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전 선배 수녀들 마음 되새기며 '묵묵히'
블랑 주교 요청으로 1888년 수녀 4명 도착
오로지 주님 향한 마음으로 낯선 땅에 선뜻
선배 수녀들 사도적 열정 잊지 않도록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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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길 따라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수녀들이 120년 전 첫 선교 수녀들이 가마를 타고 서울로 간 옛길을 걸으며 묵상하고 있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
한국교회 첫 수도회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한국 진출 120돌을 맞았다. 뜻깊은 해를 맞아 종신서원을 준비하는 서울관구의 수녀 12명은 첫 선교 수녀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었다. 순교의 땅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한 첫 선교 수녀들의 숭고한 뜻을 마음에 새기며 새로운 창설자로 거듭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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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한국 진출 120돌을 맞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수녀들이 첫 선교 수녀들의 도착지인 옛 제물포항 자리의 기념비 앞에서 손 모아 기도하고 있다. |
# "이제 조선에도 수녀들이 있게 될 것입니다"
"주교님께서 청하신 대로 수녀 4명을 보냅니다. 자카리아 수녀는 원장으로 에스텔 수녀는 고아들을 위해 보내오며, 또 중국인 수련 수녀 둘을 보내기로 연락이 되어 있사오니, 이제 곧 조선에도 수녀들이 있게 될 것입니다."
1888년 7월 22일 새벽 5시 인천 제물포항. 프랑스 수녀 2명과 중국인 수련 수녀 2명이 도착했다. 제7대 조선 대목구장 블랑(J.Blanc, 1844~1890) 주교가 프랑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라 크롸(La Croix) 총장 수녀에게 이 편지를 받은 지 두 달만이다.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던 블랑 주교는 수녀들의 파견을 요청했고, 동양의 먼 땅에 수녀들이 첫 발을 내디뎠다.
수녀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배에서 내리자, 조선교구 경리 책임자 프와넬(Victor Poisnel, 1855~1925) 신부와 교우 20여 명이 기쁜 표정으로 맞았다. 수녀들은 당시 개항으로 외국인 선교사들이 즐비한 제물포항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가마에 몸을 실어 서울로 향했다. 생전 처음 가마를 탄 벽안의 수녀들은 양반다리를 하고 가마 속에서 찌는 듯한 조선의 여름을 느꼈다. 제물포항에서 서울까지 거리는 72리(약 28㎞)였다.
삼개(옛 마포나루)에 도착하자 교우 수백 명이 수녀들을 기다렸다. 검은 옷에 눈같이 하얀 수건을 쓴 수녀들이 가마에서 내리자 교우들은 십자성호를 그으며 무척 기뻐했다. 수녀들은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순교자의 자손을 만난 것에 감격해했다. 이들은 가난과 전염병, 언어를 극복하면서 버림받은 어린이를 돌보며 한국에서의 수도생활을 시작해나갔다. 그리고 120년이 흘렀다.
# "초창기 수녀들의 사도적 열정을 살게 하소서"
120년 후 같은 땅에 21세기 수녀들의 기도소리가 울려퍼진다.
"주님, 저희 수도회를 사랑으로 굽어보소서. 초창기의 겸손과 가난, 복음전파를 위한 사도적 열성을 결코 잊지 않게 하소서…."
종신서원을 앞둔 수녀 12명이 옛 제물포항 자리에 섰다. 수녀들이 배에서 내려 신자들과 만났던 이곳엔 박해의 고통을 품은 조선 교우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하느님을 생각하며 이역만리의 땅에 도착한 첫 선교 수녀들도 세월 속에 사라졌다.
수녀들은 선배 수녀들이 서울을 향해 가마를 타고 간 옛길(옛 경인로)을 걸었다. 잠자리가 날아다니는 숲길을 걸으며 촉촉한 비를 맞기도, 뜨거운 태양을 만나기도 했다. 수녀들은 흐르는 땀을 닦으며, 무더운 7월 첫 선교 수녀님들이 탄 가마는 찜찔방 같았을 거라고 이야기를 나눴다. "오로지 하느님을 향한 마음이 있었기에 낯선 땅에서도 모든 걸 이겨내신 것 아니겠냐"며 120년 전 이 길을 걸은 선배 수녀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한 발씩 내디뎠다.
첫 선교 수녀들이 이 곳에 도착해 처음 묵은 스튜어드 호텔(현 인천 중구 선린동 5번지)은 중화요리전문점으로 바뀌어 있었다. 수녀들은 이곳 3층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아래 2층에서 우리 수녀님들이 주무셨다"며 순례를 이어갔다.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에선 수도회 진출 당시 근대화가 시작된 제물포의 역사를 공부했다. 500분의 1로 축소된 제물포항 모형을 바라보며 마을 사이를 바삐 걸어다닌 수녀들 모습을 떠올렸다.
수녀들은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첫 선교 수녀들 마음에 가득했을 그리스도의 향을 맡았다. 첫 선교 수녀들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조선으로 가는 배에 오르게 했고, 4명의 수녀들은 120년 후 1000여 명의 한국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들의 씨앗이 됐다.
이날 수녀들은 "조선 땅을 밟기까지 인간적 갈등과 어려움이 많으셨을 텐데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이곳에 오실 수 있지 않았겠냐"며 "종신서원을 준비하며 첫 선교 수녀님들의 두려움 없는 사랑을 이어받아 살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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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물포항에 도착한 첫 선교 수녀들을 맞는 신부와 신자들. 김원 作, '첫 선교 수녀들의 도착', 유화, 198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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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8년 11월 14일 조선교구 첫 선교 수녀 자카리아 수녀와 에스텔 수녀가 종현보육원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한국 진출 120돌을 계기로 프랑스 트루아 시립 도서관에서 이 사진을 처음 발견했다. 첫 선교 수녀들 얼굴이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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