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자유게시판

안녕히 가십시오 고 신부님!

스크랩 인쇄

곽일수 [paulk] 쪽지 캡슐

2002-02-26 ㅣ No.30247

중학교 때 영세 이후 나름대로 여러 교회내,외의 활동을 통하여 여러 신부님을 알고 있답니다.

 

물론 신부님을 많이 알고 있는 것과 본인의 영성의 깊이 정도는 비례하지는 않습니다. 어쨋거나 그 중에서 제일 기억이 남고 존경하는 신부님을 들라고 하면 아래의 글에 나오는 신부님입니다.

===========================================================================================

 

며칠전..교구 사제의 인사이동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당연히 있어야 할 어느 본당의 주임신부님의 후임지가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오잉? 혹시 그 연세에 무슨 문제라도? 별별 생각을 다하였고 어제 낮에 잠시 짬을 내어 교구청의 어느 관계자에게 알아 보았으나 시원한 대답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 신부님...81년도 내가 서울 정릉 천주교회 고등부 학생회장직을 맡고 있을 때 그 해 9월 경에 본당 사제로 부임하였다. 40대 중반의 비교적 늦깍이 주임신부였다. 그런데 그 신부님의 소문은 무서웠다. 전임지에서 고등학생들이 100대 이상 안맞고 졸업을 안했다나? 뭐라나? 철저한 전례 원칙주의자여서 미사시간 중 독서자가 성서 봉독의 한 글자라도 틀리면 제대위에서 독서자를 향해  뭔가가 날라간단다! 또한 해설자의 미사해설이 틀리면 미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단다! 당시 학생미사의 미사해설자는 바로 나!였다. 보좌신부님도 없어서 그야말로 뺴도박도 못하는 상황.

역시 그 신부님은 소문 그대로 였다.

 

그런데 어른들의 얘기로는 일반 신부님은 오자마자 사제관 부터 들리는데 그 신부님은 성당의 감실 앞에서 성체조배부터 했다고 했다. 그리고 군종신부 출신이었으니(--> 고교생인 나로서는 군종신부님 출신은 신자들을 군대식으로 대하는 줄로 알고 있었다^^)....그 신부님은 사진찍는 것이 유일한 취미라고 했다.

 

그 이후 4개월 동안 우리 학생회는 신부님에게 엄청난 탄압??을 받았당..............당연히 탄압을 받을 수 밖에..

친구 녀석 중 몇몇이 성당에서 몰래 숨어서 술먹고 담배 피다가 걸렸으니....(--> 물론 그 자리에 나도 있었다. 나는 학생회장이라는 사명감에 녀석들을 설득?하려고 하다가...어쨋거나 같이 그 자리에 있었당!!그 날은 81년 추석 당일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고 3이 되자 학생회는 후배에게 물러 주었는데 곧바로 해체되었다. 어쨋거나 그 신부님과 우리는 여러 우여곡절이 많았고

신부님으로 인하여 성당을 떠나겠다고 얘기하는 친구들도 있었다.....사랑과 자비는 전혀 보이지 않는 폭군 신부였고 사랑스러운 사제상을 생각했던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마르신 편이어서 신부님의 별명은 "고 뼉따구"신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른들에게는 인기가 좋았다. 특히 가난하고 어려운 본당 어른들에게...

사목위원들이 소위 "가진분"들이 많아서인지..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특정한 직업이 없던 친구의 부친에게 사목위원 하자고 계속 부탁을 하였고..어려운 시람들은 외면하지 않으셨단다...

 

내가 그 신부님에게 관심을 갖고 다시 본 것은 사제관에서 본 사진첩이었다. 그 신부님은 개인전을 열 정도로 프로수준의 사진작가였다. 82년도 정초 세배 후(-> 나는 신부님이 미워서 안할라고 했는데..단체장은 하는거란다. 전화 받고 오후 늦게 끌려 오다시피해서 겨우~~했다) 사제관에서 사진첩을 보았는데 인물사진은 전혀 없었다!!! 그 이유를 물어 보았는데 이유는 "나는 사람은 안찍어 ..사람은 곧 잊어야하고.. 정에 약하면 사제직을 수행하기에 힘들고..어쩌구 저쩌구.." 어쨋거나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속으로 역시 야박하신 분이구나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그 신부님은 전혀 안그러셨다. 보좌신부(응암동)시절 본당 자매님이셨던 친구의 어머니를 무려 20년이 지났는데 먼저 알아보시고 기억을 되살려 주셨다고 했다. 비록 표현을 안하셨을 뿐이지 신자들을 기억하고 보이지 않게 관심을 보여줬다는 것을 알게 된것은 그 신부님이 떠난 후 꽤 오래후의 일이었다.

 

===========================================================================================

 

휴..........어디서 끝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대치 2동 고명철 신부님......신문에서 보았습니다. 집에서 가져온 평화신문을 회사 숙소에서 읽었습니다. 지난 2월17일 강남성모병원에서 선종하셨더군요...2월19일 장례미사까지 봉헌되었더군요..굿뉴스 공지사항에 게재가 안되서 비로서야 알았습니다.

 

참으로 소박하신 분이었답니다. 엄한 모습과는 달리 소년틱한 순수함과 열정을 가지고 계셨던 분이셨고 속이 무척 깊으신 신부님이셨답니다...아마 82학번 또는 83학번 이상의 신부님들은 고 신부님에 대해서는 잘 아실것입니다.....81년 정릉에 오시기 전에 무려 13년동안 소신학교에 재직하셔서 후배 사제들을 많이 양성했답니다. 신부님에게 신학교 추천서를 써달라고 정릉까지 왔던 소신학교 출신의 수험생들의 모습이 눈에 선 합니다.소신학교에 다니셨던 분이라면 아마도 지금 엄한 모습의 고 신부님을 떠올릴 것입니다.

 

교회전례가 무었인지 알려주셨고 사제가 무었인가를 많이 생각하시게 하셨던 신부님.

너무 아쉽습니다. 당시에 활동했던 선,후배들은 신부님께서 은퇴하시면 찾아 뵐라고 했는데...너무 아쉽습니다..

 

 

고명철 아우구스티노 신부님!!안녕히 가십시오!  

 

기억나세요? 부활 前週에

복음말씀가지고 여러 명이 나와서 각자가 성서에서 나온 배역을 하쟎아요..제가 빌라도 역을 하였고 신부님은 예수님의 역할을 하였죠...그런데 저의 우렁찬? 목소리로  예수님을 신문하여...신부님에게 적쟎이 피해를 주었고...신부님이 성가연습을 하는데 저는 그것도 모르고 누가 성당에서 장난하는 줄 알고 성당 문을 열고 제가 소리를 질렀죠...누가 제대 위에서 장난하냐고..신부님의 유일한 18번 노래 "바위고개" 우리들은 기억합니다.

(-> 고신부님은 목소리는 가늘고 카랑카랑 하였답니다..)

 

신부님과 함께 한 여러 산들...특히 북한산..오대산.....그리고 주일학교,성가대의 여러 추억들...잊지 못합니다.

 

주님! 고 아우구스티노 신부님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천상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1,116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