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월)
(녹)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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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같은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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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08-07-02 ㅣ No.121838

 
 

                                        들꽃 같은 사제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 하며 가슴을 주먹으로 치는 소리가 흡사 기둥 무너지는 듯한 소리로 들렸다면 과장일는지? 나는 고백의 기도를 드릴 때마다 언젠가 관상수도원에서 만났던 한 수사 신부님을 기억한다. 그 신부님은 “~인 것 같다”라는 말을 자주 썼는데, 강론 중에 자기도 좀 어색했던지 “이렇게 ~인 것 같다”라는 말을 자주 쓰는 이유는 말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솔직히 털어 놓으시기도 했다.


   마침 그날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축일이라 짚신 두 짝과 형틀을 상징한 나무토막 몇 개, 그리고 도라지꽃을 이용한 꽃꽂이가 예쁘게 되어 있었다. 나는 꽃꽂이가 퍽 잘 되어 있다고 했더니 꽃꽂이하신 수녀님을 두고 “장맛보다 뚝배기 맛이라 카더니, 그 수녀님 얼굴은 못생겨도 솜씨는 그만 이라 예” 하시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일러주지 마이소” 하며 털털하게 웃으시던 그 구수한 음성이 오래도록 잊혀 지지 않는다. 예수님도 가끔씩 농담을 하셨을까? 참으로 인간적인 모습에 친근감과 함께 존경심이 우러나게 하는 사제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미국 교포사목중인 신부님 한 분도 좋은 모습으로 오래 남아 있다. 정월 초하루 새해 미사였다고 기억된다. 미사가 끝난 후 제의를 벗고 제대 앞쪽으로 나오시더니 “해마다 저는 이렇게 해왔습니다” 하며 넙죽 엎드려 성당에 앉은 모든 신자들을 향하여 공손히 세배를 올리는 게 아닌가. 어쨌든 그날은 조그만 어린애까지 신부님의 세배를 받은 셈이다. 이 신부님은 온 신자들로부터 얼마나 존경과 사랑을 많이 받으셨던지 모두들 제발 오래오래 계시면 좋겠다고 했다.


   또 한 분, 피정 강사로 오신 어느 시골 신부님의 모습도 빼놓을 수 없다. 자기가 오늘날까지 사제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어릴 적 성당에 가지 않고 헌금으로 빵을 사먹고는 성당에 갔다고 거짓말을 했던 날, 촛불 앞에서 밤을 새워 우시던 어머니의 모습 때문이었다고 고백 하시던  신부님. 신자들을 향해 기술이나 재주를 길러주는 부모보다 영원을 선물하는 부모가 되라고 하시던 강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성가 부르기를 좋아 한다며 성가를 연이어 몇 곡이나 부르시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그분이 지으신 ‘들꽃 마을의 기도‘는  언제 읽어도 좋다.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주여, 우리로 하여금

          올라가기보다 내려가게 하시고

          커가기보다 작아지게 하시며

          소리내기보다 침묵하게 하시고

          화려하기보다 단순하게 하시며

          풍요롭기보다 가난하게 하시고

          고민하기보다 고통당함을 사랑하게 하소서

 

          오!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미래의 행복보다 오늘의 어려움을

          앞날의 변화를 재촉하기보다 오늘의 불완전을 채워져야 할

          빈 가슴을 간직하게 하소서

 

          주여, 우리 영혼 육신의 온갖 가지 세상 장식을 떼어주시어

          임의 십자가만을 목에 걸고

          작은 미소 머금은 채 살아가게 하소서.”

            - 들꽃마을 최 영 배 (비오)신부


   세 분 사제들의 깊은 영성을 묵상하면서 사제에게서 풍겨져야만 하는 인간 그리스도의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을 그려본다. 이처럼 귀한 신부님이 더욱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 이호자 마지아 수녀(서울 포교 성 베네딕토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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