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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3차) 천호동성당 건축에 대한 소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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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열 [kangsyl] 쪽지 캡슐

2008-06-23 ㅣ No.121504

** (제13차) 천호동 성당 건축에 대한 소견 **

왜 천호동 성당 선조신앙인들은 미래를 예측한 듯 그렇게 많은 부지확보에 온 정성을 들였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묵상과 선조신앙인들께 머리 숙여 깊은 절과 기도를 바친다.

현재의 추진이 과연 100년 이상의 미래를 내다보고 신축하는 것일까 하는 묵상에 빠져보면 새로 개척되는 성당이 아니기에 선조신앙인들의 주님께 대한 고우시고 거룩하셨던 모습이 생생하게 비추어져 선조신앙인들의 그 열정과 정성에 고개 숙여 죄송함 밖에는 없는 것이다. 더욱이 현재의 추진이 과연 미래를 내다보는 재건축일까 하는 물음에는 더욱 고개가 숙여진다. 죄송하기가 그지없다.

이런 마당에 하필 물가인상으로 건축비가 대폭 상향된 시기이니 더욱 죄송한 것이다. 천정부지로 올라만 가는 건축자재 값은 가변성이 많아 제대로 된 건축공사단가조차도 명세하기가 여간 어려운 실정이 아니다. 시공도급단가약정서의 조항 하나하나가 정교함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기이다.

해당구청을 방문해 설계 도서를 열람해보니 B1 3,691.16㎡(주차장(99대), 기계실, 전기실), 1F 1,828.44㎡(연회실, 폐백실, 성체조배실), 2F 1,645.91㎡(만남의 방, 사제, 수녀원), 3F 1,571.66㎡(본당, 사제관, 수녀원), 4F 434.21㎡(본당)으로 평수로 풀이하면 총건평이 약 2,731.18평으로 확인이 된다. 약 3천 평의 대지로서는 너무 작은 작품으로 한심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본당의 건물 중에 지방도 경계 앞에 5층 유치원 건물이 있다. 본당에서 미숙한 판단으로 일부를 매각했지만 이 건물에 적용되는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관리단을 구성 해당소유주들과 의결이 된다면 최소 지하2층을 건축할 수가 있으므로 지하주차장을 지방도 수평에 맞추어 사용할 수가 있으며, 현재의 입구를 주차장 출입구로 천일초교 방향의 축대방향 빈 공간을 인도의 출입구로 사용할 수가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검토 작업이 없어 보인다. 소유주 중에서는 지상 3층부터 5층까지 각 면적대비 건물면적지분과 공유대지지분권이 본당 측이 많으므로 의결권 즉 구분소유자(頭數) 및 의결권(두수의 해당지분율)이 크기에 언제든지 이를 관철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지적에 대하여 단 한번이라도 부딪친 적이 있으면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 한다 없었다면 왜 없었는지 해명을 해야 될 것이다.

이 사항을 추진하면 법적주차대수가 200대 이상 확보가 되며 미래 앞 건물을 매입하여 다른 용도로 사용해도 지상층 주차대수와 합치면 약250대가 가능 한 것이다. 99대가 왠 말인지 정말 슬프다.

이렇게까지 지혜를 청원해도 못 알아듣는다면 이거야 말로 밀실과 전시행정과 치적과 아집과 고집과 집착의 산물이므로 향후 이런 과실의 잘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 될 것이다.

이렇게까지 청원해도 검토가 안 된다면 똑똑한 봉사자들 입장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성찰을 해야 되는 것이다. 과연 자신이 봉사자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얼굴이 철판이 아니고서는 빨개져야 정상인 것이다. 철판이면 왜 철판인지 해명이 필연이고 말이다.

소인은 성당건축에 대하여 반대를 한 적이 없다.

성격 상 투명하다고 판단되면 누가 오해를 하더라도 앞장서 미력한 힘이나마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다. 그렇다고 봉사자로 임하겠다는 뜻은 아니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봉사자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적소에 맞는 훌륭한 봉사자들이 주위를 보면 많다. 소인이 봐도 저분 정도면 괜찮겠다하는 교우들이 이웃에 많다.

허나 추천을 하라고 해 추천을 하면 추천된 분의 의중하고는 전혀 상관없이 그 분을 의심부터 해버리는 사고와 행동이 난무하니 앞으로 공동체가 풀어야 할 큰 숙제이다.

소인이야 봉사자에 애시 당초 생각이 없었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도 하고 싶은 자들의 일방적인 지렛대 모함으로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그 정도는 하느님백성의 성당으로서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의 미래의 건축이라면 인내해야 되지 않겠나하는 생각이다.

제일 큰 문제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망각하고 있다는데 있는 것이다. 자신의 위치와 욕심, 야망에 상대방이 걸림돌이 된다면 사정없이 사목 자에게 자신의 표현을 일방적으로 제삼자를 지렛대삼아 들먹거리며 관철하려고 인신공격을 해대니 사목 자는 이를 분별하기에 애로사항이 많은 것이다. 특히 교우들 만남을 스토커 식으로 체크하고 다니는 모습은 극에 달할 정도이다.

사회생활을 비교하면 안 되겠지만 성당건축에 누구보다도 투명하게 추진될 시간에 업자들과 술을 먹었다면 이미 사형선고가 된 것이다. 이를 반성하지 않는 것도 성당의 특성인가보다 왜냐면 더 목에 힘이 들어가 있으니 말이다. 초저녁부터 새벽 3시까지의 술시간이 호프 한잔이라....., 먹은 다음 신이 나서 표현들 하다가 이를 지적하니 이제 추잡하게 변명하는 표현들이다. 먹은 것은 사실이 아닌가 말이다. 먹었으면 먹었다고 공식사과하고 용서를 청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업자 선정전에 업자하고 술 먹은 분들은 스스로 자진해서 반드시 밝혀야 한다. 그래야 오해가 해소된다. 신앙의 아름다움이 영원할 것이니 말이다. 여기서부터 출발한 신축추진의 잘못이 가시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회 같으면 벌써 이런 잘못된 행위는 지탄받고 처벌받고도 남을 일이다. 그런데 신앙을 가장한 합리화의 얄팍한 행동들은 너무 잘못된 것이다. 다른 성당에서도 건축 추진을 하며는 사전에 업자들과 어울려 술을 먹는가요?

미안하고 죄송스러워야 할 이 사건에 대하여 떳떳함으로의 은폐는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공과 사가 구분되어야 된다는 것이다. 주님의 가르침 중에는 “적당히” 가 없으시기에 더욱 그렇다고 주장한다. 세속의 체면보다는 진솔함이 우선이 아닌가 말이다. 이걸 은폐하려니 점점 직언하시는 분들을 의심 속으로 네 모는 것이다. 무능이 용감하다는 말이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성당도 그러 한지 모르겠지만 죽을 때 호주머니 있는 수의를 입고가려고 그러나 사목회 임원과 추진위 임원감투에 혈안이 되어 죽고살기로 일방적으로 추천되는 교우들을 마구 씹어 되며 혈투하는 모습은 가관이다. 특히 사목회장과 추진위원장과 추진봉사자 직책에 대해서는 죽고살기로 공동체가 죽던 말든 상관없이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채우려는 자들로 공동체의 시끄러움은 더욱 가관인 것이다. 한 심한 노릇이다. 사목 자는 분별력이 없어 보인다. 이러니 시끄러운 것이다. 그런데 변명은 근사하다 나는 하기 싫은데 신부님 때문에 그렇단다. 인사가 만사인 것이다.

직언 자가 없는 현실이 슬프다. 사목 자 앞에서는 기생오라비 같은 행동들이고 뒤돌아서서는 불평불만의 꽃을 피우니 말이다. 모두에게 잘 보이는 것은 좋은 것이다. 공동체는 모두가 그래야 될 것이다. 허나 모두가 하모니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사목 자에게 직언을 드려 공동체가 함께 갈 수 있는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것이다.

2008, 0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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