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자기 고백性 넋두리 한 번 쏟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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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민 [yongpal08] 쪽지 캡슐

2012-04-14 ㅣ No.620


그냥 넋두리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철저히 두서없는’ 넋두리입니다. 부디 혜량해 주세요.

 


제주 해군기지 문제로 다툼 아닌 다툼이 있는 건 고무적으로 봅니다.

엄연히 토론방이고, 또 반대와 찬성이 상충하는 가운데 뭐든지 발전하고 진화하는 것일 테니까요.

 

찬성하는 분들도 신앙에 입각한 그 어떤 진정성이 분명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만,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는 건 어느 때인지 아십니까?

 

토론을 위한다면, 그리고 신앙인이라는 이름으로 논리를 펼치고자 한다면

첫째, 그 어떤 명분보다도 ‘측은지심(예수님의 聖心과 같은 동정심)’ 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둘째, 주제를 벗어난 ‘물 타기’ 는 없어야 하고

셋째, 치고 빠지는 비겁함은 없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그렇게 어렵게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찌든 가난이나 배고픔도 경험하지 못했구요, 50대의 제 동창들이 겪었던 생활고를 겪은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대학 시절, 달동네 야학교 자원봉사 교사 노릇을 하면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 민초들의 고통을 접했기에

그 충격의 단상들을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80년대 초, 그 당시에 세상사에 눈 감는 것은 사나이가 아니었고, 젊은이가 아니었고 신앙인이 아니었죠...


최루탄 가스를 마시며 열정적으로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수배도 당했습니다.

경찰 곤봉에 등짝을 부스러지게 맞고 숨어 지내는 고통스런 나날 속에서 하느님과의 깊은 만남이 시작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운 좋게도 경찰관 출신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감옥행만은 모면한 의리 없는(?) 투사였고 그 ‘작은 참여’

들로는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기엔 너무도 역부족인, 스스로를 역겨운 ‘부르죠아’적 인물로 느끼는 사람입니다.



대학가요제에도 나가기도 한 밝고 자유분방함의 예능기가 다분했던, 하나밖에 없는 제 여동생은 수녀입니다.

대학 2학년인 제 아들은 여전히 ‘사제 성소’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제 선친은 6.25때 북한군의 총검에 의해서 장해를 입은 국가유공자입니다.

지금 경북 영천의 국립묘지에 묻혀계시죠. 25년간의 경찰관 생활, 8년간의 농협 조합장을 역임하신 지극히 보편적인

右派셨다고나 할까요...

(첨언합니다)

저는 물론 30개월 6일간의 국방의 의무를 다한  예비역이고요,

고향은 경남 통영입니다. 소위 ‘갱상도 보리 문둥이’ 출신이죠.

어머니 고향은 통영 앞바다의 섬마을입니다.

.................


어릴 때 경찰관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경비정을 타고 외가에 많이 들렀지요.

참으로 아름답고 때 묻지 않은 바다가 좋았습니다.

언제든 찾아가면 나를 반겼던 시퍼런 파래의 群舞, 걸음걸이가 귀여운 게와 고동의 재롱, 투명한 바다 속에서 입을

날름거리는 굴들의 하품 사위...


어느 순간 점점 변해갔습니다.

한 해가 지나면 연육교가 생겨서 다방이 생기고, 당구장이 생기고, 횟집이 생기고, 노래방이 생기고 단란주점이 생기

고, 모텔이 생기고...

첨엔 다들 좋아했고 기대했습니다.

다리가 놓이게 되고 개발이 진행되니, 이젠 ‘경제발전’ 속에서 모두가 행복할거라고요...

 
굳이 가장먼저 예를 들자면

제주도가 그렇듯, 이 나라 천혜의 땅들은 몇몇 가진 자들이 '소유의 싹쓸이‘ 를 진행하고 있지요.

그 곳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육지의 소수 자본가들이 어느새 섬마을 곳곳을 장악했고 그들의 의도대로 개발은 착착

진행되었습니다.

 ...................................

지금

그곳 섬마을 분들, 대부분 행복해하지 않습니다. 소수의 부자 지주들 외에는요.

그리고 말들 합니다.

관광지화 된 섬을 뒤덮어 가고 있는 끝없는 쓰레기들과 점점 삭막해져가는 이웃과의 斷情을 접하고선 말입니다.

“아, 아 정말 옛날이 그리워... 세상이 너무 메말라져가...예전엔 물고기도 고동도 파래도 굴도 참 많이 나고 맛있었는

데...”


심지어는 개발에 앞장섰던 그 졸부들도 고향을 찾아온 아들 딸 손자들에게 말합니다.

“세상이 너무 변했어, 뭐든 옛날 맛이 안나...음식도, 사는 情도, 동네 운치도...세상 말세야!”


매년 그 섬마을을 갈 때마다 너무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추억들을 앗아가는 그 야속하고 무참한 ‘개발’ 의 진행 때문에요... 

물론 무조건적인 개발 반대론자는 아닙니다. 그래서도 아니 되고요.

그곳은 모든 과정이 합법적(주민들의 자발적 의지 +적법한 행정 절차)으로 진행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비롯한

그곳의 많은 원주민들은 후회와 아쉬움의 가슴앓이는 짙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제 모친의 고향 섬마을만 제일 아름다운 해변인 줄 알았습니다.

4~5년 전부터 수차례 출장을 가서 접한 제주 해변, 특히 강정마을의 바닷가는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정말 이곳만은,

이 제주도만은 지키고 싶었습니다.

정말 아무런 정치적인 생각도, 이념 같은 것에 관련지을 이유도 없었습니다.



어느 순간,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너무도 가슴 아팠지만, 다수 주민들의 의견이라 하니 어쩌겠습니까... 그저 안타까움의 기도만 올렸습니다.


설사, 모든 것이 합리적이고 순리대로 진행 되었다고 해도

아니, 단 두세 명의 반대자만 있다 해도

우리는 그들의 아픔에 동참해 줘야 하는 것 아닐까요? 신앙인으로서 말입니다.

여기서 정부와 해군, 삼성 등의 용서하기 힘든 불법, 편법, 야만적 진행과정에 관한 것은 생략하겠습니다.

우리는 신앙인 아닙니까? 모든 것 제쳐두고 ‘측은지심’ 정도는 가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저는 진심으로 말합니다.

아무런 명분도 없이,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단 몇 명의 어떤 비양심적 '범법자 무리들‘이 있다고 해도

그들이 만약 합리적이지 못하고 비인간적인 절차에 의해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면

일단 먼저 측은지심, 동정심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침을 뱉거나 비아냥거리진 않을 것 같습니다.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의 글들을 보니 소외되고 고통 받는 자, 보잘 것 없는 자들에 대한 사랑과 측은지심이 단 한 줄에서

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로지 비아냥거립니다. 오로지 찬성의 당위성만 외칩니다. 신앙을 떠나 정말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정이라는 걸 지

니고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나고 그래서 실망스럽습니다.

 

 주제를 벗어난 ‘물 타기’ 논리는 정말 지겹기도 하고 역겹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북, 친중 ,좌빨’...

지금 도대체 어느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 민족이 우선입니다.

민족애와 국가 이익 앞에서는 친미도 친중도 친러도 친일도 전략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친미도 우리 국민을 위해서 해야 되고 친중도 우리 국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제주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분들이 미국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을 비난 했습니까?

미국의 힘이나 미국의 필요성을 부인 했습니까?

그나마 이만한 ‘자유’를 누리기까지, 그 암울했던 시대에 최루탄 가스와 무시무시한 불법 공권력에 맞서서 단 한 번

도 투쟁에 동참하지 않았던 방관자들에게 그 누가 욕설을 남발한 적 있습니까?


몇몇 분들의 논리에 의하면, 제주 해군 기지를 반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는 ‘빨갱이’가 되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신앙인 이면서도 이토록 불균형적 사고의 소유자가 늘어난다면

국립 호국원에 계신 제 선친의 묘소를 기꺼이 이장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강정마을에서 폭언과 폭행 속에서도 기도에 동참했던 마음 여린 제 빨갱이 동생수녀를 환속시키고 싶은 심정입니

다.

제 아들의 사제성소는 영원히 포기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신앙의 길이 도저히 감당키 어려울 정도로 고단함의 연속일 것 같아서 입니다...

 



물 타기 하지 맙시다.

본질에 대해서만 논하고 사상 이야기 그리고 신부님에 대한 망언만은 제발 남발하지 맙시다...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분들 중에, 동참하지 않는 보수적인 사제에게 막말하는 경우를 보진 못했습니다.

찬성론자 전체의 이미지를 위해서도 스스로 억제해 주세요.

 


치고 빠지는 비겁한 짓 하지 맙시다.

자기 할 말만 하고

논리에 한계가 오면 모른 척 시치미 혹은 화제를 돌리는 미꾸라지 행태,

토론을 하자면서 자신의 주장만 펼쳐놓고 상대의 댓글은 차단하는, 참으로 비양심적인 짓은 하지 맙시다. 정중히 요

청 드립니다.

 

나는 격투기라는 운동을 좋아합니다.

경찰관 이셨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유치원 시절부터 체육관에서 복싱을 배웠었죠.

그 이후로도 지금껏 격투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MMA(이종격투기)에 푹 빠져있죠.

링에 올라가면요. 사람 별거 아니라는 걸 느낍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 라는 철저한 본능 속에서

용감해지기도 하고 순수해 지기도 하고 겸손해 지기도 합니다.

신앙이고 뭐고 필요 없습니다. 정직해 집니다.

땀 흘리고 쓰러질 때까지 그저 끝까지 사력을 다하다가 패배가 인정되면 깨끗이 탭을 칩니다. 그리고 승자에게 기꺼

이 축하를 건넵니다. 특히 최선을 다한 ‘페어 플레이’ 끝 에서는요 . 어느 누구도 패자를 비난하진 안습니다. 박수를

보내지요.

스타일은 다르겠죠. 인파이터형도 있고 아웃 파이트형도 있으니까.

그러나 ‘링’에 올라간 이상 실컷 꽁무니만 빼다가 펀치 한 방 내뻗지 않고 링 밖으로 도망가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것은 패배 이상의, 선수로서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버리는 일이니까요.

특히 링은 모든 사람들이 관망하는 공개된 공간이기에 더욱 그렇겠죠...

“골방에 있더라도 네거리에 있듯 하여라”

공자님의 말씀을 떠올리지 않아도...

 

신앙을 떠나서요,

사람이라면, 아니 그보다 먼저 남자라면 야비한 행동은 안해야겠죠.

온 가족, 아니 온 교우들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토론합시다.

 

끝으로 제안합니다.

정말 이러한 솔직함, 정직함으로 토론할 의지가 있다면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신상을 정확히 밝힙시다.

최소한 소속 본당만이라도요.

 
그래서 내 가족과 내 지인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토론 한 번 해봄직 하지 않습니까?


특히 홍()()님, 박()()님 어떻습니까?(실명을 거론하면 실례가 될까봐 괄호를 쳤습니다. 본인들은 아실겁니다.)

 
거부하는 건 어쩔 도리가 없겠으나

앞으로 또 계속 일방적인 막말이나 폭언, 주제와 논리에 벗어난 비하 발언을 행하신다면...

나는 문()()님, 박()석님등과 같은 인내심이나 정중함만을 계속 간직하진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무작정 쓰고보니 다소 겸연쩍어지는, 장문의 넋두리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지고 보면

하느님 앞에선 모두가 도토리 키 재기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비열하고 뻔뻔한 짓은 더 이상 서로 맙시다.

 

경박하고 적절치 못한 표현이 있었다면 양해 바라오나

제 素意만은 헤아려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 졸필을 접한 모든 분께 하느님의 자비가 함께 하시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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