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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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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하필이면 평화방송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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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숙 [lalee] 쪽지 캡슐

2008-06-18 ㅣ No.121384

<혹시 노장께서 이 댓글을 원치 않으시면 언제라도 지우겠습니다.>
 
현실을 보는 이문열의 정신세계는 참 이상하리만치 편협하고 천박하기 그지없고 이런 이문열에게 괜시리 촐삭 나서서 떡하니 자리를 마련해준 꼴이 되어버린 평화방송의 이번 처사는 이문열의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평화방송이라는 언로에 제외되는 누구도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평화방송의 이념과 편집방향은 복음정신에 철저히 경도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평화방송이 좀더 숙고해야 할 것입니다.
 
우려하기는, 추기경님을 비롯한 교회의 리더십이 가지고 있는 촛불민심에 대한 시선이 이문열의 그것과 같다는 사실을 이번 평화방송을 통해서 우회적으로 보여 준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고요.
 
수년 전 지요하 작가님이 지으신 이문열의 곡학아세를 엄히 묻는 시를 아래에 붙이며 멋지신 노장의 깊은 염려에 감사화 함께 위로도 드리고자 합니다.
 
<조시(弔詩)>
한 시절 천재 작가의 곡학아세를 장송하며

새 천년기의 첫해가
어느덧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수확과 조락의 변주곡으로
무릇 생령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만추의 중머리
2001년 11월 3일
민초들의 결의가 찬란한 슬픔의 띠를 두르고
너울너울 덩실덩실 춤을 추는 날
뜨겁고도 정갈한 슬픔 속에서
새 희망이 힘껏 용솟음하는
기쁜 이별의 날
한 시대의 난분분한 곡절이
한 고비의 나래를 접고
장엄한 의미의 꽃을 피우는 날
엄혹한 독재 시절
칠흑의 어둠 속에서도
진실과 거짓을,
정(正)과 사(似)를 분별하여 온
우리 겨레 슬기의 눈들이
마침내 거친 풍우의 둔덕 위에 서서
또 한번 정의와 희망의 이름으로
지성의 새 이정표를 세우는 날
민족혼과 자유혼을 집어삼킬 듯이
저 일제로부터 이어진 기나긴 세월을
광기의 사슬로 지배해 온
그 혼돈의 질곡, 안개 무리 속에서도
부릅뜬 눈빛을 푸르게 지켜온
삼천 리 강산의 모든 생령들이시여
오늘 이 자리에 세워진 시대의 이정표 앞에서
우리가 하나하나 내던지며 부르는
우리의 기쁘고도 슬픈 장송곡이
거센 바람이 되게 하소서
저 편견과 아집의 성곽 위에서
오늘도 도도히 나부끼는 몰염치의 단색 깃발로부터
지역감정 조장의 술수를
이념의 올가미, 색깔론의 묘수를
침소봉대, 왜곡, 오보, 적반하장
끊임없는 기만과 권력욕의 만용을
저 태평양 바다로 날려버리게 하소서
한 시절을 장식했던 한 천재 작가의
천박한 곡학아세
시대정신에 눈이 먼 타락한 지성도
티끌처럼 날아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겨레의 생령들이시여
오늘 여기에서 뜨거운 불길로 승화하는
단장(斷腸)의 장송곡이
동해 남해 서해의 힘센 너울이 되게 하시고
백두산과 한라산을 잇는
기쁨과 평화의 메아리가 되게 하소서!

2001년 11월 23일
충남 태안의 샘골에서 반딧불이 작가 지요하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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