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월)
(녹)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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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버지 모습 보여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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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08-07-02 ㅣ No.121826

 

[본당신부이야기] "참 아버지 모습 보여드릴께요.”

 

                      


   “옥체 보존하소서”


   신학생 땐 그래도 몸매는 좀 봐줄만 했었는데 요즘 내 몸매는 별명이 0.1톤이라고 불리듯 배만 나온 영락없는 아저씨의 몸매이다.


   일도 하지 않고 편하게 좋은 것만 먹고 다니며 늘 부리는 사람으로서만 살아왔으니 배만 나오는 것은 당연한 듯 보인다. 그런데 신자 분들은 이러한 내 모습을 보면서도 게으르다거나 보기 흉하다는 소리는 절대 하지 않는다. 땀 좀 뺄 일인 듯 싶어 함께 하려 하면 신자들은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손도 대지 못하게 한다.


   언젠가 소금을 판매할 일이 있어 운동도 좀 할 겸 배달비 1000원을 받고 신자들에게 소금을 배달한 적이 있었다. 그리 무겁지도 않고 신자들 집에 신부가 소금 배달을 한다는 것이 하나의 신선한 경험도 될 듯 하여 아주 기분 좋게 배달을 한 적이 있었는데 배달을 한 가정마다 놀란 눈으로 ‘정말 신부님이 배달을 하시네요’하면서 토끼눈으로 나를 보는 것이 아닌가.


   그 신자 분들은 정말 신부님이 배달을 해주실까 의심을 했단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신부님이 그걸 직접 배달하겠느냐고. 형제회에서 다 배달하고 남은 거 좀 배달했는데 신자 분들의 반응은 완전히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신학생에서 보좌신부로 보좌신부에서 주임신부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내 배는 한없이 나오기 시작한다. 물론 정말 게을러서 운동도 하지 않고 일도 하지 않는 순전히 내 탓으로 인한 현상이다.


   그럼에도 우리 신자 분들은 혹여나 신부가 힘든 일을 하여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조금이라도 땀을 흘리면 안타까움과 걱정스러움으로 나를 쳐다본다. 컴퓨터 오락에 익숙한 손놀림, TV채널에 익숙한 행동이외엔 내가 그들에게 몸으로 보여줄 그 아무것도 없다. 창피한 일이다. 조금만 피곤해도 귀찮아하고 늘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하여 나 자신에게 모든 신자 분들의 일정을 맞추었던 나의 모습들. 그래서 그분들은 할 일없는 나를 보면서도 늘 바쁜 줄 안다.


   그들이 바쁘고 힘든 것은 이해 못하며, 늘 여유로움 속에서 잠시 바쁜 나의 모습은 신자들에게 항상 이해받길 원한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이 시간  신자 분들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신부님, 옥체 보존하소서. 신부님은 1000여명의 아버지이십니다.”


   1000명의 자녀를 둔 아버지의 모습일까? 내가 정말? 그런 모습으로 예수님이 보아주실까? 배만 나오고 함께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하다못해 삽질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의 이 모습이 진정 1000명의 자녀를 둔 아버지의 모습일까 생각해본다.


   예수님. 저 창피한 거 알고 정말 몹쓸 아버지의 모습인거 아니까요. 조금만 기다려 주실래요? 제가 한건 해 볼께요. 당신 목수로서 노동의 참 의미를 아는 분, 저도 제대로 된 아버지의 모습 보여 드릴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함 지켜봐 주세요. 그러실꺼죠? 

- 출처: 가톨릭 신문

▒ 오유성 안토니오 신부(수원교구 오포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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