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월)
(녹)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자유게시판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스크랩 인쇄

강점수 [sooyaka] 쪽지 캡슐

2008-06-27 ㅣ No.121583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2008년 6월 29일


마태 16, 13-19.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 고백에 이어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오복음서의 이 말씀은 16세기에 개신교회가 가톨릭교회에서 분리되면서, 두 교회 사이에 많은 논쟁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생각하는 가톨릭교회는 이 복음을 인용하여 예수님이 당신 교회를 베드로 위에 세우셨다고 주장하였고, 개신 교회들은 예수님이 교회를 베드로 위에 세운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고백한 신앙 위에 세웠다고 반박하였습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이 논쟁은 필요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성서학의 발달로 오늘 복음 말씀의 해석이 과거와는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은 예수님이 직접 베드로에게 하신 약속이 아니라, 마태오복음서를 기록한 공동체가 발상하여 기록한 것이라고 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자들이 함께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교회를 세우셨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생애에 대단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생애를 회상하여 기록한 복음서들이 그 사실을 모두 언급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약속은 마태오복음서에만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들은 교회라는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습니다. 마태오복음서를 기록한 공동체는 베드로 사도에게 특별한 애착을 가졌었습니다. 그들이 복음서를 기록하는 시기에 발전하고 있는 교회를 보면서, 사도들을 초석으로 설립된 교회라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그들은 베드로를 등장시켜 오늘의 복음 말씀을 기록으로 남긴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에 사도들의 활동으로 발생한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의 삶 안에 하느님의 생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도들은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고백하면서, 예수님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사셨던 그 생명을 우리도 살아서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가까이 두셨던 열두 제자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열두 제자의 대표로 처신하신 분입니다. 바울로 사도는 고린토 사람들에게 쓴 편지에서 부활에 대해 말하면서, 예수님이 “성서 말씀대로 사흗날에 부활하시고 게파, 곧 베드로에게, 그 다음 열둘에게 나타나셨다.”(1고린 15,4-5)는 말로 베드로를 열두 사도들과 구별하여 언급합니다. 또 바울로는 그리스도 신앙으로 전향한 후 선교활동에 나서기 전에 먼저 예루살렘에 가서 베드로를 만나 보름을 함께 묵었다고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1,18). 베드로는 이렇게 사도들을 대표하는 분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 가서 활동하다가 기원 후 64년부터 68년까지 있었던 네로 황제의 박해 때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원 후 100년경에 기록된 요한복음서는 베드로가 순교한 사실을 예수님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가 젊었을 때는 스스로 허리띠를 띠고 원하는 데로 걸어다녔습니다. 그러나 늙으면 두 손을 내밀 것이요, 다른 이가 허리띠를 매어 주고는 그대가 원하지 않는 데로 데려갈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를 암시하셨다. 이 말씀을 하신 다음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시오.’ 하고 이르셨다.”(요한 21,18-19). 베드로가 순교하여 예수님을 따랐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공동체가 하는 말입니다.


로마 베드로대성전은 베드로 사도의 무덤 위에 세워졌다고 전해져 왔습니다.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교황청은 1940년부터 베드로 대성전 지하층을 발굴 조사하였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으로 그 작업은 중단되기도 하였지만, 20년이나 걸린 큰 작업이었습니다. 그 지역은 본시 로마 상류층의 무덤이었습니다. 호화스런 많은 무덤들 사이에 아주 소박한 무덤 하나가 대성전 본 제대 바로 밑에서 확인되었습니다. 그 무덤에는 옛날 순례자들이 다녀가면서 남겨 놓은 낙서들이 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낙서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베드로 사도와 함께 기억하는 바울로 사도는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 못한 분입니다. 그는 유대교 율사였고 그리스도 신앙인들을 열렬히 박해하였습니다. 그는 39년 경 다마스커스에서 극적으로 전향하였습니다. 그분이 계시지 않았으면, 그리스도 신앙은 유대 문화권을 넘어서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바울로는 당신의 친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의 한 사람으로...율법을 지키는 바리사이로서 교회를 맹렬히 박해했으며 율법에 의한 의로움에서는 흠잡을 데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에게 이익이 되었던 것을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제 내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께 대한 고귀한 인식 때문에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그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으며 쓰레기로 여깁니다.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머물기 위함입니다.”(필립 3,5-9).


바울로는 회심한 후 안티오키아를 근거지로 지중해 연안 로마제국 도시들을 세 번이나 여행하면서 선교하여 곳곳에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기원 후 58년, 예루살렘에 들렸다가 유대인들로부터 배신자로 린치 당하고 로마 군인에 의해서 구금되어 로마 총독의 관저가 있는 가이사리아에서 2년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바울로는 로마 시민권 소지자였기에 로마 황제의 재판을 요구하였고, 로마로 압송되었습니다. 그 압송과정을 기록한 것이 사도행전 27장과 28장입니다. 그 시대 지중해 연안의 여행 여건을 상세히 알려 주는 여행기록입니다. 바울로는 로마에서 2년 동안 연금되어 있다가 네로 황제의 박해 때에 역시 순교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두 분 사도는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일을 보고 그분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한 분들입니다. 그분들의 노력이 있어서 그 시대 지중해 연안 곳곳에 그리스도 신앙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교회는 그런 헌신적 섬김이 있어서 설립되고 성장하였습니다. 신자들에게 군림하고 “잔치에서는 윗자리, 회당에서는 높은 좌석 차지하기를 좋아하고”(마태 23,6), 신자들의 박수갈채나 탐하면서 교회 안에 일하는 우리들이라면, 심각하게 반성할 것을 촉구하는 오늘의 두 분 사도들입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154 1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