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피 밭입니다. 장독대 옆에는 풋고추.
찬미 예수님
남편은 술도 담배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대체로 건강한 편이었습니다.
퇴직금으로 집을 짓고 나서는 남편은 정말 백수(?)가 되자
목디스크네 오십견이네 하루가 멀다하고 병원을 들락거리게 되었지요.
본인이 아프니 짜증도 나겠지만 저는 저대로 숨도 크게 못 쉬고 조금만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위기일발 직전에 울산 사는 시누이가 우연히(저는 필연이라고 여겨집니다만 ^^)
우리집에 들렀다가 남편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오라버니는 시골 가서 농사 좀 해보지 그러우?"
인제 기린 산골 시아버지에게 사드렸던 땅을 지금은 그 동네 사람이 경작하고 있는데
거기 가서 나무도 심고 농사나 지어보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농삿일이 오 년전.
시골 살림에 필수인 트럭을 구입하느라 목돈이 들어갔고
농가를 불편하지 않게 대충 개조하는데 솔찬히 돈이 들어갔고
그 때만 해도 오가피가 꽤 인기가 있어서 묘목을 사느라 적잖은 돈 들어갔고
농약을 뿌려대고 화학비료로만 농사 지어 지렁이라곤 없던 딱딱한 땅에
퇴비를 들이부어 땅심을 살리는데 만만찮은 돈이 들어갔지요.
농기계가 없으니 동네 사람에게 부탁해서 땅 갈아엎는데 돈, 주변 정리하는 중장비에 돈.
게다가 초짜 농부인 남편은 해마다 이것저것 작물에 눈을 돌려 둥글레 2백만원. 고사리 2백만원.
다음해에 두릅 몇 십만원 더덕씨 몇 십만원 도라지씨 몇 십만원......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남편이 아프단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여유를 부릴 상황은 아니지만 남편의 정신 건강까지 좋아진 걸 따진다면
뭘 더 바라겠나 싶어서 계속 적자를 보면서도 말을 않고 지냈습니다.
지난 해에는 벌을 쳐 보라고 지인이 준 다섯통의 양봉이
이젠 삼십 통으로 늘어나고 나니 소소하게 도구들을 사들이는 것도 무시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오 년이면 수확이 가능하다는 오가피도 인기가 시들해졌고
더구나 두메산골까지 찾아와 살 사람은 더더욱 없는 형편에 있을 떄...
춘천에 볼 일이 있다는 기린 성당 수녀님들께서 저를 태우러
봉덕동 산골까지 왕림(?)해 주셨던 떄가 지난 봄이었습니다.
우리 형편이 딱해 보였던지 둘러 보시던 수녀님께서 직격탄을 날리셨습니다.^^
남편이 저렇게 땀을 흘리고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돈이 될 것인가 연구하지 않고
대체 자매님은 뭘 하고 있느냐고......
옹이가 박힌 손으로 나무를 가꾸고 곡식을 돌보는 남편은 타고난 농부가 틀림없어
돈이 되든 안 되든 애써 가꾼 나무나 산나물이 자라는 것만 보면 그저 흐뭇해하다는 남편.
지극정성으로 저렇게 애쓰고 힘을 쓰는데 도대체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가
하느님을 멀리 떠나 30여 년을 냉담 중인 남편 탓이라 생각하고 있었지요.ㅋㅋ
시편127편 어딘가에 보면 "사람이 계획을 세울지라도 이루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 말씀처럼
제아무리 노력을 해도 주님이 주시지 않으면 받을 수 없다..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녀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저의 잘못된 생각을 하느님께서 나무라시는 것 같았습니다.
남들처럼 이재에 밝은 솜씨도 못 되고 그저 집에 들어앉아 살림이나 하는 주제인 저는
돈이 되는 일에 무감각한 게 사실이었지요.
수녀님은 오가피 새 순으로 짱아치를 담아 교구 바자회에도 내 보고 시장 조사도 해 보고...
하시면서 구체적인 행동 지침까지 일러 주셨습니다. ㅠㅠ
그래서 약재로만 쓰이는 줄 알았던 오가피가 식용으로 탄생하게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는데 특별한 시(?)에 사는 서울특별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궁금했던 차에
산골 이야기를 주절주절 엮어 댄 저의 글을 보시고 부럽고 재밌다는 잔닼자매님께 보내게 되었습니다.
잔닼 자매님 덕에 게시판에 등장하게 된 오가피..출세한 거지요.ㅎㅎ
내년 봄에 새순이 올라 오면 많이 담아 볼 계획입니다.
사족; 월급 타다 줄 때 십일조 때문에 남편과 불협화음을 면치 못했던 일이 생각나
남편에게 다짐을 받아 두었습니다.
"오가피 짱아치 수입의 십분의 일은 하느님 몫으로 떼어 놓을 거요".했더니
남편의 대답은 "맘대로 하쇼."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