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월)
(녹)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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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침묵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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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 [humanaevitae] 쪽지 캡슐

2008-07-02 ㅣ No.121855


- 어느 카르투시안 수도자의 말씀 -

"아닙니다.  죽음을 왜 두려워합니까?  그것은 모든 인간의 운명입니다.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집니다.  그것이 삶의 목적입니다.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집니다.  하느님을 더욱 빨리 만나려 서두룰수록 오히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을 다시금 발견한다는 것이 아주 큰 즐거움입니다. 

과거와 현재, 이런 것들은 인간적인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는 과거가 없습니다.  오직 현재만이 지배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 그분은 우리 삶 전체를 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무한히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우리의 안녕을 영원속에서 보살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아무런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제 눈이 안보이도록 해주신데 대해 하느님께 자주 감사드립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제 영혼의 유익을 위해 이러한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셨음을 확신합니다.

세상이 하느님에 대한 모든 감각을 상실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  그들은 더이상 살아가야 할 아무런 이유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생각을 지워버린다면 무슨 이유로 이 지상에서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무한히 선하신 분이시고 하느님의 섭리하심은 우리의 최상의 유익을 위해서이다라는 원리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행복해야 하며 절대 불행해 해서는 안됩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우리 영혼의 유익을 위해서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무한히 선하시고 우리를 도우신다라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만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전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합니다."

- 오직 완전한 침묵 속에서만 우리는 듣기 시작한다.  언어가 잦아들 때만이 우리는 보기 시작한다  (Only in complete silence, one starts to hear. Only when language resigns, one starts to see). A film on the Grande Chartreuse is a voyage -

http://www.legrandsilence-lefilm.com/

수도회 웹싸이트: http://www.chartreux.org/en/fram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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