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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때문에 한국에서 오래오래 살겠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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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자동차 문을 긁는 소리가 주차장에 가득 찼다. 나는 순간 등골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운전대를 잡고 한참 그렇게 있었다. “설마, 설마. 내가…” 십 년이나 탄 ‘엑셀’ 자동차로 ‘BMW’의 문에 흠집을 낸 것이다. 그것도 앞문, 뒷문 모두. 엑셀을 팔아도 수리비를 다 치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차마 내려서 차를 바라볼 자신도 없었다. 한참을 고민했다. 새벽 두 시. 아무도 없는 주차장. 여기서 내가 차를 빼고 냅다 도망가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보아하니 수리비는 백 만원 이상 나올 것이지만 출강하는 학교 사정으로 월급이 밀린지 삼 개월 째.
분명 하나님도 용서하실 거란 생각에 차를 빼려는 순간 나는 또 다시 갈등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크리스천이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가. 한참을 고민하다 종이에 이름과 연락처 그리고 죄송하다는 말을 적었다. 그리고 와이퍼에 끼어 두었다. 백 만원이 넘는 청구서가 눈 앞에 어른거렸고 나는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하고 말았다. “저는 할 도리를 다 했습니다. 제발 바람이 불어서 그 종이가 날아가게 해 주세요.”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BMW가 가슴을 누르는 꿈을 꾸었고 수리비를 내지 못해 쫓겨다니는 꿈도 꾸었다. 나를 깨운 것은 아내의 목소리였다. “여보! 전화!” 하는 아내의 말에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어, 누구래?” 떨리는 목소리를 감춰 보려고 했지만 오히려 이상한 소리만 내고 말았다. “당신이 흠집낸 BMW 주인이래.” 전화기까지 가는 동안 내 머리 속에는 얼마나 많은 생각이 오고 갔던가.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모아둔 돈도 없는데.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할까? 아니면 카드로 긁고 12개월 할부로 할까. “여보세요.” 내 개미 만한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전화 건 사람은 꽤 호탕한 목소리를 냈다. “네. 차 주인입니다.” 죄송하다는 내 목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그는 “이민 가려고 했습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웬 뚱딴지 같은 이민?“ 지금까지 내 차를 긁어 놓은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호주에서 몇 년 살다 왔는데 한국은 도대체 사람들이 정직하질 못해요. 날림공사 때문에 피해도 많이 봤습니다. 사실 차 하나만 봐도 그렇습니다. 차체가 큰 편이라 그런지 자주 긁히고 백 미러도 깨집니다. 근데 피해를 주었으면서도 한 명도 미안하다고 얘기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누가 했는지 모른다는 심보겠지요. 이 놈의 나라가 싫어서 확 이민이나 가려고 했는데 선생의 메모를 보았습니다. 차를 스무 번도 넘게 카센터에 보냈지만 이번처럼 기분 좋게 보낸 적이 없습니다. 이민, 고려 해봐야겠습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참, 차 값은 됐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그는 한 번 더 호탕한 웃음을 보이더니 전화를 끊었다. “여보, 무슨 전화야?” 하는 아내의 말이 그렇게 경쾌하게 들리다니. 나는 큰소리로 대답했다.
“어, 나 때문에 한국에서 오래오래 살겠대!”
- 낮은울타리 강진구(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주엽동)님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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