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
(녹) 연중 제11주일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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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7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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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4-05-22 ㅣ No.172639

[연중 제7주간 수요일] 마르 9,38-40 "막지 마라."

 

 

 

 

마귀에 들려 하루 하루 사는게 지옥이었던 한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준 누군가의 도움 덕분에, 다시 사람답게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기적인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봅니다. 그 구마 기적을 일으킨 이가 자기들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랍니다. 그런 상황을 예수님께 설명하면서 요한은 ‘저희’라는 말을 세 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도 아닌 그가 감히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고, 그는 ‘저희’처럼 예수님을 열심히 믿고 따르는 그분 제자가 아니기에, 그런 그의 행동이 예수님께 누를 끼칠 것을 염려하여 ‘저희’가 그로 하여금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보려고 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기에 스승님께 그를 고자질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그들에게서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이 겹쳐보이는 것은 왜일까요? 하루 종일 예수님을 따라다니느라 제대로 먹지 못해 배가 고파서 밀 이삭 몇 개를 비벼먹은 제자들 모습을 보고, 안식일에 ‘노동’을 했다며 비난하던 그들보다 제자들이 조금이라도 낫다고 할 수 있겠는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를 “막지 마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에 속해 있는 이유는 목자이신 주님 말씀을 잘 듣고 따르기 위해서이지, 나와 다른 믿음을 지닌 이를 배척하거나 단죄하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주님을 내 마음과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일입니다. 그분의 자리를 내가 대신 차지하려고 들면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교만과 독선에 빠지게 되고, ‘다름’을 ‘틀림’으로 오해하여 비난하고 단죄하는 데에만 열을 올리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 주님과 그분 뜻으로부터는 멀어지게 되지요. 그러니 그리스도인이라면 다른 사람이 나의 이익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을 억지로 막으려 해서는 안됩니다.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게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큰 뜻이 무엇인지 지금의 나는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믿음을 기준으로 편 가르기 하는게 아니라, 주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리며 그분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지금 하는 그 일이 주님께서 원하시는게 아니라면 굳이 내가 막지 않아도 자연스레 벽에 부딪힐 것입니다. 반면 그가 하는 그 일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그가 내 이익을 침해한다며 그 일을 못하게 막는 것이 곧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 말씀을 잘 듣고 따르는 그 중요한 한 가지에만 집중해야겠습니다. 사실 그 한 가지를 제대로 하기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시간은 턱 없이 부족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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