지 않습니다. 고통 중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찾습니다.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하느님의 손을 놓지 않습니다. 내가 앞서갈 수 있어도 기다려 주고, 내가 옳아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 주며, 내가 받을 수 있는 것을 기꺼이 나누어 줍니다. 준법 운전에서 안전운전으로, 안전운전에서 양보 운전으로 성장하듯 신앙도 ‘의무’에서 ‘신뢰’로, ‘신뢰’에서 ‘사랑’으로 깊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종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종이 밭을 갈고 양을 친 뒤 돌아왔다고 해서 주인이 특별히 감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처음 들으면 조금 냉정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신앙의 깊이를 묻고 있습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무엇을 주시겠습니까?”라고 계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봉사하고도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고, 기도하고도 보상을 요구하지 않으며, 사랑하고도 대가를 기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심층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도 보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디에 머물러 있습니까? 표층 신앙도 필요하고 신앙의 규칙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과 거래하는 자판기 신앙도 넘어가야 합니다. 이제는 심층 신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미사에 참례하는 것을 넘어 미사의 삶을 살고, 기도하는 것을 넘어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봉사하는 것을 넘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기쁘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준법 운전을 넘어 안전운전으로, 안전운전을 넘어 양보 운전으로 나아가듯이 우리의 신앙도 의무에서 신뢰로, 신뢰에서 사랑으로 성장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루를 마칠 때 이렇게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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