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월)
(녹)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자유게시판

"내가 하고자 하니 되어라" [찾으러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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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수 [tpwkdygks624] 쪽지 캡슐

2008-06-26 ㅣ No.121563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금요일 복음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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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면서 자신이 자기를 깨끗하게 할 수 없을 때가 많이 있다. 나병의 육신적 문제에 앞서서 건강한 사람에게도 육신적인 것보다 마음의 문제를 더 깊이 자기 안에 안고서 힘겹게 살아 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기도하는 삶이 자기 자신에게 억눌려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도리어 자신에게 더욱 집착되는 경우가 흔하다.
 
자신의 눈 앞에 당장 주님이 계신다면 등을 굽혀 주님에게 엎드려 사정드리며 자신의 문제들을 해결해 달라고 청하고 싶을 때가 참 많은 우리네 삶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하고 이르셨다. (마르코 9, 19)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없고 자신에게 자꾸 집중해 가다보면 도저히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다. 일순간 동안에는 평화가 온 듯이 싶어도 잠시 지나고 나면 또다시 그 자리로 다시 되돌아 와 버린다. 기도를 드렸지만 자기 머리로 생각하며 입으로 자신의 상황을 정리했을 뿐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마음 안에 불러 끌어 들인 것이다.
 
주님께서 당장 자기 눈 앞에 보이면 자기 자신을 내려 놓게 되지만 주님께서 보이시지 않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결코 내려 놓지 못한다. 자기 자신을 내려 놓지 못한다는 말은 자기 안에 자신이 가득 채워져 있다는 뜻이다. 자신이 온갖 것들을 펼쳐 내면서 주님께 해 달라고 주님까지 만들어 낸다. 그 존재 앞에서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며 자신이 머리로 정리해 가는 것이다.
 
"주님께서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라는 믿음의 고백을 실행하지 못한다. 급급한 마음에 자신이 해결의 주인이 되어져 버린다. 조용히 주님의 현존을 응시하지 못하고 자꾸 자기 안으로 자신이 점점 빠져 들어가고 채워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버려라"고 하시며 "나를 따라라"고 말씀해 주셨다. 자신을 버려야 함은 '망아'가 아니라 '무아'의 의미이다. 
 
'망아'는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소실하여 자아를 잊는 감각이고, '무아'는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간직한 채, 자아를 포기하는 의지이다. 자기를 버린다는 것은 자기의 깊은 자아를 잊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포기하는 자기 결정이다. 감각적으로 자아를 잊는 것은 얼마되지 않아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자아가 다시 밖으로 드러나 그 자리로 다시 되돌아 와 버리게 되는 것이다.
 
거짓된 자아는 감각적으로 잊으면 안된다. 거짓된 자아는 의지적으로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들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신심활동이든 거짓된 자아 속에 뿌리 내려져 있다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이다. 여기서 잠시 '거짓된 자아'의 분별의 문제가 대두하는데 '거짓된 자아'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조명하지 않고서는 그 내적인 어둠이 결코 밝혀지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빛이시며 생명의 빛이시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요한 8, 12)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에서도 "나를 따르는 이"라고 밝혀 주셨는데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에는 먼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조명하여야 한다.
 
말씀의 빛이 자기 내적인 '거짓된 자아'를 식별하게 하고 '거짓된 자아'를 감각에 의해 잊는 것(망아)이 아니라 의지적으로 버려야 하는 것(무아)이다. "따름"에는 의지적인 요소가 필연적이다. 조명된 말씀대로 실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 있는 사람들(세대)이다. 주님께 자신(거짓된 자아)을 내려 놓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그 자리로 되돌아 가지 않고 어둠 속을 걷지 않게 된다.
 
"내가 하고자 하니 되어라"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사람이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내가 하고자 하니" 라는 것 안에는 '주님께서 직접 하신다'는 의미와 '주님께서 말씀으로 하신다'는 두가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주님이 아닌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며, 도구가 없이 오로지 말씀(복음)으로 하느님 당신의 권능을 행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실로 세상에 비추어진 빛이며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빛이시다. 세상에 비추어진 빛은 어둠으로 말미암아 사라지지 않는다. 온갖 인간 고통의 문제에 비추어진 세상의 빛이다. 고통의 어둠이 짙다면 그 빛은 더욱 빛이 발하시어 우리를 영의 죽음에 들지 않게 하시고(꺼지지 않고) 생명의 빛으로 어둠 속에서 구해 내신다. "고통이 오면 더한 고통을 원하고 더한 고통이 오면 아예 죽음을 달라고 하라" (오웅진 신부님) 그리스도 때문에 자기가 죽으면 다시 살게 되는 것이다. (요한 12,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마태오 16, 25) 여기서도 자기를 버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나 때문에"라는 말씀이 있으시다. '그리스도를 따름'이다는 뜻이다. 자기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주님께 대한 사랑은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와 같다. 양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양(벗)을 어둠 속에 내버려 두지 않고 찾으려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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