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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리오 신심회"를 설립한 이야기...1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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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한 로사리오 신심회”를 설립하여
안광용(요한)형제님께서 로사리오 가입문의에 관한 글을 굿뉴스 자유게시판에 올려놓으셨습니다. 제가 그 일에 관여한 바 있기에 아는 대로 올려드리고자 하며, 이 글을 보시는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18년 전 (1990년 1월경) 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 1. 서언
Pr단장을 할 때이다. 교본을 보면서 느낀 점이지만, 교본에는 “레지오 활동단원은 반드시 지극히 거룩한 로사리오회에 가입하여야 한다.” 라고 나와 있다. 교본 전체를 통틀어서 그것도 네 번씩이나 강조한다. 그리고 부록에도 잘 나타나 있다.
로사리오 회(the Confraternity the Most Holy Rosary)에 가입하는 회원들은 묵주기도만을 성모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수고와 고통과 기도로 쌓은 공로까지도 성모님께 드린다.
로사리오 회는 1470년 도미니코 회원인 알랭 드 라로쉬가 설립하였다. 따라서 도미니코 회 가족들은 묵주기도를 널리 펴는 특별한 책임을 맡고 있기 때문에, 이 회에 가입하게 되면 도미니코 수도회의 영적 은혜를 나누어 갖게 되는 것이다.
로사리오 회원으로 가입하려면 로사리오 회가 설립되어 있는 교회의 회원 명부에 입회자의 이름을 등록해야 한다. 회원에게 주어지는 수많은 대사와 특전을 누리려면, 기도 중에 각 단의 신비를 각자가 할 수 있는 한 충실하게 묵상해야 한다.
로사리오 회원이 되면 엄청 많은 혜택을 누린다. 너무도 많은 은총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신앙인이고 아울러 기도는 늘 함께 해야 되지 않겠는가? 회원으로 가입만 하게 되면 “꿩 먹고 알 먹고” 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로사리오 회”에 관심을 두고서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아직 우리나라에는 로사리오 회가 없었다. 물론 옛날에는 매괴회가 있었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신부님들께서 로마에 유학을 다녀오신 후 당신들이 직접 설립을 하신 단계의 수준이었고, 정식으로 도미니코 수도회가 들어와서 생겨난 로사리오 회는 없었던 것이다.
세나뚜스 본부에 “지극히 거룩한 로사리오 신심회”를 설립하여 라는 제목으로 원고를 제출하였다. 방대한 자료였지만 세나뚜스에서는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원고를 정리하여 레지오 마리애(1992년 1월호)월보에 게재하였다. 그럼에도 5쪽이나 할애를 해준 세나뚜스가 고마웠다. 게재된 글을 약간 수정을 하여 이곳 게시판에 올린다.
2. 성 도미니코 선교수련원 풍경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갈풍리 산9번지 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수련원을 찾아 간 것이 지난 4월(1991년) 마지막 주 수요일이었다. 오전 10시경 서울을 출발하여 산뜻한 시골 내를 맡으며 횡성에 도착한 시각이 열두시 반경이었다. 그곳 읍내에서 길을 물어 찾아가니 너무나 조용하고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 쪼이는 아래 스페인풍의 멋들어진 건물이 나타났다.
그곳에 찾아가게 된 것은 그날 오후 두시에 “로사리오 신심회” 입회선서를 하는 회원이 10여명 있다는 수련원의 이야기를 듣고 입회선서와 허가절차, 전례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곳 선교수녀회 수련원은 아담한 수련원내 성당이 있고, 이웃 마을의 여러 공소들의 신자들이 그곳으로 미사에 참례하기 위하여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입회선서는 미사 중에 이루어졌으며 각자가 든 초를 제대 앞에 봉헌하고 축성된 로사리오를 하사받았다. 그렇게 함으로서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회원이 되신 것이다.
미사가 끝난 후 수도원 ‘피정의 집’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고급 호텔 수준의 건물에 화려하지 않으면서 우아하고 품위 있는 내부시설물, 건물 주변의 숲속으로 이어지는 십자가의 길, 조용한 시골 산속의 공기 맑고 푸르른 경치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오게 된 것은 1984년도이다. 당시 이곳 수녀회의 수련장인 서 에스페란사 마리아 수녀님의 지도로 2년 전(1989년)에 “지극히 거룩한 로사리오 신심회”가 설립되어졌다. 초대회장으로 이경하(요셉:1994년경 선종)회장님께서 운영을 해 오면서 회원은 80여명이 되었으며 거의가 노인 분들이다.
그곳의 회원들 구성은 횡성을 중심으로 한 10여 군데 공소 신자들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항상 마음속에 품어온 생각이 ‘예전에는 매괴회라는 신심단체가 있었는데 지금은 왜 없는가?’였다. 레지오 교본에 “로사리오 신심회”에 관해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말이다.
특히 단원들이 이 신심회에 가입하면 커다란 대사의 은총을 많이 받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함에도 우리 단원들이 로사리오 회에 관해 무심코 지나쳐 버린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모님=로사리오=레지오 단원”이라는 등식을 생각해보면, 많은 신자들이 기도를 많이 하면서도 정작 그 좋은 대사의 은총을 받는 이 신심회에 관심이 없다는 데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세나뚜스에서 재작년(1989년 세계성체대회 때임)에 민족복음화 운동과 신자 300만 배가운동으로 로사리오기도를 적극적으로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주 회합 때마다 단원들로부터 로사리오기도 보고를 들으면서도 “로사리오 신심회”에 관한 생각이 지워지질 않아 적극 찾아보기로 하였다.
3. 지금부터 자료수집하며 즐거운 고생길
그래서 미아리 신일고등학교 건너에 있는 성 도미니코 선교수녀원(전화 989-1882)을 찾아가 서 에스페란사 마리아 원장수녀님을 만나 “로사리오 신심회”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수녀님의 말씀이 이 신심회는 본당차원에서는 우리나라에 아직 한군데도 없다고 하였다. 이때가 지난해 1월 말경(1991년)이었는데, 원장수녀님은 로사리오 회에 관한 자료를 주면서 강원도 횡성에 계시는 이 요셉 회장님과 성 도미니코 수도회의 “지극히 거룩한 로사리오 신심회” 지도신부 사 야고보 신부님을 소개해 주었다.
사 야고보 신부님은 스페인 분으로서 성 도미니코 수도회 로마관구로부터 작년(1991년)에 우리나라에 파견되어 오신 분이다. 당시에는 거처할 집이 없어서 정동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프란치스칸과 같이 생활하셨다.
<계속 이어짐>
. Sanctus II - Libera Boy''''s Choi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