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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우리, 합집합은 최소, 공통집합은 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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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우리, 合集合은 最小 共通集合은 最大
‘무엇하는 사람들인가?’ 묻고 싶다. 말로는 평화를 빈다고 하면서 예수님이 모셔진 성당 안에서 그것도 미사시간에 노선이 다르다고 쌍욕을 해대는 사람이 있다니! 마치 중남미 어떤 성당에서 총을 난사하는 폭도의 모습이 연상된다.
이러한 사람이 보내는 평화의 인사에 진정성이 있는가? 자문해본다. 분명히 없다고 단정한다. 면전에서 욕을 해대는 사람은 사랑이 없는 사람이어서 평화의 인사는 그저 울리는 징소리에 불과하다. 판단을 함에 있어 본인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니 평화로울 수가 없다. 정의와 진리를 추구하는 그리스도인 이었더라면 평화가 깨질 까보아 그런 망나니 같은 짓을 꿈속에서라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정이 비단 이 사람에게만 국한 된다면 우리 모두는 돌을 손에 하나씩 들고 그를 향해 돌진할 수 있다. 그렇지만 흥분을 멈추고 잠시 땅바닥에 쓰여 진 각자의 죄목을 둘러보자! 과연 몇 사람이나 현장에 남아 있을 런지? 아무도 남아 있지 못하다면 이게 우리 그리스도인의 현주소라서 자괴감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하기위해 출발하지는 않았다. 그날 우리는 ‘올바른 길을 택해 진리를 쫓고 궁극에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세례성사로 다시 태어났다.’ 그런데 씨가 길에 떨어져, 돌밭에 떨어져, 그리고 가시넝쿨 우거진 밭에 떨어져 새가 쪼아 먹고, 햇볕이 나오자 타 버리고, 가시넝쿨에 짓눌려 발육이 되지 않은 듯 곳간에 넣어 둘 곡식을 수확하지 못했다.
죽은 포도나무 가지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진리로 가는 길에 버려진 돌은 무슨 소용이 있나? 불에 태워지거나 걸림돌 역할 외에는 쓸모가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분이 우리를 선택했고 우리에게 늘 말씀하신다. 그냥 우리들은 귀를 들이 대고 ‘예’하고 답하면 된다. 말로 하지 말고 가슴을 푹 적시는 행동으로 ‘예’하고 대답할 때이다.
그 대답은 예수님과 우리의 합집합(合集合)이 최소가 되고, 공통집합(共通集合)은 최대가 되게 노력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가족이 되고 하느님을 위해 나를 죽여서 우리 신앙을 반석위에 키워내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기도, 묵상, 성경 읽고 쓰기, 그리고 평일 미사참례 등을 열심히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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