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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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부활 제7주간 금요일: 요한 21, 15 -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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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승 [bona24] 쪽지 캡슐

2024-05-16 ㅣ No.172474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알고 계십니다.” (21,17)


예전 어르신들은 가끔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죠. ‘문제를 잘 봐야 한다. 문제 속에 답이 들어 있다’고. 살다 보니 수긍이 가는 말씀이라 생각하고 저 또한 그래서 “좋은 질문은 좋은 해답을 찾는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 깨어 살아가기 위해 거듭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향해 던져야 할 질문들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이며, 나는 지금 어디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혹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던진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리고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제시한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21,16.17)라는 질문들 말입니다. 이처럼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를 자주 흔들어 깨우는 무겁고 진지한 삶의 질문이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붙들고 살다 보면 언젠가는 보이기 시작하고 문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살다 보면 삶의 질문과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꼭 찾아야만 하고요. 

사도 요한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1요4,16)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뽑아 당신에게 보낸 사람들 그리고 당신의 말씀을 듣고 살려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진리인 말씀 안에 살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 보여 주시고 베풀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의 맹세를 다짐하듯 세 번이나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신 것은 베드로라는 존재를 몰라서, 혹은 베드로에게서 사랑받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부활하시기 이전보다 베드로에게 당신의 사랑을 주고 더 주고 싶어서 세 번씩이나 물으신 것입니다. 비록 베드로 사도가 허물과 약점이 많은 사람인 것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베드로의 단순하고 주님께 향한 사랑의 강도에 있어서는 어떤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더욱 베드로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 살고 싶고 더 이상 스승을 떠나서는 존재 의미도 이유도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알고 계십니다.” (21,17)하고 주님의 사랑에 온전히 내어 맡기지 않습니까?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표현처럼 사랑도 사랑받아 본 사람이 사랑을 잘하게 되고, 그 사랑의 소중함을 잘 안다고 봅니다. 베드로에게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단지 베드로 한 사람에게 주신 사랑이 아니라 베드로를 통해서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베드로는 마치 하느님 사랑의 저수지로 베드로에게 준 사랑이 흘러넘쳐 세상에 사랑을 목말라하는 모든 사람, 곧 베드로에게 맡겨질 양들에게 전달되리라고 예수님은 생각하셨을 겁니다. 굳이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아시면서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시고,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들을 잘 돌보아라.” (21,15.16.17)하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느낍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는 주님께서 저에게 향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제 서품 때의 ‘네. 여기 있습니다!’라고 응답했듯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물 것이며, 사랑이신 예수님 앞에 서 있는 그 자체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응답이라고 봅니다. ‘네. 여기 있습니다.’라고 응답한 서품식의 제 대답은 제 사제직 전체를 좌우하는 실존적인 응답이었으며, 이 결심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간직하려고 합니다. 저는 그러기에 오늘의 질문과 응답이 제 삶의 해답을 찾는 질문이며 응답이라고 동감하며 공감합니다.

             “주님은, 제가 당신에게 ‘네, 주님을 사랑합니다.’라는 저의 응답을 들으시기 전부터 제가 당신을 사랑함을 알고 계십니다. 굳이 이 대답을 다시 듣고자 하신 까닭은 오늘도 주님은 저에게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너에게 맡긴 양 떼를 잘 돌보아라’는 말씀을 잊지 않고 살라는 당신의 바람임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살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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