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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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현대사 - 영원한 오월광대 - 박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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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길 [u90120] 쪽지 캡슐

2005-05-20 ㅣ No.89

영원한 오월광대-박효선
 
 
 
 
 
 

80년 광주의 오월을 되살리다.
연극 <금희의 오월>,
서울올림픽이 열린 해인 88년 4월 초 서울에서 올려진 연극 한편이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 난지 8년이 지난 때였다.

“지금은 망월동 차디찬 땅에 누워있지만 오빠는 우리 가슴마다에 진달래 꽃불이 되어 살아계세요! 오빠 우리는 꼭 이길 거예요!”

연극 <금희의 오월>은 당시 계엄군 총에 사망한 전남대생 이정연의 여동생 금희의 눈을 통해 본 오월 광주이야기이다. 당시만 해도 ‘광주사태’ 라고 불리던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최초의 연극, 소문으로만 듣던 광주의 오월이 한편의 연극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이 연극을 만든 이가 박효선이다.

동지들이 죽어가던 그날. 그는 두려움에 도망치고 말았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박효선은 시민들을 이끈 강경파지도부의 홍보부장이었다. 그는 민주화운동 초기부터 ‘문화선전대’의 역할을 하고 있었고 시민들을 참여하게 하는 홍보활동과 군중집회를 주도 하는 인물이었다.
5월 광주의 마지막 날인 27일 새벽 1시 계엄군은 장갑차를 앞세우고 시민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날 새벽 2시경 박효선은 동료들을 뒤로 한 채 도망치고 말았다. 그것이 그에게 평생 빚이 되고 말았다.

죽는 날까지 그는 ‘오월광대’ 였다.
그날 새벽, 동지들과 함께 끝까지 남아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평생 그를 괴롭혔다.
신군부는 철저히 광주의 진실을 은폐하려 했고 그 가운데 그는 98년 암으로 사망 할 때 까지 연극 ‘모란 꽃’, ‘금희의 오월’ 등, 그가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한 작품들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려했다.
그의 작품의 화두는 언제나 80년 오월의 광주였다. 그것이 빚을 진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여겼다.
그는 영원한 ‘오월 광대’ 였다.

 

영원한 오월광대-박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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