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고백性 넋두리 한 번 쏟아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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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넋두리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철저히 두서없는’ 넋두리입니다. 부디 혜량해 주세요.
엄연히 토론방이고, 또 반대와 찬성이 상충하는 가운데 뭐든지 발전하고 진화하는 것일 테니까요.
찬성하는 분들도 신앙에 입각한 그 어떤 진정성이 분명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만,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는 건 어느 때인지 아십니까?
토론을 위한다면, 그리고 신앙인이라는 이름으로 논리를 펼치고자 한다면 첫째, 그 어떤 명분보다도 ‘측은지심(예수님의 聖心과 같은 동정심)’ 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둘째, 주제를 벗어난 ‘물 타기’ 는 없어야 하고 셋째, 치고 빠지는 비겁함은 없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그렇게 어렵게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80년대 초, 그 당시에 세상사에 눈 감는 것은 사나이가 아니었고, 젊은이가 아니었고 신앙인이 아니었죠...
그러나 저는 운 좋게도 경찰관 출신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감옥행만은 모면한 의리 없는(?) 투사였고 그 ‘작은 참여’ .................
그 곳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육지의 소수 자본가들이 어느새 섬마을 곳곳을 장악했고 그들의 의도대로 개발은 착착 ................................... 지금 그곳 섬마을 분들, 대부분 행복해하지 않습니다. 소수의 부자 지주들 외에는요. 그리고 말들 합니다. 관광지화 된 섬을 뒤덮어 가고 있는 끝없는 쓰레기들과 점점 삭막해져가는 이웃과의 斷情을 접하고선 말입니다. “아, 아 정말 옛날이 그리워... 세상이 너무 메말라져가...예전엔 물고기도 고동도 파래도 굴도 참 많이 나고 맛있었는
“세상이 너무 변했어, 뭐든 옛날 맛이 안나...음식도, 사는 情도, 동네 운치도...세상 말세야!” 눈물이 났습니다. 추억들을 앗아가는 그 야속하고 무참한 ‘개발’ 의 진행 때문에요... 그곳은 모든 과정이 합법적(주민들의 자발적 의지 +적법한 행정 절차)으로 진행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비롯한 4~5년 전부터 수차례 출장을 가서 접한 제주 해변, 특히 강정마을의 바닷가는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정말 이곳만은,
너무도 가슴 아팠지만, 다수 주민들의 의견이라 하니 어쩌겠습니까... 그저 안타까움의 기도만 올렸습니다.
아니, 단 두세 명의 반대자만 있다 해도 우리는 그들의 아픔에 동참해 줘야 하는 것 아닐까요? 신앙인으로서 말입니다. 여기서 정부와 해군, 삼성 등의 용서하기 힘든 불법, 편법, 야만적 진행과정에 관한 것은 생략하겠습니다. 우리는 신앙인 아닙니까? 모든 것 제쳐두고 ‘측은지심’ 정도는 가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저는 진심으로 말합니다.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오로지 비아냥거립니다. 오로지 찬성의 당위성만 외칩니다. 신앙을 떠나 정말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정이라는 걸 지 그래서 화가 나고 그래서 실망스럽습니다.
주제를 벗어난 ‘물 타기’ 논리는 정말 지겹기도 하고 역겹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북, 친중 ,좌빨’... 지금 도대체 어느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 민족이 우선입니다. 민족애와 국가 이익 앞에서는 친미도 친중도 친러도 친일도 전략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친미도 우리 국민을 위해서 해야 되고 친중도 우리 국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제주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분들이 미국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을 비난 했습니까? 미국의 힘이나 미국의 필요성을 부인 했습니까? 그나마 이만한 ‘자유’를 누리기까지, 그 암울했던 시대에 최루탄 가스와 무시무시한 불법 공권력에 맞서서 단 한 번 더구나 신앙인 이면서도 이토록 불균형적 사고의 소유자가 늘어난다면 국립 호국원에 계신 제 선친의 묘소를 기꺼이 이장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강정마을에서 폭언과 폭행 속에서도 기도에 동참했던 마음 여린 제 빨갱이 동생수녀를 환속시키고 싶은 심정입니
본질에 대해서만 논하고 사상 이야기 그리고 신부님에 대한 망언만은 제발 남발하지 맙시다...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분들 중에, 동참하지 않는 보수적인 사제에게 막말하는 경우를 보진 못했습니다. 찬성론자 전체의 이미지를 위해서도 스스로 억제해 주세요.
자기 할 말만 하고 논리에 한계가 오면 모른 척 시치미 혹은 화제를 돌리는 미꾸라지 행태, 토론을 하자면서 자신의 주장만 펼쳐놓고 상대의 댓글은 차단하는, 참으로 비양심적인 짓은 하지 맙시다. 정중히 요
나는 격투기라는 운동을 좋아합니다. 경찰관 이셨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유치원 시절부터 체육관에서 복싱을 배웠었죠. 그 이후로도 지금껏 격투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MMA(이종격투기)에 푹 빠져있죠. 링에 올라가면요. 사람 별거 아니라는 걸 느낍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 라는 철저한 본능 속에서 용감해지기도 하고 순수해 지기도 하고 겸손해 지기도 합니다. 신앙이고 뭐고 필요 없습니다. 정직해 집니다. 땀 흘리고 쓰러질 때까지 그저 끝까지 사력을 다하다가 패배가 인정되면 깨끗이 탭을 칩니다. 그리고 승자에게 기꺼 스타일은 다르겠죠. 인파이터형도 있고 아웃 파이트형도 있으니까. 그러나 ‘링’에 올라간 이상 실컷 꽁무니만 빼다가 펀치 한 방 내뻗지 않고 링 밖으로 도망가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것은 패배 이상의, 선수로서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버리는 일이니까요. 특히 링은 모든 사람들이 관망하는 공개된 공간이기에 더욱 그렇겠죠... “골방에 있더라도 네거리에 있듯 하여라” 공자님의 말씀을 떠올리지 않아도...
신앙을 떠나서요, 사람이라면, 아니 그보다 먼저 남자라면 야비한 행동은 안해야겠죠. 온 가족, 아니 온 교우들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토론합시다.
끝으로 제안합니다. 정말 이러한 솔직함, 정직함으로 토론할 의지가 있다면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신상을 정확히 밝힙시다. 최소한 소속 본당만이라도요.
앞으로 또 계속 일방적인 막말이나 폭언, 주제와 논리에 벗어난 비하 발언을 행하신다면... 나는 문()()님, 박()석님등과 같은 인내심이나 정중함만을 계속 간직하진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무작정 쓰고보니 다소 겸연쩍어지는, 장문의 넋두리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느님 앞에선 모두가 도토리 키 재기 아니겠습니까?
비열하고 뻔뻔한 짓은 더 이상 서로 맙시다.
경박하고 적절치 못한 표현이 있었다면 양해 바라오나 제 素意만은 헤아려 주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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