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를 관리해 본 경험이 있는 제국주의 국가들은 대체로 자신들이 지배했던 식민지 국가에 대하여 놀라울 만큼 깊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단다.
미국·영국·프랑스와 같은 제국주의적 지배 경험이 있었던 나라들은 식민지배 당시는 물론이고, 현재까지도 고급스러우면서도 정밀한 분석을 꾸준히 진행한다는 것이다.
최근, 우석훈은 자신이 쓴 책 <촌놈들의 제국주의>에서 "한국의 고급연구자들 중 절반은 미국에서 나머지 절반은 일본과 유럽에서 공부하면서 아주 고급스럽게 한국에 대해 분석하고 연구한 결과를 그 나라에 연구결과물로 제출하고 학위를 받아온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은 가만히 앉아서 고급정보를 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의 수많은 고급두뇌들이 미국 대학에 자국에 대한 자세히 분석한 정보를 넘겨주기 때문에 미국은 세계에 대해 가장 정확한 정보를 가진 나라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을까?
신대륙발견부터 부시정권까지 '진실한 미국역사'
같은 책에서 우석훈은 한미FTA와 관련해 "미국경제를 전공한 학자를 정부·시민단체·노동단체가 애타게 찾았는데, 미국에서 유학한 그 수많은 경제학자들과 입만 열면 '미국에서는…'이라고 했던 사람들 가운데 실제로 미국경제를 전공한 사람이 없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선진국으로서 미국이 아니라 지역학으로서 미국에 대한 연구경험과 성과가 전무하다는 지적이다.
하워드 진이 쓴 <살아있는 미국역사>를 읽으면서 이런 현상은 경제학뿐만 아니라 지역학으로서 역사연구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한국에는 미국역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얼마나 될까? 우리는 미국 역사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을까?
콜롬부스 신대륙발견과 독립전쟁, 남북전쟁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 그리고 베트남전쟁 패전국…. 당신은 미국 역사를 얼마나 아는가? 미국을 '아름다운 나라'로 믿고 있는 한국 우파들은 신대륙 발견 이후 500여년 간 이어온 미국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최근 국내에 번역된 하워드 진이 쓴 <살아있는 미국역사>는 신대륙발견에서부터 부시정권까지 미국역사를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잘 정리한 책이다. 지은이 하워드 진은 진보적인 역사학자로서 반전, 민권, 여권, 인종간 평등, 제3세계를 주제로 연구와 실천을 함께 하는 대표적인 실천적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다. 노엄촘스키와 함께 미국 양심을 대표하는 실천적 좌파 지식인으로 자주 소개된다.
하워드 진의 대표저서인 <미국민중사>는 미국에서 100만부가 넘게 팔렸으며, 수많은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교제로 채택되었다고 한다. <미국민중사>는 오래전에 국내에도 번역되어 나왔지만, 사람들에게 읽히지는 못하였던 것 같다. 이번에 출간된 <살아있는 미국역사>는 바로 미국민중사를 쉽고 간략하게 그러나 깊이는 그대로 담은 책이며, 자료를 보강하여 2006년 말까지의 역사를 담고 있다.
하워드 진은 "역사를 바라볼 때 선택과 강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느 한 쪽 편들어야 한다면, 나는 민중의 관점에서 역사를 읽고 싶다"고 말한다. 독자들은 하워드진이 쓴 <살아있는 미국역사>를 통해 정복자, 영웅의 시각에서 쓰인 미국역사 대신에 그들의 야욕에 희생당한 수많은 민중의 시각에서 쓰인 미국역사를 만날 수 있다.
미국역사를 바라보는 하워드 진의 시선
진보적 시각에서 미국역사를 기록한 대표적인 학자인 하워드 진은 자신의 역사기술이 지나치게 비판적이며, 비애국적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하워드 진은 자신의 역사인식은 '정직함'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한다. 조국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 정직할 때만이 그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에 정직하게 평가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애국심에 대한 생각 역시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애국심이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뜻하지 않으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을 가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1776년에 작성된 미국독립선언서에 그 기본원리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독립선언서는 정부라는 것이 성스러운 존재도 아니며 비판에서 자유로운 초월적인 존재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명, 자유, 행복추구의 동등한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국민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창조물이 바로 정부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러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을 경우 국민은 정부를 갈아치우거나 폐지할 권리를 갖는다."(본문 중에서)
따라서 정부를 갈아치우거나 폐지할 국민들의 권리에는 당연히 정부를 비판할 권리도 포함된다는 것이 하워드 진의 생각이다. 그러나 미국역사를 살펴보면, 미국 지배계급들은 종종 다른나라 국민들이 만들어낸 정부를 대신 갈아치우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으로 독립선언서에 담긴 "정부를 갈아치우거나 폐지할 권리"를 남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하워드 진은 역사가는 여태껏 영웅으로 간주되었지만, 실상은 그런 찬사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 관하여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옳다고 말한다. 콜럼버스가 미국 땅에 와서 황금을 찾기 위해 광란의 폭력을 휘두른 것은 결코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콜럼버스가 저지른 학살을 폭로한 카사스, 루스벨트를 비판한 마크 트웨인, 1차 세계대전 참전을 반대한 헬렌 켈러가 인간이 살아가야 할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준 진정한 영웅이라는 것이다. 그가 쓴 <살아있는 미국역사 >는 바로 전쟁, 인종차별, 경제적인 부당함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기본으로 씌어졌다.
100년 만에 멸종당한 아라와크족 인디언 그리고 흑인노예 수입
하워드 진이 쓴 <살아있는 미국역사> 첫 장은 신대륙 발견에 숨겨진 진실을 전하고 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이런 질실이 밝혀져 있다. 흔히,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1492년 10월 12일, 선원이었던 '로드리고'가 달빛에 반짝이는 백사장을 처음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전날 밤 이미 불빛을 보았다고 우긴 콜럼버스가 상금을 가로챈 것이라고 한다.
또한 노예와 황금을 찾아 인도로 떠났던 콜럼버스를 처음으로 환영했던 아라와크 인디언은 그후 황금과 노예사냥으로 100년 만에 멸종되었다고 한다. 처음 스페인인들이 황금탐사를 시작했을 때, 아이티에는 약 25만 명의 인디언이 살고 있었지만 2년이 지난 후에는 살해와 자살로 그 수가 반으로 줄었고, 1550년경에는 5만 명으로, 한 세기 더 지났을 때는 단 한 명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전에 7500만 명의 인디언이 살고 있었으며, 수백 가지 다양한 부족문화와 약 2000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중 이로쿼이족은 토지를 사적으로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였으며, 농사와 사냥을 통해 식량을 고르게 분배하였고, 여성이 존중받았으며, 남녀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아메리카에는 야만인들이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유럽과 다른 측면에서 문명적으로 더 앞서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고유한 역사와 법률, 문학이 있었으며, 유럽인들보다 훨씬 훌륭한 평등을 누리며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북아메리카에서 흑인 노예제도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북아메리카에 정착한 백인들은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하여 인디언을 부려먹고 싶었지만 수적 열세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버지니아 정착민들은 노예로 삼을 흑인들을 수입해오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아메리카 식민지의 노예제는 제임스타운 정착민들의 노동력 필요에 의해 생겨났다. 인디언들을 부리는 것은 불가능했고, 백인을 고용하는 것 또한 어려웠다. 그러나 흑인들은 인신매매로 돈벌이를 하는 상인들 덕분에 그 숫자가 점점 증가했다."(본문 중에서)
흑인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끝없이 증가하여, 1700년의 버지니아 식민에는 총인구의 12분의 1에 달하는 6000명의 노예가 있었지만 1763년에는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17만명의 노예가 있었다는 것이다.
인신매매로 끌려온 흑인들은 고향땅뿐만 아니라 문화와 언어, 의복, 관습, 가정생활 같은 자신들의 전통을 송두리째 빼앗겼다고 한다. 그러나 하워드 진은 그렇다고하여 아프리카 문화가 유럽 문화보다 열등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당시 아프리카 대륙에는 1억 인구가 살고 있었으며 유럽문화 못지않게 발전된 문화를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거대 도시를 이루고 철기의 사용 그리고 농경, 방직, 도기 제작, 조각 등의 기술을 발전시켜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지배계급에 속하는 백인들은 인디언과 흑인 그리고 하층 백인들이 서로 단결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흑인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인디언들이 백인들의 침략에 맞서서 투쟁하였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살아있는 미국역사>에는 흑인들과 인디언들 그리고 소외당한 하층 백인들이 바보처럼 당하고만 살지 않았다는 것을 사실대로 전해준다. 아울러 백인 지배층이 얼마나 잔혹하게 이들을 짓밟았는지도 사실대로 알려준다.
미국, 처음부터 부자들을 위한 나라
하워드 진의 <살아있는 미국역사>를 보면, 미국은 건국초기부터 철저하게 부자들을 위한 나라였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독립선언 후에 새로 조직한 의용군에 시민들의 입대를 종용하였지만, 부자들은 처음부터 예외를 적용받았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반드시 입대해야 했지만, 부자들은 사람을 사서 대신 입대시키면 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독립전쟁 중에 만들어진 법안들도 만찬가지였다. 장교들에게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참전할 경우 평생 군에서 받을 급료 절반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법을 통과 시켜 장교와 사병을 철저하게 차별하였다고 한다. 또한 국왕파들에게서 몰수한 대부분 재산이 혁명정부의 지도자들과 그 일당의 배를 불리는데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독립전쟁은 본질은 영국본토 지배계급과 북아메리카 백인 신흥지배 계급 간에 벌어진 권력과 부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었을 뿐이며, 가난한 백인 노동자들과 소작농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흑인들도 독립전쟁을 위해 싸웠지만, 전쟁 후에도 여전히 그들은 노예상태를 벗어날 수 없었다.
미국독립선언서에 담긴 민주주의 정신은 백인남성의 생명, 자유, 행복에 대한 권리만 담겨있었던 것이다. 독립선언서에는 인디언, 흑인노예, 여성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한 대부분 미국인들은 민주주의와 평등의 법적인 토대가 되는 헌법이 현명한 사람들이 이루어낸 성과라고 믿고 있지만 실상을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찰스 비어드라는 역사학자는 헌법작성에 참가한 55인은 대부분 부자였고, 그들 가운데 절반은 사채업자들이었고 대부분은 변호사였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경제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강력한 연방정부를 만들고자 하였으며, 힘없는 사람들의 요구사항은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워드 진은 신화처럼 떠받드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권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던 현명하고 공정한 사람들이 아니라, 현 상태를 유지하기를 원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남북전쟁은 노예해방전쟁이 아니었다
이 밖에도 <살아있는 미국역사>에는 진실한 미국역사가 새겨져있는데, 우리가 노예해방전쟁으로 알고 있는 남북전쟁은 남부의 독립을 막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하워드 진은 링컨이 쓴 편지를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저의 궁극적인 목표는 어디까지나 연방을 보존하는 것이지 노예제를 유지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예를 해방시키지 않고도 연방을 보존할 수 있다면 저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반대로 노예를 해방시켜야 연방을 보존할 수 있다면 저는 그렇게 할 것 입니다."(본문 중에서)
또한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진 멈추지 않는 팽창야욕을 사실대로 전하고 있다. 훗날 대통령이 된 앤드루 잭슨으로 대표되는 인디언 토지 강탈과 학살전쟁, 서부개척 역사, 멕시코 전쟁, 남북전쟁, 노동자 계급의 성장, 쿠바침략, 필리핀전쟁, 1·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흑인민권운동과 베트남전쟁에 그리고 좌파운동과 반핵운동, 테러와의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미국역사를 진실한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신의 계시로 필리핀을 합병한 대통령 '매킨리'
필리핀 침략과 지배를 둘러싼 논쟁에 대한 월리엄 매킨리 대통령의 답변은 경악과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그는 백악관을 방문한 각료들에게 필리핀 합병을 결정하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고 한다.
"그는 신에게 간청 기도를 하던 중에 그 섬들을 모두 흡수한 수 필리핀 사람들을 교육하여 문명화하고 기독교화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잠자리에 들어 단잠을 이룰 수 있었다라고 했다."(본문 중에서)
하워드 진이 쓴 <살아있는 미국역사>는, 조지 부시가 성경에 손을 얹고 기도하며 이라크를 침략한 일이 결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오늘날 미국이 세계 삼류 깡패 국가로 전락한 것은 신대륙을 발견하던 당시부터 지금까지 철저하게 지배하는자와 부자들을 위한 나라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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