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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어제와 오늘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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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에서 1900년까지 미국 군대가 필리핀 군도를 침략하고 점령했는데, 그동안 필리핀인들을 무려 25만 명이나 학살했습니다. 이 비참한 전쟁에서 미국은 적군의 손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이유로 현지인들의 농작물을 대거 파손하거나 약탈했고 그 때문에 수많은 노약자와 어린이들이 아사했습니다. 한국에는 아직도 "6·25때 미국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모두 굶어죽었을 것이니 미국은 은인이다"는 어처구니없는 설교를 하는 수구 목사님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아니라 멀쩡한 한국을 분단하여 한국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책임은 주제를 벗어난 이야기이니 차치하고, 미국이 식량을 이용해 한국에서 저지른 범죄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미 공군은 치밀한 계획 아래 북한 지역의 댐들을 폭파하여 계곡의 농경지를 완전 침수시켜서 농사를 망치게 했습니다. "북한군의 식량 보급원을 차단한다"는 것이 표면상의 목표였지만 결국 군대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많은 여성과 노약자와 어린이들이 아사했습니다. 제네바 협약에 의하면 의도적으로 식량을 박탈하는 것은 전쟁 범죄에 해당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중에 전후에 미국에서 온 밀가루 등 식품 원조를 받은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한반도 전체를 무차별 폭격하여 건물과 도로와 교량과 논밭까지 잿더미를 만들어 놓은 후에 왜 미국은 갑자기 식량 원조를 했을까요? 미국인들이 친절하고 인심이 후해서였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1950년대에 세계 곳곳에 배고픈 어린이들과 극빈한 동네들이 퍼져 있었는데 미국은 왜 그들 중 대다수를 외면했을까요? 그렇습니다. 미국은 공산주의 확대를 경계하고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전후에 한국에 식량 원조를 한 것입니다. 필리핀·한국·아프리카·이라크... 인류애보다 정치적 목적 앞세운 미국 다른 예를 보면, 최근 미국 정부는 친미 정권을 지지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아프리카의 수단에 식량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내부부와 국가안보회의 관리들의 압력으로 이번에 미국 의회 예산안에 포함된 수단 지원금은 미국의 식량 지원 정책의 역사가 얼마나 정치적인지 잘 보여줍니다. 물론 겉으로는 식량 지원 정책을 인류애적인 수식어로 잘 포장하여 일반 시민들에게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선한 나라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초에 소말리아로 대피한 에티오피아 난민에게 보낸 구호 식량 중 많은 부분이 굶주린 주민들 대신 아디스아바바의 공산주의 정권에 대항하는 우파 게릴라에게 넘겨지는 것을 미국 관리들이 뻔히 알고도 묵인했다는 사실을 아는 미국 시민들은 거의 없습니다. 미국 정부로서는 아사자가 속출하는 상황을 막는 것보다 좌파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이라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989년에 사담 후세인이 미국 농무부의 원조 식량을 빼돌려 현금으로 바꾸거나 무기를 구매한 정황이 드러났지만 당시 부시 대통령(아버지 부시)은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할 때까지 이를 묵인했습니다. 1차 걸프전 후 부시와 그 뒤를 이은 클린턴은 이라크의 무기 프로그램을 저지한다는 명목으로 유엔을 압박하여 사상 유례가 없는 가혹한 이라크 경제 제재를 시작했습니다. 이라크의 군대가 약화되기는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 제재 10년 동안 5세 이하 이라크 어린이 50만 명이 사망하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미국 정부가 모든 정보를 확실히 알고 모든 것을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떨 때는 특정 목적으로 원조를 시작했는데 뜻하지 않은 결과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1994년에는 자이레에 대피해 있던 르완다의 후투족 난민들에게 제공한 미국의 원조 식량이 급진파의 손에 들어가 르완다 재침공을 위한 무기 구입 자금으로 둔갑하기도 했습니다. 펩시·네슬레... '음식=돈벌이 수단'으로만 치부하는 미국 기업들 미국 정부와 군대만이 아니라 미국 기업도 음식을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도구로 이용합니다. <오마이뉴스>의 여러 기사들이 지적해왔듯이 "자유 무역"이니 "세계화"니 하는 화려한 언어들 뒤에 숨겨진 민초들의 현실은 참담합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경제 체제와 그 도구인 세계무역기구 및 각종 무역 협약들은 대다수 보통 사람들의 삶에 큰 해악을 끼쳤습니다. 데빈더 샤마는 <정치적 무기로서 음식물>이란 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인도에서 세계무역기구 협약이 발효된 후 8년 동안 농산품 수입이 400퍼센트나 증가했다. 엄청난 양의 식품이 외국에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이는 인도 농민들에게 큰 피해를 끼쳤다. 파산 지경에 몰린 농부들은 처음에는 신장을 떼어 팔고 그 다음에는 다른 장기를 떼어 팔고 마지막으로는 자살을 한다. 인도 농민들의 자살률은 엄청나게 높다. 인도 정부는 이를 부인하지만 내가 추정하기로는 1993년에서 2003년까지 10년간 자살한 농민의 수는 10만에 달한다." 환경운동가이며 학자인 반다나 시바에 의하면 펩시식품회사가 1994년 인도에서 KFC 체인점 30곳과 피자헛 체인점 30곳을 설립한 후 가공육류와 항생제, 살충·살균제, 호르몬, 염색약 등에 노출되고 암과 각종 질병에 걸린 닭고기를 사용한 음식을 팔아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현지에서 고용을 창출하겠다고 했던 이 미국 기업들은 저임금 노동자 300명을 고용하는 데 그쳤고 오히려 관련 업종에서 일하던 30만 명은 일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1970대의 네슬레 분유 사건도 기업 횡포의 한 예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네슬레는 아기 분유 제조업 부문의 강자였는데 아프리카 여러 국가들에서 분유를 팔아 이윤을 증대시킬 계획을 세웠습니다. 당시 아프리카의 여성들은 대부분 모유를 먹이고 있었는데(네슬레가 모유로 이윤을 남길 방법을 알아냈더라면 틀림없이 써먹었겠지요) 네슬레는 분유 소비를 이끌어내기 위해 모유보다 분유가 낫다는 광고를 퍼부었습니다. 토실토실하고 예쁜 아기들을 모델로 사용하여 네슬레 분유에는 비타민이 듬뿍 들어있어 건강하고 행복한 아기들로 길러준다고 선전했고 아기 엄마들에게 무료 샘플을 나눠주었습니다. 네슬레의 마케팅 전략은 주효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아프리카의 엄마들이 무료로 받은 분유를 먹이거나 아예 분유를 사 먹이기 시작했고, 모유를 먹이지 않으니 자연히 더 이상 모유가 분비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분유를 계속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분유에는 모유에 들어있는 항체가 들어있지 않았고, 분유값이 비싸서 충분히 먹이지 못하는 엄마들이 많았던 데다가, 분유 타먹이는 방법을 잘 가르쳐주기 않아서 일부 엄마들은 강에서 퍼온 물에다 분유를 타서 먹이기도 했습니다. 결과는 뻔하고도 비참했습니다. 수천 명의 아기들이 죽어갔습니다. 많은 이들이 네슬레에 항의했지만 네슬레는 전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네슬레 불매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오랜 기간 계속되고 법정 투쟁까지 간 후에야 네슬레는 마케팅 전략을 바꾸는 데 합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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