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단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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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단비가 내렸습니다. 봄내내 비다운 비가 제대로 온 적이 없어 기린 봉덕동 우리 밭에 잘 자라던 마늘잎 끝이 노랗게 마르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아침엔 일찍 일어나 자동 펌프에 호스를 연결해 물을 주었는데 물이 딸려서 흠뻑 줄 수가 없었습니다. 산꼭대기라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데다 감기 기운도 있어서 방에서 열무를 다듬고 있는데 저의 남편은 바깥 수돗가 물통에 물을 받고 있으니 잠시 후에 수도 꼭지를 꼭 잠그라고 당부하고 밭으로 나갔습니다. 걱정말라고 큰 소리로 대답해 놓고는 열무를 다듬어서 씻으려 밖으로 나와 보니 아뿔싸!! .물이 좔좔좔 ...... 마당 끝에 붙어 있는 밭에서 목이 말라 타들어 가는 마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물이 마구마구 쏟아져 하수구로 흘러 들고 있었습니다.-ㅠㅠ- 서울 사람도 못 먹는 흘려버린 1급수의 지하수도 아깝고 자동펌프를 헛돌린 전기도 아깝지만 그러나 어쩌겠습니다.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후회막급한 기분으로 한참을 서서 마당을 둘러 보다가 파를 뽑아와 다듬고 있는데 남편이 돌아와서는 중얼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럴 줄 알았다고 한말씀(?) 하시었습니다.-_-:: 자식처럼 아끼는 농작물에 줄 물이 모자라 안타까운 남편 마음을 십분 이해하고 남지요. 그런데 점심 때가 되어 밥을 먹는데 이젠 깜빡하는 치매(?) 초기 증세를 보이는 마누라를 믿을 수가 없어 뭔 일을 맡길 수가 없다고 또 투덜댔습니다. 하긴 저도 제 기억력을 못 믿어 방금 둔 물건을 찾느라 한나절이 걸리는데 남편이 저를 못 믿겠다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만 듣기 좋은 소리도 한 두 번이지요. "나...지금 반성 많이 하고 있으니 그만 하셔~~~!!!..." 말끝에 힘을 주면서 엊그제 일하러 온 아주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야기인 즉슨 진동 계곡에 고추농사를 대대적으로 짓는 농가가 있는데 며칠 전에는 내린 서리로 고추 농가가 크게 피해를 입었고 몇 만평의 고추가 못 쓰게 되었답니다. 고추 묘목값에 인건비에 여간 피해가 큰 게 아니라 대략 계산해도 천만원 이상 손해가 났다고 합니다. 오월달에도 종종 서리가 내릴 만큼 높은 곳이라서 두 부부는 일찍 심자커니 며칠 더 기다렸다 심자커니 옥신각신 했는데 아줌마의 결정대로 일찍 심었다가 그만 서리를 맞게 되었던 터라 남편의 원망과 자책감이 겹쳐 자살을 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역정을 낸다고 되돌일 일도 아니건만 화풀이 하다가 고추농사보다 귀한 아내를 잃게 된 그 집처럼 물이 아깝다고 마누라보다 더하겠느냐고 적반하장으로 들이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또 고이는 샘물 때문에 마누라를 잃고 싶지 않으면 1절만 하시지요." 하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오늘은 춘천에 비가 많이 쏟아져 남편에게 전화를 해 보니 기린 봉덕동에도 비가 흠뻑 온답니다. 마늘이랑 상추..열무..배추가 물을 실컷 들이켰을 걸 상상하니 제가 다 시원해집니다. 빗물을 머금고 싱그러운 잎을 자랑하는 그 녀석들을 빨리 가서 보고 싶습니다. 하루만에 이렇게 대지를 넉넉히 적시는 비를 보고 저의 남편이 치매 초기 마눌님에게 잔소리(?) 한 거.....반성 많이 하고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