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너는 급장이잖아? 그러니 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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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자리는 아무나 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평상시나 다름없이 꾸부정한 어깨에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는데도 “저 친구 회장 되더니 어깨에 힘이 들어갔어. 허리 숙이는 것도 뻣뻣하고...” 그런 말이 귀에 들렸다. 젠장, 언눔이 하고 싶어서 했나. 자기들이 추천해서 마지못해 한 것인데 순명, 순명, 하면서 나무에 올라가라 할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흔들기는 왜 흔드느냐고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라 열이 뻗쳤지만 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후로는 위선적인 것 같아서 내키지는 않았지만 누구에게나 일부러 허리를 평소보다 10도가량 더 숙여서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그랬다. 순명이고 나발이고 내 다시는 누가 시킨다고 해도 장 자리는 절대로 안 한다.
어려서 초등학교 때였다. 한 학급이 약 40명 정도였는데 5학년 1학기까지 내가 학급(반)에서 맡은 자리는 분단장이 고작이었다. 그것도 선생님이 시켜서 맡은 자리였다. 그랬는데 5학년 2학기 때 급장을 하던 친구가 대구로 전학을 가면서 선생님이 갑자기 나를 급장으로 아이들 앞에서 발표를 해 버리신 것이었다. 공부를 잘 하기는 했어도 전교에서 1등을 한 것도 아니고 학급에서조차도 1등은 못했는데 나더러 급장을 맡으라니...........??? 선생님한테서 칭찬 받은 기억이라고는 언젠가 "예방주사 맞을 때 딴 아이들이 뒤로 슬슬 뺄 때 남보다 먼저 맞으려고 팔뚝을 내밀며 앞줄로 걸어 나오는 놈은 저놈 밖에 없다" 겨우 그 말씀 한번 들은 것이 칭찬이었다면 칭찬이랄까, 전혀 그것 밖에는 없었는데 말이다.
급장, 그것도 남들이 하는 것을 볼 때는 부럽기도 했는데 맡아보니 영 아니었다. 선생님 잔심부름을 자주 해야 하고, 결석하는 아이들 집에도 찾아가 보이야 하고, 다음날 선생님한테 그 결과를 알려드려야 하고...추운 겨울에는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인다고 눈 덮힌 장작더미에서 장작을 꺼내 몇번씩 팔에 안고 교실을 오가며 날라야 하고.... 무엇보다도 싸움을 해서라도 패 주고 싶은 녀석과 내 마음대로 싸움도 못하고.... 이건 마치 어딘가에 억지로 매여 있는 것 같은 게 영 내 성미에 맞지를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무엇 때문이었는지 하도 오래 돼서 잘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님께서 크게 야단을 치신 후에 가느다란 싸리나무 회초리를 가지고 오시더니 아이들을 줄줄이 서서 앞으로 나오라고 하여 종아리를 각각 5대씩 세차게 때리셨다. 맨 종아리 살에 빨간 줄로 회초리 자국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힘을 주어 때리셨다. 아이들이 움찔움찔하며 아야! 아야! 비명을 질렀지만 선생님께서는 아랑곳하지 않으신채 계속해서 종아리를 치셨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나는 달달달 떨며 선생님 앞에 섰다. 꾹 참고 5대를 맞았다. 예상했던 것이었지만 얼마나 아픈지 눈물이 찔끔찔끔 났다. 그런데 5대를 다 맞고 내가 옷을 내리려는데 선생님의 불호령이 덜어졌다. “너 임마, 옷을 왜 내려? 너는 3대 더 맞아야 해. 네가 반장이란 것을 모르느냐? 반장이 임마 어떻게 했기에.....” 너무 오래 된 일이어서 그 때 무슨 까닭으로 그랬는지 일의 자초지종은 생각나지 않지만 반장이란 이유로 다른 아이들보다 내가 3대인가 5대인가를 더 맞은 것만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 모두 죽을 것이다. 반드시 심판 날 우리 모두는 주님 앞에 설 것이다. 학급(반)원이나 급장이나 다 선생님 앞에 줄줄이 종아리를 걷어부치고 나가서 일렬로 서듯이 언젠가는 신자도 죽고 사제도 죽어서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이다. 반장이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몇 찰을 더 맞는 것인데 그 반장이 스스로 잘못을 했다면 더욱더 많은 매를 맞을 게 분명한 것 아닌가. 제발 행동을 잘못하시는 사제님이 없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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