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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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주일(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마태 16,13-19
(심흥보신부님)
어떤 사람이 성당에 와서 기도했단다. "주님, 이번에 불량 물건을 선적했는데, 걸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부족한 인간의 안타까움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지만, 참으로 주님께서도 들어줄 수 없는 기도다. 그는 오히려 주님을 자기 범죄의 공범자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나 기도했을까?
예수님께서는 오늘 제자들에게 묻는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13절) 그러자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이나 엘리야나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14)이라고 말하더라고 대답한다.
그럼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그는 어떻게 하면 현실에서 하느님을 섬길 수 있는지를 제시한, 하느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마태 14, 2-12; 마르 6, 17ㄴ-19; 루가 3, 10-14 참조).
"엘리야"는 현실적으로 이득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는 길과 신앙이 가리키는 갈림길 사이에서, 참 신앙의 길을 걷도록 한 예언자다(1열왕 18, 20-40 참조).
"예레미야"는 어떻게든 이스라엘의 패망을 막으려고 주님의 말씀을 전하며 동분서주했지만, 결국 조국이 패망하고 유배가는 것을 보아야 했던 비운의 예언자다.
그리고 "옛 예언자 중의 하나"로 거론되는 인물은 이스라엘을 에집트 노예살이에서 구출한 '모세'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을 이 예언자에 비유한 것은 모세처럼 로마의 식민지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다주리라는 정치적이고도 현실적인 메시아(구세주)관에서 비롯되었다(탈출기 참조).
베드로는 대답한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16)
주님께서는 우리의 머리 속에서 생각과 개념만으로 남아계시거나 기도할 때만 살아나시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희망과 고민을 다 아시고, 그때마다 사랑으로 우리를 찾아와 함께 아파하시면서 생생이 살아 숨쉬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할 때, 주님께서 우리 안에 진정 살아 계실 수 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세상 한 가운데 하늘나라를 만들어 가신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이런 고백을 들으며 복을 빌어주시고 교회를 맡겨주신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주님 앞에 불러 주님을 믿도록 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이웃에게 주님을 전할 때, 주님께서는 이웃에게도 믿음을 심어주신다. 그리고 우리가 전하는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은 자신에게 현세적인 이익을 가져다주는 주님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수난당하시는 주님께 대한 믿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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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성인의 통공 안에 있는 가족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