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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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두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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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제 [wild306] 쪽지 캡슐

2008-04-29 ㅣ No.119921

 
관내를 둘러보고 청사광장으로 들어서는데
허옇게 머리가 쉰 그러나 늘씬한 영감님 한분이 광장을 빠져나가시는 중이었습니다. 
낯익은 얼굴인지라 한번 더 쳐다보는데...
 
"나 누군지 알겠어?"
하시면서 특유의 눈웃음을 치시는 겁니다.
아..... 다두 회장님
 
 
우리 본당은 돌산 본당이라고도 하는데
이유는 행당동 돌산위에 서 있기때문입니다.
아주 초창기에는 어려운 사람들이 살아그런지 본당신부님은 처음부터 외국인 신부님이셨습니다.
콘크리트로 성당을 짓다가 돈이 없어선지 1층만 짓고 일단 그만둔 본당이었는데요
가난한 본당이라 성당 일꾼들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당시 사무장겸, 교리교사겸, 레지오단장겸, 미사진행자겸 신부님이 하시는 일말고
본당에서 하는 모든 일을 도맡아 하시던 분이 바로 다두 회장님이셨습니다.
 
어머니말로는
다두 회장님은 보따리 장수였다고 합니다.
보따리를 매고 전국을 돌면서 장사를 하셨는데 그 고생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합니다.
그러다 돌산 행당동에 정착하였고
회장님의 신심을 높이 평가하신 본당 신부님이 경비도 절약하고자 다두 회장님에게 본당일을 모두 맡기셨는데요
다두회장님은 그 당시에 이미 자녀들이 주렁주렁하였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다두 회장님께 교리를 받으셨습니다.
말이 교리를 받는 것이지 그냥 교리서를 읽어주시는 정도였답니다.
교리시간때면 교리실 창옆에 여러명이 붙어 있습니다.
아기를 업으신 다두회장님의 어머니, 다두 회장님의 다른 아기를 엎으신 사모님^^...
그리고 올망 졸망한 아이들 서너명이 창 유리창에 붙어서
아들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인 다두 회장님의 교리 강의를 지켜보곤 하였지요.
 
교리책을 그냥 읽어주는 교리시간이니 예비자들이 궁금한 점도 많아 질문을 하면
회장님은 열심히 뭔가 설명을 해 주시려 합니다.   
그래도 예비자들은 궁금이 풀리지않아서인지 계속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창문이 조금 열립니다.
그 문틈 사이로 회장님의 어머니가 얼굴을 조금 들이미시며 아주 작은 소리로...
"아범아.... 그건 이거여... 그러니 요렇게 설명혀여~~$$"
그러면 예비자들이 킥킥댑니다.
그러던지 말던지 읽던 교리서를 다 읽은 후 교리를 마칩니다.
이렇게 교리받아 신자가 된 분들이 우리 성당의 원조신자들의 대다수를 이룰 것입니다.
 
"회장님. 저 윗동네 순복음 목사가 우리를 두고 마리아교회래요~~"
제가 사무실에서 오수를 즐기시려는 회장님을 깨우며 일러 바쳤습니다.
"토마스.... 우리 교회가 진짜 교횐걸 알지?"
"네..."
"그런데 뭔 걱정이냐? 가서 기도나 해~~@@"
우리 교회가 진짜 교회라는데 달리 더 물어볼 말이 필요할까요?^^
 
다두 회장님은 우리 소년(중학생)레지오단장도 하셨습니다.
다두회장님과 함께하는 묵주기도는 딱 10분이면 족한 시간이었습니다.
"회장님 숨막혀요. 좀 천천히 해요..."
아이들이 그러던지 말던지 회장님은 따발총쏘듯 묵주기도를 마칩니다.
 
레지오회합이 마치면 회장님은 사무실안으로 들어가십니다.
사무실로 오신 신자분들이 혹시라도 묵주같은 성물을 사러 오시곤 하거던요
예쁜 묵주가 들어왔지만 돈이 없어 사무실 책상위에 진열된 묵주를 만지작 거리고 있으면
"가져가 돈은 다음에 주고..."합니다.
그러면 회장님 마음바뀌기 전에 낼름 주머니에 묵주를 넣습니다만
다음에라도 줄 돈이 있다면 지금 주지 다음에 주겠습니까?
 
저는 중학생때에 평일미사에도 자주 갔었는데 그때에도 다두 회장님이 미사 진행을 하십니다.
독서도 물론 하시지요.
외국인 신부님과 다두 회장님이 손을 마춰 봉헌하는 미사는 주일미사도 3~40분이면 충분해 보입니다.
오르간 반주도 없었으니 성가도 안 불렀을게고 그러니 속사포로 끝이납니다.
 
심심할때 성당에 가서 놀곤하였는데 집에서 책보고 배우던 기타 코드가 생각이 나서
오르간에 앉아 기타코드로 오르간을 연습해 보면 제가 듣기에도 참 좋았습니다.
이런 저를 보시더니 주일미사에 오르간을 반주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무식한 자가 용감하듯 저는 주일교중미사에 오르간을 반주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졸지에 본당에서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되었지요.
모두가 다두 회장님 덕입니다.
 
제 어렸을때 신앙생활의 중심에는 다두 회장님이 계셨습니다.
궁금한 교리를 물어보면
"그냥 믿어~~그게 최고야" 하시는 모습이 아주 진지하셨던 다두 회장님
교리시간만 되면 아기업은 회장님의 어머니, 사모님...
그리고 회장님의 아이들이 줄줄이 창문을 통해서 자랑스럽게 회장님을 바라다보며 뿌듯해 하셨는데....
 
청사광장앞에서 회장님을 뵈는 순간 이러한 모습들이 순싯간에 스쳐갑니다.
"회장님 커피한잔 하셔요..."
"갈데가 있어 다음에 하지, 그런데 어디있어?"
"저기 10층 0000과에"
"그려 나중에 찾아볼께 우리집도 저 아파트야..."
고생을 참 많이 하셨을 회장님
가난한 본당의 모든 일을 도맡아하셨지만
그 월급가지고 어떻게 아이들을 다 교육시켰을까 지금도 궁금합니다만
얼굴이 뽀얗고^^ 고이 늙으시어 제 가슴도 뿌듯합니다.
 
가시는 회장님의 뒷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 집니다.
억지로라도
모시고가서 차라도 한잔 대접해 드렸어야 예의였을텐데요...
 
모처럼 감동을 받은 하루였습니다.
다두 회장님께서 하느님의 은총하에 오래 오래 사시기를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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