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월)
(녹)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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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을 헛하고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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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08-08-03 ㅣ No.122609

'묵상을 헛하고 살았습니다'

나름대로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에 든다 싶으면 잘했다 자만도 했습니다.
저희 수녀원에서는 이른 아침 미사를 드리고
30분 동안 그날의 복음 말씀을 묵상합니다.
하루를 살아갈 힘을 미사성제와 말씀에서 길어내는 것이지요.

벌써 그런 생활을 한지 강산이 변하고 변해갑니다.
그런데 며칠 전 마음에 쿵하고 바윗덩어리가 떨어지더니
그동안 묵상을 헛하고 살았구나 싶어졌습니다.

얼마 전, 송봉모 신부님의 ‘순례자 아브라함’이
책으로 출판되었다고 알려드렸더랬습니다.
요즘 그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제가 말씀 묵상이라고 했던 것이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러운지 모르겠습니다.
깊이도 넓이도 없는 묵상을 하면서 그렇게 자만하며 살았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생애를 들여다보기 위해
단 몇 줄의 성경 구절을 선택하여 풀어놓으십니다.
그 간단한 몇 줄 속에서 많은 묵상을 끌어내는 저력과 내공이
저로써는 그저 감탄스럽고 부럽기만 합니다.

사람들이 슥 훑고 지나간 바닷가,
더 이상 캐낼 조개도 없고, 잡을 게도 없다 싶은 곳에서
그들의 뒤를 따라가며 조그만 바위를 들추고
갯벌을 파내며 낙지와 게를 잡아내는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자주 읽고 들어서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브라함 이야기,
그 속에서 신부님은 단어와 문장을 들추시고,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사이의 여백을 파내시며
그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묵상들을 끌어올리십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아브라함이 되어서 생각하고 느끼고 고뇌하며
우리의 시선을 하느님께로 이끌어줍니다.
그 맛이 참 좋고 꿀보다 답니다.

이제 아침마다 성경을 펼쳐두고 앉아 있는 저의 마음이 다릅니다.
하나 하나 처음부터 배우는 마음으로 묵상을 하며
주님께서 오늘도 제게 당신 말씀을 듣고 기억하게 해 주시길 청합니다.

기도와 묵상을 더 잘하고 싶은 이유는
하느님을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말씀의 시원함 속에서 더 많이 행복하세요.

 - 바오로딸 홈지기수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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