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설레임으로 -최종수신부-(진짜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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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곤 [guevara72] 쪽지 캡슐

2008-08-08 ㅣ No.37935

사랑은 언제나 낮은 자리에 머뭅니다.

사랑은 앉은뱅이 노란 민들레처럼,
성자의 구유처럼 낮고 가난한 자리에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4년 동안 팔복성당에서 참으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 행복은 누군가를 위해 촛불을 밝히고
두 손 모은 영혼의 울림 때문이었습니다.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던 공터,
무성한 풀들은 호랑이가 새끼를 쳐나가도 모를 만큼이었고
주인이 떠난 폐가와 같았던 폐쇄된 조립식 노동자의 집에는
감자가 토실토실 알이 차고 호박이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공을 차고
중고학생들은 나이 먹기 놀이를 하고
비닐하우스 성당에서는 매주 오병이어 점심을 나눕니다.
그렇게 행복의 시계는 4년 동안 시냇물처럼 흘러갔습니다.

오늘 안식년 공문에 싸인을 했습니다.
8월 17일 10시 주일미사를 끝으로,
이곳 팔복성당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떠난다는 생각만 해도
시울이 뜨거워지고 말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요즘 이별연습을 합니다.
지난 8월 3일 주일미사 끝에 ‘임쓰신 가시관’ 노래를 부르며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신자들에게 미안해서 눈물도 닦지 못하고
눈물이 마를 때까지…….

평일 미사를 마치고 현관에서 배웅하는
제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는 할머니들
그 눈물은,
하느님께서 4년 동안 가난한 이들을 통해 내려주신
축복의 눈물이었습니다.

기도를 하다가 문득 떠오른 가난한 영혼들
울컥 솟아오르는 슬픔에 입을 꼭 다물고 삼켜야 했던 눈물이었습니다.
3년 전 380m 집중호우로 발목까지 찬 성당에서
수중미사를 드리며 흘렸던 눈물이었습니다.
영하 20도의 혹한에 전기장판 하나로 지내는, 골목길처럼 작은 방에서
병자봉성체를 하고 할아버지 손을 잡고 울었던 그 눈물이기도 했습니다.

팔복표 자장면과 홍어와 돼지 앞다리 두 마리(4개),
묵은 김치와 막걸리와 소주와 맥주도 준비하겠습니다.
그동안 저를 위해 애써주신 신자분들
멀리서 그리움으로, 맑은 영혼으로 성원해 주신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나눌 수 있어 감사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의 곁을 떠나야 하는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나누셨던 예수님,
그 마음이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감히 짐작해 봅니다.

사랑은 함께 웃고 우는 축복이라는 말했던가요.
사랑하는 마음과 그리움만 가지고 오십시오.
아참 ‘손수건’ 하나 챙겨 오시는 것 잊지 마세요.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훌쩍거리는 소리에,
아니, 제가 마지막 미사를 드리며 눈물을 참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알이 뜨거워지고 맙니다.
당신을 향한 맑은 눈물, 아름다운 기도이길…….

당신의 행복이 낮은 자리에서 피어나는 웃음꽃이길
언제나 가난한 자리, 그 아름다운 사랑 안에 머무르시길
간절히 두 손 모읍니다.


#갑자기 최종수 신부의 목소리가 떨린다.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떨구기 시작한다.

『“아버님, 사제가 누구예요?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주는 사람, 하느님의 정의를 보여주는 사람이 아닙니까? 지금 쌀이 없는 사람들, 굶는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일을 하고 싶은데, 일자리 없는 사람들, 연료 없어 냉방에서 지내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제가 그들에게 하느님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어요. 쌀을, 기름을 넣어주면서 일자리를 찾아주면서 그들에게 하느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들에겐 기름이 하느님이고 쌀이 하느님이 아닐까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가 ‘당신은 이 세상에 살 때 냉방에서 지냈으니까, 끼니는 굶었으니까 죽어 거지 나자로처럼 아브라함의 품에, 하느님의 품에 안겨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하고 저 세상에 가면 다 바뀐다는 희망만으로 위로할 수는 없잖아요.” [공동선(Common Good)통권 61호(2005-03-11) 발췌] 』

#그렇게 한참을 울었나 보다.


송별미사
일시: 8월 17일(주일) 오전 10시 미사
장소: 팔복성당

오시는 길
저희 성당 전화번호: 063-211-8043
제 손전화: 011-674-0814
전화로 문의하시고요.

고속버스와 택시를 이용하실 분은
팔복동 지구대(파출소) 옆
미성공업사 골목으로 200미터 들어오시면 됩니다.
터미널에서 택시 요금 3-4천원이 나옵니다.

설레임으로
최종수 사랑수 신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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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협 조: blog.ohmynews.com/asemansa/entry/설레임으로
 
펌이 필요하신 분은 본문 시작글에서 두줄선 위까지만~꼭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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