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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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부류의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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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직 [juila12kr] 쪽지 캡슐

2000-10-10 ㅣ No.14458

 

 일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군요. 함께 봉사하시는 분의 남편이 출근하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앞서 가던 차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할머니를 치고 그대로 달아나 버리는 바람에 뒤따라 가던  형제님이 내려서 그 할머니를 도와주다 뒤에서 달려오는 차에 같이 치여버린 매우 불행한 사고였지요.

 형제님은 머리를 크게 다쳐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환자의 상태가 워낙 나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자매님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본당 신부님께 병자성사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상식적으로 잘 납득이 가지 않는 지극히 바리사이파적인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 자매님은 강남에서 가까운 신도시에 살고 있었고 그가 다니는 신도시의 본당은 서울 교구가 아닌 다른 교구였습니다. 그런데 그 본당 신부님 말씀이 입원해 있는 곳이 서울이므로 타 교구 본당 사제인 당신은 병자성사를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러한 교회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있다면 그건 악법이 아닐까요?)

 다급해진 자매님은 우리가 봉사하고 있던 병원의 원목 신부님께 도움을 요청했고 원목 신부님은 성사뿐 아니라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절차와 여러가지 도움말을 해 주셨습니다.

 두 달후 형제님이 돌아가셨습니다. 한 번 거절을 당했지만 자매님은 그래도 장례미사를 부탁할 곳이란 자신의 본당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말씀드렸으나 역시 결과는 No.

 아니 이번에는 엄밀히 말하면 본당에서의 미사는 허락하셨으나 장지가 너무 멀어 아주 이른 새벽에 출발해야 되고 본당에 들릴 시간이 부족하므로 죄송하지만 병원에서의 미사를 부탁드렸거든요. 정 미사가 불가능하다면 사도예절이라도 괜찮다고 말입니다. 역시 먼젓번과 같은 이유로 인한 거절이었습니다.

 결국 입원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본당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형제님은 운명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또 원목 신부님께 부탁드렸는데 그 신부님은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고, 사도예절은 무슨 사도예절이냐고 나무라시면서 흔쾌히 그 이른 새벽에 병원까지 오셔서 장례미사를 집전해 주셨습니다.

 신부님은 또 추운 날씨에 경황이 없이 떨고 있는 자매님을 보시고 당신의 목도리를 벗어서 씌워 주라고 하실 때에는 우리 모두는 감동,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자신이 맡고 있는 본당 신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그렇게 간절히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관할 구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끝까지 외면하신 신부님과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당신의 도움을 요청하는 신자에게 기꺼이 응해 주시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해 주신 원목 신부님.

 한 신부님으로 인해 분개했고 한 신부님으로 인해 행복했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원목 신부님을 영원한 오빠(?)로 삼았고 열렬한 팬이 되어 무조건적인 존경을 보내기 시작했답니다.(물론 신부님은 이 사실을 전혀 모릅니다.)

 

영원한 우리의 오빠, 지 영현 시몬 신부님!!

성인 신부님 되시길 기도드리구요, 우리 모두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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