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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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7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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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4-05-18 ㅣ No.172528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요한 21,20-25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똑같은 물건이라도 자기가 가진 것보다 남이 가진 것이 더 좋아보인다는 뜻입니다. 자기 것에 만족하며 산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생각하게 만들지요.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자기가 가진 것을 감사하며 누리면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는데도, 굳이 남과 나를 비교하여 자기 부족함을 더 부각시키면서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고, 남에게 ‘잘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허세를 부리고 위선을 떠느라 사서 고생하는 서글픈 우리들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현재라는 시간 안에서, 주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소명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 나라는 사람의 존재 의미를 충만하게 실현하는 길이건만, 남의 인생과 나의 인생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안타까운 우리들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베드로에게서 그런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자신이 앞으로 겪게 될 시련과 고통, 박해의 상황에 대해 전해들었으면,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그 과정에서 주님께 어떤 은총과 도움을 청해야 할지를 생각하기에도 바쁠텐데, 뜬금 없이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느냐’고, 요한은 주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과 고통을 겪게 되느냐고 묻고 있으니 말이지요. 베드로는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요? 아마 두 가지 마음이 공존했을 겁니다. 가장 나이 많은 제자단의 대표로써 나이도 가장 어리고 유약한 요한이 박해의 상황을 잘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하는 마음이 첫번째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예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라이벌 의식 혹은 질투심을 느끼게 만들었던 요한을 은근히 견제하는 마음입니다. 나는 주님 때문에 그렇게 심한 박해를 받고 죽임을 당하는데, 혹시 요한은 주님께 특별히 사랑 받는다는 이유로 자기보다 덜 고생하는건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던 겁니다. 혹시 진짜 그렇다면 너무나 억울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런 베드로를 나무라십니다. 요한이 앞으로 어떻게 되든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남과 나를 비교하며 시기 질투하는 쓸 데 없는 일에 마음과 힘을 허비하지 말고 당신을 따르는 일에만,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며 그들을 하느님께 대한 참된 믿음으로 이끄는 그 중요한 소명에만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저마다 생긴 모습이 다르고 지닌 역량이 다르며 그에 따라 부여받은 소명도 다릅니다. 궁극적인 종착지가 ‘하느님 나라’라는 점은 동일하지만, 그 목적지에 이르는 과정에서 각자 주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자기만의 삶을 살지요. 요한에게는 요한의 길이 있고, 베드로에게는 베드로만의 길이 있는 겁니다. 베드로는 주님께 대한 믿음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증거의 삶’을 살 것입니다. 요한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말씀과 뜻을 전하여 그들을 참된 믿음으로 이끄는 ‘증언의 삶’을 살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가 할 일은 남들이 신앙생활 하는 모습을 보며 ‘감놔라 배놔라’ 하는게 아니라, 주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특별하고 고유한 소명을 충실히 살아내는 일입니다. 그것이 내가 하느님 나라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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