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파견성가를 부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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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미사 파견성가로 통일의 노래를 불렀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토옹~일~ 이 나라 살리는 토옹일...” 한참 노래를 부르다 말고 나는 입을 닫았다.
입발림으로 노래를 하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신부님 강론말씀이 생각났다. “남태평양 어느 섬에 2차대전 때 미군과 일본군으로 총부리를 맞대고 서로 싸웠던 노병들이 각각 그곳에서 전사한 전우들을 위해 추모제를 지내고 그때 총을 겨누었던 적들이 서로 만나 악수를 나누는 사진을 본 감흥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는 말씀이셨다. 참으로 순진한 분이시다.
만약에 그 장면에 오버렙하여 6.25때 백마고지에서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던 국군과 인민군 출신 노병들이 백마고지에서 그런 식으로 서로 추모제를 지내고 양측이 손을 부여잡는다고 가정해 보라. 그 그림이 어울리겠는가? 참으로 어색하지 않겠는가? 남이 그러는 것은 감동이고 우리가 겪은 일은 어딘가 어색하다? 그게 바로 오늘 우리가 느끼는 현실이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6.25의 노래를 부르는 그 입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하며 통일을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본당 안에서도 통일이 안 되는 판에 우리가 무슨 재간으로 통일을 한다고 그러는가? 시청 앞에 한 번 나가보라. 통일? 참말로 웃기는 꿈이라는 것을 금세 알게 될 것이다.
북한 땅을 3차례나 밟아 보았다. 금강산이며 묘향산, 심지어 평양에도 가 보았다. 그곳에서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에서, 마카오에서 조선족이 아닌 북한 김일성 배지를 가슴에 단 북한사람들을 수 없이 만났다. 그들 입에서도 우리처럼 “통일 그거 하루라도 빨리 해야지요.” 한다. 아니 우리보다 열배 백배, 입에 거품을 물 정도로 통일이란 말에 그들이 더욱 열을 올린다. 그러나 그들이 진실로 우리가 바라는 자유통일을 원하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 또한 우리처럼 입에 익은 입발림 구호일 뿐이다. “하루라도 빨리 외세를 몰아내고 우리끼리 통일하자” 말은 참 그럴 듯 하다. 하지만 통일을 했다고 가정하자. 금강산댐이 무너져 평화의 댐을 덮치고 그게 또 무너져 서울이 물바다가 되듯 북한주민들이 한꺼번에 몰려왔을 때 그 혼란을 우리사회가 어찌 감당할 것인가? 저임금의 북한 노동력이 홍수처럼 밀려들어오게 되면 서울거리에는 실업자가 득시글거릴 것이고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원화가치는 곤두박질 칠 것이고....상상만 해도 아찔하지 않은가?
그러기 전에 먼저 우선 북한사람들을 가까이 만나 보라. 아무리 측은지심으로 그들을 덮어주고 또 따뜻이 안아보려고 해도 당장 벽이 느껴질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며 한계이다. 반세기 이상 길들여진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스런 부하들일 뿐 그들에게서 인간미를 기대했다간 오히려 더 상처를 받게 될 것이 뻔하다. 제발 통일을 낭만처럼 쉽게 생각하지 마라. 통일은 반드시 꿈이 아니라 현실로서 생각해야한다. 새터민들조차도 백안시하는 우리들이 어찌 그 복제품 같은 북한사람들을 끌어안고 통일을 하겠다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하는가?
통일은 50년 아니 100년이 지난 다음에야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총부리를 겨누었던 당사자들이 먼저 세상을 하직하고, 6.25 전란을 겪은 세대마저도 세상을 떠난 후에, 또 반공교육이나 주체사상교육을 받은 세대들까지 모두 없어져야만 그때 가서나 통일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앞으로 더 이상은 서로의 감정을 자극하는 일이 없어야만 그나마도 바래볼 희망이라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근래에 와서 다문화 가정이 늘고 주위에 외국인들이 흔하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은 세상 그 어느 나라보다도 외국사람을 백안시하는 나라 중 하나이다. 더구나 피부색이 검은 사람이나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 사람들에 대한 편견은 다른 나라에 가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나라 사람들에게서 받는 소외감이나 이질감에 비해 월등히 심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초부터 신라 백제 고구려로 쪼개져 있었던 민족이 하나가 되어서 그런 것일까 우리 민족의 DNA에는 파벌을 일삼는 유전자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왜 그리 편을 못 갈라서 안달들을 하는지 모르겠다. 가운데 서있으면 회색분자나 기회주의자로 취급받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니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나보다 못 살거나 못 배웠거나 약한 사람에게는 더없이 교만하고 나보다 강하고 센 사람, 잘사는 사람들한테는 기가 죽는 것이 한국인 기질이다. 외식을 해야만 대접받는 것 같고, 외제이어야만 좋은 물건 같고, 우리국악은 촌놈 취급하면서 외국문화는 저질문화조차도 앞서가는 것으로 여겨 얼른 받아들인다. 그것이 우리가 아니던가?
제발 이제는 통일 노래도 6.25 노래도 부르지 말자. 농부가 씨를 뿌리기 위해 묵묵히 밭을 갈 듯이 통일이란 열매를 거두기 위해 땅부터 갈자. 정부는 북과의 소통을 위해 퍼주기라는 비난을 안 받을 정도로만 북을 도와주고 민간끼리 소통하는 것을 사안별로 지원함이 바람직하다. 저들의 존재가치인 자존심을 건드리려면 차라리 안 도와주는 것이 낫다. 얻어먹으면서도 양양거린다고 주체사상이라는 의식교육 속에 뿌리내린 저들의 자존심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북한사람들은 북한사람들의 눈높이로 보아야지 우리 눈높이로 봐서는 이해가 안 간다. 바로 그러한 눈높이 맞추기부터 하면서 서로 간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야말로 통일의 밭을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용서와 화해의 싹이 트는 것은 그 다음,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일어날 일이다.
결론은 하나다. 먼저 저들이 변하기 전에 우리국민의 의식구조부터 먼저 변해야 한다. 편견을 버리고, 서로가 다름을 인정해주는 자각이 먼저이다. 상대의 눈높이에서 나를 바라봄으로서 역지사지,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 바로 그와 같은 의미에서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같은 노래부터 이제 그만 치우자. 이제는 전쟁의 상흔을 우리가슴에서 애써 지우자는 것이다.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 내리” 그런 증오를 거두자는 말이다. 그렇다고 호국영령들에 대한 추모의 마음마저 지우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린 그분들을 기리는 행사는 더욱더 성대히 치러야 하고 예우는 국가에서 더욱더 융숭히 해 드리는 게 당연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그 노래도 이제 그만 치우자. 입발림하지 말고 우리끼리의 통일이라도 이루려고 노력해 보자는 말이다. 해방 후 좌우익 편 갈라서 싸우듯이 보수와 진보가 각목과 파이프로 서로에게 난동을 부리는 2008년 6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내 입으로 통일노래를 차마 부를 수가 없었다.(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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