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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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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여러분에게 십자가를 사랑하라고 할 때 말하는 것은 감각적인 사랑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순수 인간적인 것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흔히 세 가지 종류로 분류됩니다. 감각적인 사랑과 이성적인 사랑, 그리고 완전한 하느님 사랑이 그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저속한 사람들의 사랑(육체적인 사랑)과 고상한 사람들의 사랑(이성적인 사랑) 그리고 정신적 사랑의 최고봉, 또는 영혼의 제일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사랑 (신앙으로 비추어져 깨달은 지성적 사랑)입니다.
(1) 감각적인 사랑
47.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육체적인 원의때문에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육체는 부패하고 죄에 물들어 있으며 거기서 생기는 모든 것은 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육체는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하느님과 십자가의 계율에 전혀 복종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올리브 동산에서 "아버지,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하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미약한 자연적 본성이 거룩함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끊임없이 사랑할 수 없었다면ㅡ 하물며 그 자연적인 본성이 완전히 타락한 우리에게 있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어떤 성인들이 지니셨던 것과 같이 우리의 고통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는 일종의 기쁨을 느낄 수도 있으나, 그 기쁨이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있다고 해서 다만 육에서 오는 것만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영성의 높은 데서 오는 것이니, 거기에 성령의 신성한 기쁨이 너무도 충만해서 인간 본성의 낮은 데로 넘쳐흐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장 깊은 고통에 빠져 있는 순간에도 "나의 영혼과 육체가 살아 계신 하느님 안에서 기뻐한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이성적인 사랑
48. 십자가의 사랑에는 그의 근거를 이성에, 즉 영혼의 더 높은 위치에 두고 있는 다른 한 종류가 있습니다. 이 사랑은 완전히 정신적입니다. 하느님을 위해서 고통당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깨닫는 데서 우러나오는 사랑입니다.
영혼은 이 사랑을 의식하며 또 이 사랑에서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 이렇게 알아볼 수 있는 이성적인 사랑은 참으로 훌륭한 것이기는 하지만, 기쁘고 훌륭하게 고통을 참아 견디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영성 생활의 스승들이 말하는 영혼의 절정, 혹은 영혼의 깊은 곳에 있는 또 다른 사랑이 있습니다. 철학자들이 표현하는 또는 정신 안에 있는 또 다른 종류의 사랑입니다.
(3) 순수한 신앙의 사랑
49. 이 사랑은 감각적인 본성이나 이성으로는 조금도 기쁨을 느끼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지고 가는 십자가를 순수한 신앙 속에서 사랑하고 그 가치를 알고 있습니다. 물론 미약한 이들은 아주 반발하고 저항하며 신음하고 탄식하며, 울면서 도피의 길을 찾아 헤매지만, 순수한 신앙 속에서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루가 22, 42). 또는 거룩한 동정 마리아와 함께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38)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두 분의 이러한 사랑의 자세로 우리는 십자가를 사랑하고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성 루도비꼬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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