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3일 (목)
(녹) 연중 제7주간 목요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RE:1356]

스크랩 인쇄

강명주 [78clara] 쪽지 캡슐

2000-07-03 ㅣ No.1363

15년전- 제 아내는 아무 것도 모르고 제 손에 이끌려 성당을 찾아 갔지요.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일로 부부싸움끝에 제가 궁여지책을 낸 것입니다.

봐라, 성당은 이런 곳이다. 자네도 이젠 신앙을 가져야 하지 않겠나! 제가 이리저리 설명을 해주는대로 아내는 눈이 휘둥그레해가지고 성당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저게 마리아가?

경상도 출신인 아내는 인자하고 아름다운 성모상을 보며 제게 물었었습니다.

-그래, 우리모두가 본 받아야 할 분이지.순종,순종! 지애비가 회사일로 바쁘면 아, 우리가족을 위해

 일하시느라 얼마나 고달프겠노...라고 생각하고 부드런 눈빛을 해야지! 니는 와 그라노? 말로는 순종,순종하면서 행동은 순 엉터리 아니가? 니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리 까부노? 좀 배워라!

 어쩐지 기가 죽은 것 같은 아내를 바라보며 저는 진작 이럴 껄,하며 속으로 희희낙낙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밤,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당에서 가져온 몇몇의 책자를 들고 아내는 어린 아이들에게 천주교를 가르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말 희한 하드라, 성당에 들어 갔더니 뭔가 모르게 엄숙해지는게 내가 달라지는 것 같았어!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있지? 이젠 내 당신에게 잘 할끼다!>

순간 가슴이 철렁해짐을 느꼈습니다.

사실 저는 철없는 신자였었기 때문입니다. 주일만 성당을 오가는...그것도 가면 졸고...그러나 밖에서는

열심한 천주교 신자임을 자처했었지요. 그런데 아내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그러려니 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데레사수녀님을 제 집에 모시고 온 것입니다.

놀랐습니다.수녀님이 제 집에 오시다니...그리고는 언젠가는 신부님도 오신 것입니다.

..그렇게 성직자와의 교유가 시작되었습니다.사제는 근엄하기만 한 별천지의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셨습니다.

<바오로 형제님이 틈만 나면 산에 가신다면서요? 좋지요.산행과 선(禪)은 기도를 하는데 있어 참으로 좋은 방법입니다.언제 저도 한번 같이 데리고 가주시면 어떻겠습니까? >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우리같은 평신도가 사제와의 대화에서 공감을 얻고 마음 편히 사유를 나눌 수 있음은  진실로 은총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회사일에 피곤하시면 미사오셔서 주무셔요.괜찮습니다. 주님 품에 안겨 잠을 잔다고 생각하시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저는 더 이상 미사시간에 조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언젠가는 술을 마시고 미사에 참가하려는 사람을 제지하는 사목위원을 만류하시며 < 그만 두셔요. 저 분은 미사시간에 술을 드시는 게 아니라...술을 마시다가 문득 미사가 생각나서 달려오신 분 같은데...얼마나 고마운 생각입니까?>하시기도 했지요. 그 신부님에 그 수녀님이란 생각을 했습니다.저도 모르게 제 자신이 점점 주님께 충실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던 어느 날엔가는 데레사 수녀님이 잔뜩 부운 얼굴로 저희 집에서 마구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성가대와 의견이 맞지 않아 속이 많이 상하셨던 것 같았습니다. 그 땐 어쩔 줄 몰랐었지요.

-놀리지 마세요.수녀는 뭐 울지도 못하나?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함박 웃음을 지으시던 데레사수녀님.

또 어느 때는 제 아내가 어떤 일로  점을 보러간다고 하니 수녀님이  그렇게 용한 점쟁이가 있으면 당신의 점도 봐달라고 웃으셨답니다.기복신앙에 빠져있던 우리를 수녀님은 매사 질책보다는 따듯한 인간적 면모를 앞세워 신자들을 감화시키신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제 집은 모두 성가정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자매님의 글을 읽다보니 그 수녀님이 생각납니다.

데레사 수녀님은 얼마 전에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순교정신으로 러시아 선교를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수녀님을 뵐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아내가 죽기전에 한 말이 떠 올랐기 때문입니다.

-슬퍼하지 마세요. 사람은 죽으면 모두  좋은 곳으로 간데요. 저희 모두가 염원하는 하늘나라로...

 데레사수녀님도 속으로는 많이 편찮으신 분인데...전혀 내색하지 않으셨잖아요.당신, 데레사수녀님께

 한번 쯤은 근사하게 저녁식사 대접을 해드려야 해요.

...저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1991년 봄-이런 저런 일로 우리는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개인 사업을 위해 상경했으나 저는 주위의 권유로 정부산하단체에서 농가를 위한  새로운 일을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꼭 해야할 일이었으나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개인적으로는  도약일 수도 있지만 엄청난 시련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 때, 아내는  치킨집을 열었습니다.

평생 장사라고는 알지도 못했던 사람인데 <3년만 합시다. 당신이 기반을 잡을 때까지 3년만 고생할테니

당신일랑 집걱정하지 말고 3년만 열심히 뛰어봐!>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래? 당신이 왜 장사를 해야 하는거야? 라고 제가 묻자 아내는,

-와 이라요? 내가 좋아서 하겠다는데? 당신이 대전에 레지오교육받을 때 수녀님이 말씀하신 게 있어요.

라며 <사람은 주님이 창조하시어 그 주어진 일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잘되면 제 잘났다고 하고

못되면 조상탓만 한다>는 수녀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혹시 주님이 주신일이 아닌 지 모르겠다며  꼭 성공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웃었지요. 신부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가슴아파하지 말라면서 주님은 꼭 해야할 일을 주시니 매사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저는 3년동안 성당과 직장밖에는 몰랐습니다.

진실로 저는 집 걱정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그만큼 아내는 잘했습니다.

하루는 레지오를 하고 있는데 성모상이 갑자기 슬픈 모습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의 가게로 전화를 했으나 별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체조배를 드리는데 느닷없이 활활타는 불의 환상이 보였습니다. 아차싶은 생각으로 택시를 타고 급히 집으로 갔는데 아랫층 부억에서 불이나 막 천정으로 붙어 올라가는 중이었습니다.다행스럽게 불을 끌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가호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후에는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잊읍시다. 그 도둑이 돈이 꼭 필요했나보지요.

 행여 마주치기라도 해서 칼이라도 맞았으면 어떻게 할 뻔 했어요? 고맙게 생각합시다.

어느 새, 아내 세실리아는 정도 이상의 인자함을 보이는 것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딱 3년이 되는 해, 봄-

아내는 감기로 병원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잘 낫지 않는다고 웃기도 했습니다.

저는 가난했지만 성당 사목회의 주선으로 아내는 성모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폐암말기라는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청천벼락같은 일이었지만 아내는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습니다.

ㅡ너무 빨라...라는 말만 했습니다.

그 말을 사실이었습니다. 아이들도 아직 어리고 제 일도 다 끝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몇 개월의 입원치료를 받는 동안 저는 새로운 희망에 불타 오르고 있었습니다. <폐선암>으로 진단받은 환자가 모두 12명이었는데...모두 죽었지만 아내만은 끄덕도 동요를 안했던 것입니다.의사들도 신기한 일이라고 우선 퇴원을 하고 통원치료를 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입니다.

저의 레지오단원들은 환호를 질렀습니다.호스피스 병동의 모든 간호사들도 너무나 놀라하면서 박수갈채를 쳤습니다.

1994년 12월 4일 금요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일찍 퇴근을 하여 병원에 간 저는 퇴원보류라는 의사의 말에 어리둥절했습니다.

세실리아가 병원 침대를 다 정리해 놓았는데 제게 가진 돈을 전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돈과 문병온 사람들이 가져온 쥬스등을 간호사들,호스피스봉사자들,간병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면서 <그동안 신세 많이 졌다>고 인사를 하더니 창 밖의 단풍나무를 가르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다 떨어졌어야 할 단풍나무에는 아주 새빨간 단풍잎들이 햇살에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거기에는

성모님이 서 계셨습니다.

-꽃다발을 만들어 주셔요. 두 개만...

세실리아가 웃으며 청했습니다. 이 사람이 왜 이래? 했는데 수녀님이 어디에선가 두개의 하얀 꽃다발을 만들어가지고 오셨습니다. 다 들어주셔요. ..수녀님이 조용히 웃으셨습니다.

아내 세실리아는 꽃다발하나를 화관처럼 머리에 쓰고... 하나는 손에 들고 자리에 누웠습니다.그러면서

-안되겠어요. 이젠 가야겠어요. 저 사람이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어요.하는 것 아닙니까?

누가 기다리고 있다는거야? 정신차리라고 마구 아내의 몸을 흔들었습니다. 그라나 아내는

-당신,아무 걱정말아요...아이들 걱정도 하지 말아요.모두가 잘 될테니...당신은 여기에서 수를 다해 잘 살다가 오세요...하는 것 아닙니까?

 세상에 이게 무슨 말입니까? 저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당신 무슨 소리하는거야? 우린 이제 퇴원을 해야 하는데? 무슨 소리야,당신!

아내 세실리아는 잠깐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너무나 놀랬지요. 의사에게 덤벼들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전해질균형이 갑자기 파괴됬다는 것입니다.전해질이라니???

아내는 순간 눈을 떴습니다.그러더니 성가를 불러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보, 저는 성가 44장하고 272장이 제일 좋아요. 당신 그동안 고마웠어요.안녕히 계세요.

그리고는 나즉하게 성가를 부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다시 그 때의 광경이 떠올라 눈물이 나옵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너무나 철부지였습니다.

수녀님이 성가를 따라부르기시작했고...간호원..간병인들이 모두 성가를 따라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만 울었습니다. 모두들 눈물을 억지로 감추었는지는 모르지만 성가소리는 점점 커졌고... 아내 세실리아는 웃을 듯 말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갔습니다. 안녕히 계시라니??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

어디 놀러왔다가 가는 사람처럼 안녕히 계시라고 인사를 하다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1994.12.5일--그렇게 세실리아가 하늘나라로 가고... 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지금... 조그만 성당의 사무장으로 봉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내 세실리아가...데레사수녀님이...베드로신부님이  말씀했던 주님이 주신 저의... 사명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늘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모든 운명은 이렇게도 바뀌고 저렇게도 바뀔 것입니다.

아마 모르긴몰라도 남쪽에 계신 수녀님....마음은 주님 품안에 평화로우리라 생각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자매님에게도, 더불어 슬픔에 잠겨계신 이웃의 모든 분들에게도 더할나위없는 평화가 늘 충만하시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나 자매님이나...모두가 주님의 것이기에!

 

 

 

 

 

 

 

 



182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