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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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찔레꽃이 한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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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자 [agatha11] 쪽지 캡슐

2008-06-18 ㅣ No.121374

나물취 또는 취나물이라고도 하는 향이 좋은 산나물이 있습니다.
제가 사는 이곳 강원도 산골 기린에는 봄만 되면
나물 뜯는 사람들이 떼거지로 몰려 와 산을 훑고 다니면서 산나물을 싹쓸이 합니다.

저절로 나는 것보다 꺾어가는 양이 많다보니 산나물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집 근처에도 산나물이 별로 없어
퇴직한 남편이 농사지으러 기린으로 가던 해부터 취나물 몇 포기를 잘 가꾸더니
가을이 되자 온 사방으로 씨를 들고 투덕투덕 두드리며 돌아다녀서 지금은 제법 많아졌는데
아직도 더 키워야 한다고 해서 맘 놓고 뜯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제 아침에는 10시가 넘었는데도 산에서 풀을 깎고 있는 남편을 찾아 가서
빨리 밥 먹으러 안 오면 아침밥은 없는 줄 알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산길을 돌아 오다가 싱싱한 잎사귀를 벌레가 다 갉아 먹어 버린 취나물이 눈에 띄었습니다.
씨 받을 취나물을 먹어치우는 괘씸한 벌레를 찾아으려고 허리를 굽혀
차례차례 잎사귀를 뒤집는데 어디서 향긋한 냄새가 코에 닿았습니다.
어디서 많이 맡던 향기인데...이게 무슨 냄새지?

향기를 따라 가다 눈길이 멈추어선 언덕 아래에는 찔레꽃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맞다...찔레꽃....

어릴 때 찔레꽃이 필 무렵이면 모내기가 한창이었지요.
모 심는 날에 어머니는 일꾼들 먹을 밥을 가득 담은 대야를 머리에 이고
숙모는 찬 그릇을 이고 애들은 막걸리 담은 주전자 하나씩 들고
논두렁을 따라 한 줄로 길게 걸어갔었습니다.

점심을 차려 놓은 들판엔
솜씨 좋은 숙모가 맛깔나게 무친 도라지나물과
이맘때 한창인 꽁치를 구워 한 가득 담은 바구니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아이들은 주전자를 내려 놓기가 무섭게 들로 나서서
생각만 해도 침이 도는 싱아를 꺾어 먹기도 하고 
별 맛도 없는 뱀딸기를 따느라 풀숲을 뒤적이다 찔레 덤불 밑에
기어 들어가 찔레 순을 꺾어 먹기도 했지요.
그때 맡았던 그 향기가 옛날 일을 한꺼번에 떠오르게 했습니다.

 논에서 소를 몰던 아버지나 삼촌들은 이미 이 세상 분들이 아닙니다.
어머니도, 반찬을 나르던 숙모들도 모두 세상을 떠나셨고
그 때 들에서 뛰놀던 꼬마는 어느새 머리가 하나둘 희어지고
손가락 관절에 발목 시큰거림에 눈침침의 초로가 되어 아련한 옛날의 갈피를 뒤적이고 있습니다.
찔레꽃 향기에 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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