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제19차) 천호동성당 건축에 대한 소견 ** |
---|
** (제19차) 천호동성당 건축에 대한 소견 **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되어 이 굿뉴스의 자유게시판 문을 두드릴 때, 왜 망설임이 없었겠는가? 솔직히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밖으로 표출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도 실명으로 말이다. 생각의 차이는 있겠지만 계속해서 글을 올리다 보니 이제야 교우들이 이 굿뉴스 의 자유게시판의 글들을 보고 그동안 오해했던 부분에 이해를 구하며 여론이 형성됨을 감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천만다행이다. 급하게 지은 집은 문짝에 갈대(급하게 지은 집은 갈대 문짝과 같이 약하다)라는 속담이 있다. 감정이 앞섰다면 이런 방법을 동원하지 안했다. 성격상 바로 맞 짱을 떴을 것이다. 다른 판도 아니고, 주님이 늘 현존해 계시는 성전 건축이라 묵상과 함께 과연 白年大計 未來의 성전은 어떻게 건축해야 좋을까하는 묵상 끝에 결단을 내리고 지금까지 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일로 협박, 사법기관고소, 등 여러 가지 공격을 겪었지만. 앞으로도 겪을 일이기에 이런 일 할 적에는 이정도 각오 없이 할 수가 없음을 예전에 익히 알고 있기에 그다지 마음에 두지 안 는다. 위협적인 행동들이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다. 이 정도는 신협처리 과정에서 다 겪어봤기에 아무러치도 않다. 신협처리 십분의 일도 안 되는 것이다. 다른 성당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유독 사제, 수도자 앞에서는 기생오라비로 줄서있다가도 막상 돌아서면 팔불출의 액션들이 너무 심하다고 할까? 자신의 불만을 남의 입을 통해 해결해주길 바라며 자신은 언제 그랬는가 하는 방법으로 살아가는 한심한 모습들에는 질려버린다. 이런 자들이 사목자 주위를 에워싸고 있으니 공동체의 일들이 안 풀리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경고한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와 직언보다는 대리 만족을 즐기시는 교우들과 봉사자의 정체성을 망각하고 꿀 먹은 벙어리모양의 일부 맹종 봉사자들은 봉사 직에서 이제 영원히 살아져 주었으면 한다. 인심 쓰는 것은 자신들의 몫으로 돌리고, 책임 질 일과 원망들을 일은 한 결같이 사목 자와 수도자와 사무장과 관리인께 돌리며, 봉사직들을 수행하는 아주 잘못된 환경으로 이처럼 공동체가 수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짓 사회에서 하면 큰일 날일이라 성당은 예수님이 용서해주니 그 빽 을 믿고 하는 것인가? 사고 전환이 절실하다. 어느 교우가 소인을 꼭 보고 싶어 한다고 하여 만난 사실이 있었다. 이 교우 주문이 주임사제가 술 한잔하자고 하여 만나니 형제님이 교구에 재판을 신청하여 후배 신부들께 온갖 창피를 당했다고 분개하고 있다고 하면서 자신도 지하 2층으로 알았는데, 지하 1층 건축은 절대 안 된다고 단호하게 흥분하면서 이 굿뉴스의 글 올림을 6개월 정도만 참으면 안 되겠는가하는 주문에, 재판신청을 한 사실이 없다하니, 고소를 한다는 등 극단적인 표현을 한다. 그래서 답을 했다. 고소 못하면 지금 표현에 반드시 책임을 지라고 말이다. 이처럼 사제가 신자들께 평상시에는 표현 못하고 술 시간을 만들어 사제 스스로가 동정여론조성을 하고 다님을 한 두 번들은 것이 아니다. 이러니 모든 걸 공개하라는 것이다. 공개도 못하면서 이런 일을 하고 다니면 어쩌라는 것인가? ...... 글을 십분의 일도 안 썼는데 한심한 것이다. 그 넘에 술은 문제만 주는 것일까? 정답을 주는 것일까? 이 광경을 목격한 교우께서 소인의 태도에, 세상에 흥분한 번 하지 않고 논리 정연하게 대처할 줄 몰랐다고 하면서 형제의 변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한다. 끝까지 용기 잃지 말고 행동하라는 지혜들을 주신다. 웃기는 일은 그날따라 명함을 달라고 졸라 된다 생각해보니 명함을 주면 이 명함을 가지고 주임사제께 가서 신부님 속상하신 것을 내가 어제 스테파노 만나서 혼을 냈습니다 하고 자랑삼아 자신을 들어내려는 치밀한 작전으로 접근을 하고 있다는 순간판단에 이런 지혜를 깨우치게 해주신 주님께 한없는 감사의 화살기도를 드렸다. 아니 같은 교우인데 몰라서 명함을 달라고 하겠는가? 만났다는 물증을 확보하기위한 이 교우의 행동을 보면서 그 자리에서 ?????, 인내함의 진수를 주님께서 또 깨우쳐 주심을 감사드린다. 이 교우는 평상시 보면 자신에 도취된 행동을 곧잘 들어내기 때문에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세속적인일이면 좋겠다 벌써 처리했을 것이니 말이다. 신협 일을 해보니 철저히 마음을 비우고 기도 속에 기다림이라는 체험을 몸소 체험했기에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나는 성경을 읽다보면 늘 교회사를 병행해서 읽어야 된다는 표현을 강조한다. 스스로는 행동에 게으르면서 말이다. 그래도 실천하려고 늘 교회사를 쳐다보는 시늉은 하고 있다. 갈수록 늘어만 가는 노령인구? 지금도 그렇지만 머지않아 변할 교우들의 노령화? 이 노령화에 걸 맞는 주님의 복음화는 어떻게 대처해야 현명할까하는 노파심, 아파트가 병풍처럼 펼쳐져 개인주의가 만연할 환경, 유교문화권의 무너짐으로 인한 아름다운 풍속 결여, 대가족제도에서 소가족중심으로 변화된 환경, 점점 멀어져 가는 청소년·장년들의 복음화 문제, 성전의 저비용 고효율의 효율적인 관리..... 이런 고민을 전문가들이 득실득실한데 혼자 도취되어 오판하고 저항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가끔씩 묵상도 해본다. 사(싸)가지 없는(있는) 고민인지도 모른다. 봉사직에 뒤에서 쑤군거리는 것도 모르면서 집착하는 교우가 계시다. 이분 말씀이 대화중에 사제와 자존심 싸움하는 것 아니냐고 하신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사제와 수도자를 이겨서 무엇을 남기겠다는 것인가 말이다. 이러니 주님복음화의 걸림돌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사제를 이기려는 것이라니요? 잘 난체 같지만, 주님의 참 복음화의 진정성이 어디에 있는가? 늘 묵상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한다. 이 기회를 통해 표현한다. 십자가를 매려면 제대로 매보라는 것이며, 십자가 앞에서는 절대 물러서지 말 것을 말이다. 그래야 자신의 신앙이 커갈 것이니 말이다. 그 잘난 봉사직이 그리 놓기가 어려운 것인가? 인간들에게 잘 보여서 무엇에 쓰려는 것인지...... 신기한 것은 이처럼 글을 쓰다보면 두려움이 있는 것이 당연한데 없다는 것이다. 교만일까? 자기도취일까? 주님께서는 어떤 체험을 주시려고 이 일에 개입하게 하실까? 순명의 아름다움은 어떤 것일까? 성서못자리 로마서 7장 186쪽 우리지평 중간에 있는 글을 묵상하고자 한다. “영의 길은 하느님 안에 있지만, 육의 길은 인간 안에 있으므로, 자신의 판단을 하느님의 뜻보다 앞세울 때, 육은 바로 나의 마음속에 자리하게 된다.” 조계종 총무원장님이신 지관 스님 말씀에 감동한 적이 있다. 개혁은 강하며, 개선은 부드러운 것이다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에 후자 인 개선을 원한다. 왜냐면 기왕이면 하느님 백성인 동서울 복음화 중심축 성당을 지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건축에 반대하지 않기에 그런 것이다. 교구에서도 방대한 조직으로 인해 이를 해결해보고자, 각 지역을 신설하여 관리하듯이, 천혜의 하느님의 백성인 천호동 성당의 제2의 부흥을 원하며, 기도하고 있기에 더욱 그런 것이다. 쓸데없는 욕심일까? 귀한 사람, 비싼 대지, 건물, 가난한 자들의 헌금과 신립금인 돈을 모두 버리게 되는 이 상황을 대처하기위한 몸부림에, 오늘도 열심히 뚜벅뚜벅 걸어가는 이 죄인의 모습을 주님께서 주관해주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린다. 2008, 07,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