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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향상과 타락의 씨를 다 가지고 때로는 만물의 주인이자 만물의 밥이기도 하고 항상 진리의 잣대인양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끝없는 오류를 범하는 것을 보면 영원히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인 존재인가 보다."
어느 누구는 인생을 맹수에 쫓기는 존재로 묘사한다. 인간은 맹수가 보이지 않을 때는 생을 즐기면서 인생을 살만한 것으로 예찬하다가 맹수의 추격이 시야에 들어오면 맹수에게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숨이 턱에 닿도록 헐떡인다. 고통에 손들고 압도된 나머지 태어나서 세상의 빛을 본 것을 후회하다가 때로는 저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인생은 살만한 것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 고통스러운 과정일 수도있다. 그런데 설상가상 이라고 할가! 맹수를 피해 도망치다가 절벽에 도달하면, 떨어져 죽거나 먹혀 죽거나, 오직 죽는 일이 선택의 전부일 뿐이다. 우선 묘책으로 절벽에 서있는 나무에 매달려 발버둥 쳐보지만 팔에 힘이 빠지기도 전에 검은 쥐와 흰 쥐가 번갈아 가지를 갈아 먹고 있다. 세월이 가면 죽는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는 필연인 것이다. 이렇다면 인생은 苦海가 아닐까?
인생이 죽어서 끝장난다면 ‘잘먹고 잘입고 잘 산다는 것’은 요철과 보색을 사용한 한폭의 그림처럼 인생을 더욱 부질없는 것으로 돌출하여 묘사하게 될 것이다. 죽음이 희망있는 새로운 출발이 아니라면 삶의 목표는 어떻게 정하여야 할가? 방향도 없이 어떤 목표를 세운다면 그건 분명 넌센스 이다. 방향도 그리고 목표도 없이 산다는 것은 항해중 난파된 선박처럼 어느 때 어느 장소 조차 모르는 곳에서 침몰하는 배와 별로 다르지 않는 운명일 것이다.
이러한 좌절에서 '영원히 산다는 진리의 말씀'은 엄청 기뿐소식이 아닌가? 영원히 살게 하겠다는 약속은 누가 하였는가?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 하실 때, 산 이는 누구이고 죽은 이는 누구인가? 용서에 이골이 나신 주님앞에 회개한 죄인들은 모두 산 이라고 믿어진다. 새벽4시에 깨어서 더 자지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하는 경우처럼 차지도 못하고 덥지도 못한 사람은 회개한 죄인으로 단정할 수없다. 그렇다면 회개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기준이 없으면 평가를 할 수 없다. 회개는 주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신 제자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성서에서 우리는 군중이라는 단어와 제자라는 낱말을 자주 접한다. 군중은 병을 낫기위해 또는 세속적 애로사항을 해결하기위해 예수를 찾는다. 가르침은 외면하고 예수를 이용만 하려고 애쓴다. 결국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친다. 그렇다면 제자는 어떤 사람일가? 한마디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섬김을 받으려고 오시지 않았듯이 형제 자매들을 섬기기 위해 ‘어려운 형편에 처한 미소한 형제에게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람들이 제자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이다.
여러사람들이 작금의 시대를 불확실성의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일어 날지 그예측이 어려운 시기이다. 모든 걸 하느님께 맡기고 하루 하루를 감사하고 예수님 가르침을 따라 사는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크리스찬이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가? 기도 묵상 성경읽기를 즐겨하다보면 길도 보이고 귀도 열려서 기쁘게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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