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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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7주일 (마태 13,44-52)
내가 다른 어떤 사람을 힘겨워 하면서, ‘하느님 저 사람을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정말 용서하기 힘듭니다.’ 하고 하소연하는 동시에 그 다른 어떤 사람도 나를 겪으면서 ‘하느님 몇 번이나 그를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정말 용서하기 힘듭니다.’ 라고 똑같이 하느님께 하소연 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어떤 고민에 빠지실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때면 내 자신이 한 없이 가소롭게 여겨집니다.
내 주관적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오류도 모자라서, 나는 상대에게 용서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라 용서해 주는 사람이고, 베풀고 나눠주는 사람이며 지시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착각과 상대보다 우위에 앉으려는 열등감의 어리석음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과연 내가 어떻게 동시대를 살아가는 상대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까?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도 한도가 있고, 더군다나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 준다 해도 수긍할만큼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 즉 우리 활동의 기준은 무엇인가?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13,44)
오늘 주님의 이 말씀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곧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처세술이 아니라, 내 인생의 목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늘나라라는 목표를 향해 총체적으로 정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우리 삶에 처세적으로 적용한다면, 누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나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주문하는가가 우리 행동을 결정짓는 가치기준이 아니라, 하늘나라가 우리 삶의 가치기준이고 목표이며 그 하늘나라를 향한 우리의 열정이 우리 삶의 평가기준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며 내가 그 하느님의 뜻에 따라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그러는 과정에 생겨나는 사람들과의 오해나 문제에 대해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하늘나라를 향해 꾸준히 진실하고 선하게 살아가며 주님의 복음을 자기 삶에 적용하고 실현함으로써 이 땅에 하늘나라를 이루도록 노력합시다. 그러므로 공동체 내에서 다른 사람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포기하지도 말고, 또 반대로 다른 이들에게 무리하게 요구하지도 말고 서로의 인격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자신의 위치에서 겸손하고 꾸준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이 땅에 하늘나라를 만들어 갑시다.
“또하느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사람들을 불러 주시고 부르신 사람들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로마 8,30)
(심흥보신부님의 강론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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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성인의 통공 안에 있는 가족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